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도보기행]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상태바
[박성기의 도보기행]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27 16:14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리산 뱀사골 동쪽 산록 품에서 만나는 일곱 암자
영원사 삼불사 실상사 등 3개의 절과 4개 암자 있는 것
대자연의 숭고함 속 한없이 작은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곳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 도보여행 칼럼니스트] 칠암자 순례길은 지리산 뱀사골의 동쪽 산록인 삼정산(1225m) 품에 있는 도솔암(兜率庵), 영원사(靈源寺), 상무주암(上無住庵), 문수암(文殊庵), 삼불사((三佛寺), 약수암(藥水庵), 실상사(實相寺) 등 세 군데의 절과 네 군데의 암자를 걷는 길이다.

이 길은 함양군 마천면 양정마을에서 시작하여 산내면의 실상사에서 마무리한다.

어제 내린 비는 미세먼지 가득한 대지를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오늘은 비 갠 뒤의 맑고 신선함으로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구름 없는 하늘, 햇볕은 내 머리 위로 내려 앉았다. 내내 나를 가두며 구름처럼 일던 번뇌는 실타래가 풀리듯 사라졌다.

#1. 도솔암(兜率庵, 해발 1165m)

지리산 뱀사골 동쪽 삼정산 자락에 있는 도솔암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리산 뱀사골 동쪽 삼정산 자락에 있는 도솔암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양정마을에서 출발하여 임도를 타고 2킬로 남짓 오르다 영원사를 앞에 두고 도솔암으로 향했다.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천천히 걷는다. 길을 가다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어린 전나무를 본다. 도대체 살아날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살아내는 모습에 외경을 느낀다.

산을 타고 내리는 계곡물 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편안하던 길이 가파르다. 도솔암이 높은 곳에 자리 잡았으니 만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 어린 주목이 돌 사이를 가르고 자란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 어린 전나무가 돌 사이를 가르고 자란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돌계단을 지나 도솔암 산문에 들어섰다. 병풍을 두르듯 산이 도솔암을 품에 안은 모양의 명당이다. 마당에 서서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니 천왕봉이 눈앞에 다가섰다.

#2. 영원사(靈源寺, 해발 895m)

도솔암을 내려와 임도로 300여 미터를 오르니 영원사다. 합천 해인사의 말사로 함양군 마천면 삼정산 동남쪽 중턱에 자리잡은 영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 어디에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영원대사가 조선시대 스님인 점으로 미루어 조선 시대에 창건 되었음으로 짐작된다.

도솔암에서 영원사 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도솔암에서 영원사로 올라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한 때는 지리산 안쪽에선 제일 큰 100칸이 넘는 큰 사찰로 큰 스님들이 많이 머물렀던 곳이었으나 6.25때 소실되어 지금은 세월의 야속함만 남아있다. 

바람이 불자 봄빛을 가득 품은 연록의 나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마다 무성한 잎은 무리를 지어 웅성웅성 바람에 더 유난했다. 영원사 표지석을 지나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구도의 길을 따라 산문에 들어섰다. 정오를 넘긴 햇볕은 눈이 부시게 내렸지만 덥지도 않고 시원하다. 길게 가로로 이어진 영원사 오르는 길이 마치 인생길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원사 법당에 두류선림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영원사 법당에 두류선림이라는 편액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산문에 들어섰다. 법당의 편액을 바라보니 두류선림(頭流禪林)이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 두류산으로, 영원사가 지리산 내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으니 당연하게 보인다.

영원사 산신각.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영원사 산신각.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법당 앞에 서서 아래를 바라본다. 탐스럽게 피어난 불두화 너머로 내가 걸어온 아스라한 길이 겹쳐 보인다. 내가 살아온 날이 길에 이입되어 한동안 장승처럼 밑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3. 상무주암(上無住庵, 해발 1162m)

영원사를 떠나 가파르게 산길을 올라야 한다. 크고 작은 돌이 있는 너덜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죽이 지천이다.

대나무에 꽃이 피면 한 생을 다하고 대나무가 진다고 그러는데 온통 산죽에 꽃이 피었다. 대꽃은 귀해서 수십 년이나 수백 년을 만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가득한 산죽꽃을 만났다.

상무주암 바깥에서 본 법당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상무주암 바깥에서 본 법당 모습.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리산이 순례에 나선 내게 주는 귀한 선물인 듯싶다. 빗기재를 넘어 삼정산(1225m) 정상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돌아 칠암자 중 도솔암 다음으로 높은 상무주암에 도착했다.

상무주는 사람이 쉽게 걸음 하기 어려운 곳에 있기에 편액의 뜻과 일치한다. 상무주(上無住)는 일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니 이곳이 참선하기에는 최고의 길지가 아닌가.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에서 이년 간 머물며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스님이 암자 내부의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수행하는 공간이라 잡인의 출입에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다. 아름다운 암자의 바깥 전경만 사진에 담았다. 암자 밖으로 돌담이 높고, 길도 잘 만들어 놓아 길 따라 지나가라는 뜻인가 보다. 그래서 상무주암을 지나면 사람 쉴 곳이 있고 ‘아니온 듯 다녀가시란’ 글귀를 두었나 보다. 

