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LG-SK 배터리 분쟁...ITC 소송의 뼈아픈 교훈은
상태바
[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LG-SK 배터리 분쟁...ITC 소송의 뼈아픈 교훈은
  • 김정민 변호사
  • 승인 2021.03.08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TC "정기적인 관행? 노골적 문서 삭제·은폐 변명일 뿐" 단정한 점 곱씹어봐야
합의금 산출방법은 크게 3가지...어떤 방법이든 최대 4조~10조원될 수도
한국, 미래 신기술 격차 벌려야 하는 입장...미국 ITC와 같은 제도 정착시켜야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필자는 기업관련 변호사업무를 하면서 특허와 영업비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히 회사의 지식재산 중 어떤 것을 특허로, 또 어떤 것을 영업비밀로 관리해야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주류이다.

LG와 SK간 배터리 소송 분쟁의 결론은 이같은 질문에 대한 정답을 내려주고 있는 듯하다. 이런 질문이 들어올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명확하다. 간단히 “Reverse Engineering(역설계 : 내부구조를 알 수 없는 제품 또는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관찰 분석해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쉬운 것은 특허로, 어려운 것은 영업비밀로 보호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답한다.

상대방이 뜯어보고 따라하기 쉬운 것은 기술을 공개하고 특허로 보호받고, 따라하기 어려운 것은 영업비밀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ITC 최종판정으로 배터리의 소재와 제조비법 등 핵심기술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점이 명백해졌고, 영업비밀은 인력유출을 통해 침해된다는 것을 거듭 확인됐다.

LG-SK 배터리 소송의 최종결론 내용은

지난달 10일(미국 시각)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ES’)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I’) 간의 ‘2차전지 ’영업비밀침해‘ 사건(이하 ’배터리 분쟁‘)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판정이 나왔고, LGES의 손을 들어 줬던 예비판정이 그대로 인용됐다.

현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국내외에서 10건이 넘는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에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ITC에서 진행되는 사건이었고,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어서 지난 4일 ITC는 판결문 전문(全文) 격인 최종의견서를 공개하였는데  SKI가 LGES의 영업비밀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명시했다. 이번 판정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그 배경을 다시한번 살펴보자. 또 많은 사람들이 관심갖고 있는 LGES와 SKI의 합의 가능성, 합의금 규모와 함께 다른 배터리 관련소송 및 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ITC는 지난달 10일 최종판정에서는 예비판정을 인용하며, ‘수입금지기간을 10년’, ‘영업비밀 침해 중지 10년 명령’, ‘폭스바겐과 포드에 각 2년과 4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이어 지난 4일 ITC의 최종의견서도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ITC는 SKI에 대한 조기패소 예비판정을 확정하는 최종판정을 하며 수입금지·영업비밀 침해 중지 명령을 내린 데 대해 ▲"SKI의 증거인멸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고, 증거 인멸은 고위층이 지시해 조직장들에 의해 전사적으로 이뤄졌다"는 점 ▲"자료 수집·파기가 SK에서 만연하고 있었고 묵인됐음을 확인했다"는 점 ▲"SKI가 정기적인 관행이라는 변명으로 노골적으로 악의를 갖고 문서 삭제·은폐 시도를 했다"는 점을 밝혔다. 또 “SKI는 침해한 LGES의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데 10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해 미국 수입금지 조치 기간을 10년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내용상으로 SKI 입장에선 최악에 가깝다.

침해된 영업비밀의 내용과 관련, ITC는 LGES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11개 카테고리, 22개 영업비밀을 그대로 인정했다. LGES는 SKI가 침해한 영업비밀을 전 영역에 걸쳐 이용하며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이고 개연성있게 입증했다고 ITC는 설명한다.

다만, ITC는 포드에 4년, 폭스바겐에 2년 각각 수입금지 유예기간을 내린 데 대해서는 "각 회사에 LGES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은 다른 배터리 공급사로 갈아탈 시간적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연말에 나왔던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분쟁에 관한 ITC 최종판정에서는 예비결정 당시 10년이었던 수입금지 기간을 21개월로 대폭 단축한 바 있다. 이번에도 수입금지기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예측이 있었는데, 이 예측은 크게 빗나가고 오히려 더 강한 제재가 나왔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패소에 따라 합의금도 늘어날까

사실상 전부 패소한 SKI는 앞으로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항소(Apeal)할 수 있다. 당장 바이든 미대통령의 거부권을 기대하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승소한 LGES는 이번 판정에 힘입어 유럽에서도 동일한 소송을 진행할 동력을 얻었다. 다만, 이런 상황 변화는 오히려 양사간 협상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SKI는 내심 대통령의 거부권에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하다. ITC의 최종결정에 대해 대통령은 60일간 리뷰를 한 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관련해서 SKI가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인 미국 조지아주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는데,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배터리 공장 건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최근 10년간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단 1건 뿐이었다. 그 1건은 애플과 삼성전자의 분쟁이었는데, ITC가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주자 오바마 대통령이 자국기업인 애플의 보호를 위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배터리 분쟁의 경우 LGES의 미시간주 홀란드공장 증설도 있기 때문에 자국기업 및 고용 보호라는 명분이 힘을 받기 힘들어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외국기업, 특히 중국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영업비밀 탈취 등 불공정 관행을 비판하고, 해당 국가의 법제도 개선과 이행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ITC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런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더욱이 ITC가 이미 공익을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에 대해 유예기간을 두었던 터라 추가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을 경우, SKI는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관계와 법적 판단을 다시 받아보기 위해서일 것으로 추측된다.
    
