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꿈과 현실의 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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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꿈과 현실의 메타포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04.0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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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찾는 여인의 당돌함과 쓸쓸함…예술과 윤리 사이에 자기 변명적 성격도

 

배우 김민희를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게 해준 ‘밤의 해변에서 혼자’(영문명: On the Beach at Night Alone}의 의미는 김민희가 부르는 노래 가사에 절절하게 전달되고 있다.

『바람 불어와 어두울 땐 /당신 모습이 그리울 땐 /바람 불어와 외로울 땐 /아름다운 당신 생각 /잘 사시는지 /잘 살고 있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김민희는 강릉의 어느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 노래를 불렀다. 영상의 분량은 1분 30초. 예고편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꾸밈없이 담담하게 부르는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쓸쓸함이 담겨 있다.

 

▲ 영화속 장면 /영화 홍보 사이트

 

현실과 꿈, 예술과 윤리의 모순이 오버랩되면서 영화는 2시간 가까이 관객을 빨아당긴다. 영화는 독일에서의 1부와 한국 강릉에서의 2부로 나뉜다.

1부의 배경은 독일 함부르크 인근의 작은 도시. 여배우 영희(김민희 분)는 한국에서 유부남과의 만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나답게 사는 거야"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영희는 이곳으로 온다고 한 유부남을 기다린다. 동시에 그가 올 것인지를 의심한다. 그는 점심을 먹고 지인들과 해변으로 놀러 간다. 영희는 선배 언니에게 묻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 영화속 장면 /영화 홍보 사이트

 

2부는 영희가 강릉으로 돌아오면서 전개된다. 영희는 지인 몇 사람과 술을 마시면서, 초연한 척, 거친 척을 하며 떠들어 댄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영희의 취중 멘트가 걸작이다. 삶과 사랑에 대한 굶주림으로 방황하는 영희의 모습이 독설로 쏟아진다.

"왜들 가만히 놔두질 않는 거야. 왜 난리를 치는 거야."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영희가 던진 이 멘트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기도 하거니와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따가온 시선을 웅변해주고 있다.

강릉 여정은 지인들이 보여주는 깊은 포용과 따뜻한 시선의 축복 같은 것이다. 영희가 불륜을 저질러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견디어야 했던 것을 아는 남자 선배(권해효 분)는 "자기들(비난하는 이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들을 해대면서 왜 그렇게들 난리를 치느냐"라고 말한다.

영희는 여러차례 술자리 장면 등에서 분노를 여과 없이 거북한 독설로 쏟아댄다.

"남자들은 다 병신같아" "원하는 것이 다 똑같아. 남자들은"

"사랑받을 자격 없다"라고 술주정하듯 지껄이고 "다들 추한 짓들을 해서"라고 동석한 지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지인들이 영희에게 “함부르크에서 사랑을 찾아서 왔니”라는 묻고 그녀에게서 "사랑이 어디 있어요. 그런 게 있어야 찾기라도 하지요"라는 당돌한 대든다.

 

▲ 영화속 장면 /영화 홍보 사이트

 

하이라이트는 꿈 속에서 그리던 유부남 영화감독을 마주하는 장면이다. 역시 술자리였다.

영희가 감독에게 “새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감독은 "너무 힘들어서 이제 안 하려고 한다"고 답한다. 만날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은 지루하지 않으냐는 도발에도 "소재가 중요한 것은 아니야"라고 맞받는다. 이 대답은 바로 홍상수 자신일 것이다.

감독은 "괴물이 되는 것 같다"고 울부짖는다. 자기가 한 일들에 대해 "매일같이 후회해. 지긋지긋하게 후회해"라고 하는 감독에게 영희는 "후회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라고 쏘아붙인다. 눈물을 흘리는 감독을 바라보는 영희의 태도는 무덤덤하다.

마지막 장면 즉, 유부남 영화감독과 영희와의 만남은 꿈이었다. 두 사람의 술자리는 강릉의 해변에서 밤에 혼자 꾼 영희의 꿈이자, 영화 제목이다.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는 영희는 진정한 사랑과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독백처럼 스스로 답변한다. 영화 내내 찾을수 없는 정답을 찾아내려고 시도한 느낌을 준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자기 변명적 메시지가 강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고 싶어”라는 김민희의 멘트는 그들의 스캔들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는 느낌이다.

 

▲ 영화속 장면 /영화 홍보 사이트

 

1부와 2부에 등장하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다.

1부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공원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영희와 지영에게 시간을 묻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남자가 해변의 영희를 들쳐 메고 사라진다.

2부에서는 영희가 머무르게 될 호텔방에 그 남자가 나타나 창문을 닦고 있다. 등장 인물들은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한다.

홍상수 감독은 "왜 그런 인물이 나오는지 설명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 한다"고 답했다.

“현실이 곧 꿈이요, 꿈이 곧 현실”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홍상수 방식의 메타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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