#4. 문수암(文殊庵, 해발 1060m)

문수암.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문수암.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상무주암을 떠나 싱그런 나무의 향을 느끼며 호젓한 숲길을 따라 살짝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걷는다. 커다란 바위 아래 흐르는 약수가 길손의 목을 축인다.

상무주암을 지나 문수암으로 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상무주암을 지나 문수암으로 가는 길.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길을 재촉하여 살짝 고개를 넘어 풍광이 아름다운 암자에 도달한다. 규모는 작지만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암자 뒤편 커다란 바위에는 자연의 ‘천인굴(일명 천용굴)’이 파여 있고, 이곳에선 마르지 않는 석간수가 흘러나와 문수암의 식수로 쓰인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 사람 천여 명이 이곳에서 몸을 피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문수암 암자 뒷편에 있는 천인굴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문수암 암자 뒷편에 있는 천인굴 전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이삼십 명이 있어도 가득한 이곳에 그만한 숫자가 있었다는 것은 과장된 전설이고, 사실이라면 아마도 이곳 근처 어느 장소에 많은 인원이 난을 피했으리라 새겨본다.

문수암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문수암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문수암 좁은 마당에 작은 의자가 놓여있다. 스님이 자리를 잡고 앉아 객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혹여 스님이 일어나실까 기대해보지만 한참을 그대로다. 의자에 앉아 넓게 펼쳐진 눈앞의 산을 바라보면 삼라만상을 품은 자연을 가슴에 한가득 품어보련만 자리에서 붙박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꼭 다시 오리라는 다짐과 함께 삼불사로 향한다. 

#5. 삼불사(三佛寺, 해발 990m)

문수암에서 삼불사까지는 먼 거리는 아니지만, 오르내림도 있고 돌이 많은 너덜길이라 만만하지는 않다. 돌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새 삼불사가 눈앞이다. 행복한 칠암자 걷기에 몸은 힘이 드나 마음은 상쾌하다. 

삼불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삼불사.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삼불사 앞의 요사채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비구니스님의 참선도량으로 알고 왔는데, 비구니스님은 보이지 않고 비구스님이 암자를 지키고 있다. 삼불사 본사보다 더 특이한 전각이 산신각이다.

삼불사 석탑.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삼불사 석탑.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스님의 말로는 여러 사찰의 산신각 중 이곳이 아주 영험하여 전국의 많은 분이 이곳에 온다고 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앞이 환히 트여있어서 금대산과 백운산까지 눈앞에 잡힐 듯하다. 한동안 눈을 팔다가 약수암으로 길을 잡는다.

#6. 약수암(藥水庵, 해발 560m)

약수암까지의 길은 아주 편안하고 최고의 길이다. 삼불사를 나서서 초입은 너덜길로 힘들고 오르내림이 심해서 고생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초반에만 잠깐 힘들고 내내 소나무 잎이 쌓인 부드러운 흙길이다. 

약수암 보광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약수암 보광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약수암에 도착했다. 약수암은 경내에서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나는 약수샘이 있어서 약수사란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보광전(普光殿)의 목조 탱화는 보물인데 문이 닫혀있어서 보지 못해 안타깝다. 

산중은 해가 평지보다 짧아 곧 어두워 진다. 마지막 실상사까지는 1.5킬로 남짓 해가 떨어지기 전 실상사를 보려면 마음이 급하다. 약수암을 나서 실상사로 향했다. 시간이 벌써 오후 여섯 시를 넘기고 있다.

#7. 실상사(實相寺, 해발 330m)

실상사 보광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실상사 보광전.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지리산 칠암자의 마지막 종착지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실상사다.

천왕봉과 마주하고 있는 대찰로 통일신라의 승려 흥천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국보10호인 백장암삼층석탑과 실상사삼층석탑(보물37호)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을 간직한 사찰이다.

실상사 삼층석탑.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실상사 삼층석탑.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특히 실상사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불국사 석가탑 상층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떠 복원하기도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실상사 석장승(왼쪽)과 해탈교를 건너 칠암자 순례를 마친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실상사 석장승(왼쪽)과 해탈교를 건너 칠암자 순례를 마친다. 사진=박성기 칼럼니스트.

길을 시작할 때는 까마득하지만 돌아보면 아쉽기만 하고 다시 그리워지는 게 길이다. 걷는 내내 지리산의 웅장한 능선과 천왕봉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작은 나와 대자연의 숭고함도 느끼며 나를 괴롭히던 근심을 하나씩 덜어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해서 걸은 칠암자 순례길은 나를 채우는 길이며, 동시에 나를 내려놓는 길이었다. 순례자는 선문 밖 석장승의 배웅을 받으며 산문을 나서 해탈교를 건너갔다.

● 박성기 도보여행자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서출판 깊은샘' 대표이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휴일이 되면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30년째 걷고 있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자의 기쁨'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상곤 2021-05-27 18:12:06
30년 더 좋은길

정재호 2021-05-27 18:13:13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 두류산 이었군요. 보는기쁨을 느낄수 있는 사진과 내용이 좋습니다

소영 2021-05-27 23:24:17
이름도 멋진 칠암자 순례길을 같이 걷는 듯 읽었습니다.

형택 2021-06-02 00:15:04
쭉읽어 내려오다, 글 말미에 순례길을 "나를 채우는 길이며, 동시에 나를 내려놓는 길"이라는... 사는 동안 그런 길을 아낌없이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에 미소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