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배우 윤여정, 그리고 한국 영화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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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배우 윤여정, 그리고 한국 영화 100년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1.04.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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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최초 상영 후 102년 흘러
임권택, 박찬욱, 봉준호이어 윤여정 까지
윤여정 오늘 있게한 김기영 감독 그리고 김수현 작가...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김도산 극본 연출의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상영되었다. 

한국 영화계는 1966년부터 이 날을 영화의 날로 지정하여 한국 영화 산업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을 달성하자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시상식 날인 2월 10일을 새로운 영화의 날로 지정하자고 농담 반 진담 반 소리 높이며 업계의 기쁨을 대변했다.

아마 올해는 4월 26일을 새로운 영화의 날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난 26일. 작년 ‘기생충’이후로 우리와 더욱 가까워진 세계 최대의 영화 시상식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대한민국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배우 윤여정의 시작

1947년 생인 배우 윤여정이 배우로 데뷔한 것은 1966년의 일이다. 한국 영화 역사가 100년 조금 넘었으니 윤여정 배우는 한국 영화 역사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영화계의 산 증인이다.

상업 영화, 독립 영화, TV, CF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그야말로 넓다. 깐깐하고 보수적인 시어머니 역할에서 공원에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그녀의 연기를 보아온 사람이라면, 작품마다 바뀌는 연기의 색깔과 호흡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한양대 국문과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조 진행을 하다 김 아나운서의 권유로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게 된 것이 그녀의 데뷔 스토리다. 

많은 중견배우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신인 배우 윤여정은 아주 총명하고 명석한 배우로 선배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었다.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악녀 장희빈 역할을 표독하게 잘 소화해 길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저기 장희빈 나쁜 X간다’며 욕을 해댔다고 한다. 

그렇게 신인 시절부터 싹수 있는 배우로 주목받아 온 그녀의 영화 필모그래피의 시작은 거장 김기영 감독의 ‘화녀’였다.

윤여정이 첫 출연한 영화 화녀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윤여정(왼쪽)이 첫 출연한 영화 화녀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거장 김기영 감독과 만남

이번 오스카 시상식의 수상 소감에서도 윤여정은 그녀의 첫 감독이었던 김기영 감독을 언급했다. 김기영 감독은 한국 영화사에 있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수상 소감 이후 지금의 한국 영화 산업이 있게 한 그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된 것에 대해 윤여정 배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김기영 감독은 어떻게 보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영화의 기틀을 다진 작가주의 감독이자 흥행 감독이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 지금의 한국 영화를 이끄는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한국 영화를 상징하는 배우 김지미, 안성기, 이은심 그리고 윤여정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신인들을 발굴하고 스타로 만들었다.

김기영 감독은 본인의 1960년 개봉해 히트했던 영화 ‘하녀’를 리메이크 한 영화에 당시 신인이었던 윤여정 배우를 캐스팅했다. 

윤여정 배우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스타덤에 올랐고, 그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윤여정 배우는 김기영 감독 밑에서 너무 고생해서 다시는 저 감독이랑 작업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는데 다짐도 무색하게 다음해 김기영 감독의 ‘충녀’에 출연한다. 

이번 수상 소감에서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김기영 감독과의 작업은 배우 윤여정의 기본을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가 10여년 넘는 긴 공백기를 가졌지만 복귀와 함께 곧바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김기영 감독 밑에서 잘 배웠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소회할 정도로 지금의 윤여정을 있게 한 가장 큰 공로자 중 한명이 바로 김기영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윤여정 배우가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 한 후 기자회견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윤여정 배우가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 한 후 기자들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한국 영화계의 보물 윤여정

1985년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에미’로 충무로로 돌아온 그녀는 그간의 공백을 잊게 하는 그녀만의 색깔이 있는 연기 세계관을 확립시켰다. 이 후 윤여정 배우는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쳐왔다. 그 간 그녀의 활동을 보면 한국 영화계의 보물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업계의 현실 상 중견 배우는 활발한 활약을 하기가 힘든 곳이다. 나이든 중견 배우에게 주어지는 배역이라는 게 사실 뻔한 데다가, 그나마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남자 중견 배우는 상황이 낫지만, 여배우들은 고작해야 엄마나 할머니같은 역할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윤여정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오스카 배우 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단한 건 그 와중에도 빛나는 윤여정 배우의 저력이다. 2000년대 이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보인 그녀의 연기는 수많은 감독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홍상수 감독같은 작가주의 감독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후 한국 충무로의 대모로서 조연, 단역 가리지 않고 많은 활약을 벌였다. 

특히 출연료를 받지 않고 출연한 독립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작품성, 상업성 고루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 하나만 봐도 그녀가 우리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지금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지금은 승승장구 중이지만 한국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 시작한 건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 특별 희극상을 수상하면서 부터다. 

이후 1961년 제1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특별은곰상을 받으며 아시아를 벗어나긴 했지만 이후 20여년 가까이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의 주연 강수연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한국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으며 시작된 일명 밀레니엄 한국 영화 황금기는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감독으로 이어지며 결국 작년의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과 올해의 윤여정 배우 오스카 여우주연상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의 한국 민주화 이후 시작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만개하고 있는 느낌이다. 100년 조금 넘는 한국 영화 산업, 그리고 그 중의 50년 가까이는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겪으며 제대로 된 영화 김기영 감독과 윤여정 배우같은 과거의 영화인들이 작품 주의와 상업 흥행을 오가며 열심히 활동해준 덕분이 아닐까 한다. 

이번 수상으로 인해 몇몇 영화인들은 “언감생심 우리생애는 없겠다던 오스카였지만 봉준호나 윤여정으로 인해 충무로 밥좀 먹은 사람들이 이제 오스카 못타오면 구박받게 생겼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 만큼 그 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아카데미나 세계 영화계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괜히 코 끝이 시큰해지는 하루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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