ITC의 최종판정이 나왔지만 양사가 원만하게 합의할 가능성은 지금도 남아 있다. 왜냐하면 양사가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한다면 수입금지 조치 등은 철회될 수 있고, 합의를 이유로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SKI가 ITC 최종판정에서 크게 패소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욱 불리한 입장에서 합의를 서둘러야할 상황이 된 것은 좀더 분명해 보인다. SKI는 포드와 폭스바겐, 그리고 다른 고객사들로부터 문제해결의 압박을 받을 것이고, 조지아공장의 운명 또한 합의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미 무역위원회(ITC)가 최종의견서를 공개한 결과,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의 완승으로 끝났다. SK이노베이션은 증거개시(디스커버리)제도에서 오해가 있었다며 결과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진= 연합뉴스
미 무역위원회(ITC)가 최종의견서를 공개한 결과,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의 완승으로 끝났다. SK이노베이션은 증거개시(디스커버리)제도에서 오해가 있었다며 결과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진= 연합뉴스

적정한 합의금은 어느 정도일까?

합의금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고, 양사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합의금은 일반적으로 미국 지방법원에서 확정될 손해배상 액수를 기준으로 정하게 되는데, 이는 LGES가 SKI의 침해로 입은 피해액이 기준이 될 것이다.

피해액은 연구개발(R&D)비용이 기준이 될 수도 있고, 수주량에 마진을 곱한 금액이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미국에서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손해액의 200%가 상한)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R&D비용 기준으로 보면 LGES에서는 기술격차 10년에 해당하는 10년간의 연구개발비가 5조3000억원 이상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때문에 이 금액의 2배가 합의금 기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수주 기준으로 본다면, SKI의 현재 수주잔고가 약 70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 SKI가 실적설명회에서 얘기한 영업이익율 9% 정도를 곱하면 6조3000억원 정도가 되는데 이 금액의 2배가 합의금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또 최근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합의금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 1월 일리노이 지방법원은 ‘모토로라’의 R&D 직원 3명이 ‘하이테라’(중국)에 이직해 무전기(DMR: Digital Mobile Radio)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건에서 45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는데, 손해액의 200%인 징벌적 손해배상 최대기준을 적용한 결과다. 

무전기 시장 점유율(2017년 기준)은 모토로라가 39%(1위), 하이테라가 8%(5위)였다. 전기차배터리 시장 점유율(2020년1분기)은 LGES 27%(1위), SKI 4.5%(7위)로 점유율 차이는 비슷하고 시장규모는 전기차배터리가 10~ 20배 정도 큰 시장이므로, 단순 계산하면 4.5조원에서 9조원 정도가 손해배상액이 될 수 있는 계산법이다.

이와 같은 기준을 근거로 한다면 적게는 5조원, 많게는 10조원이 넘는 금액으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특히 최근 미국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이 커지고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적용돼 배상액이 더 커지는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않다.

이에 더해 법조계에서는 “ITC의 의견서에도 보듯 회사차원에서 대규모로, 또 조직적으로 영업비밀을 탈취한 사례가 미국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기 때문에 과거 사례만을 참조할 수 없고, 배상액 또한 비교하기 힘든 금액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SKI는 조단위 수준의 합의 금액을 수용할 수 없다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뜯어보나 저렇게 살펴보나, 시간과 금액에서 모두 SKI에게 불리한 모양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합의금액이지만 해당기업이 부담하기에 지나친 금액일 경우는 문제가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3배, 9배를 얻어맞고 파산하는 회사가 간혹 생기곤 했다. 때문에 현금이 아닌 자회사, 파트너사 지분, 로열티 등 기타 방법으로도 지불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배터리 분쟁의 교훈 및 시사점은

마지막으로 분쟁의 중대한 고비를 넘긴 시점에서 분쟁의 시작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LG가 소송 등 강경대응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인재유출과 폭스바겐과의 계약불발을 들고 있다. 알다시피 폭스바겐은 세계 최대 완성차 메이커이기에 LG로서는 인재도, 기술도, 판매처(파트너)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 위기감이 SK에 대한 전방위적인 소송 전으로 분출된 것이다.

LGES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ITC소송이 진행된 이후 국내업체 뿐만아니라 외국 업체로 인력유출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 LGES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수차례 기고를 통해서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의 미래 가치에 대해서 강조해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을 무기로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을 압박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 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필자는 미 행정부의 변화에 따라 ITC가 내리는 지식재산과 영업비밀 침해 관련 제재 판정의 강도가 더욱 세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내 산업계와 특허법률계는 ITC 분쟁 해결이 갖는 장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할 것이다. 보톡스 분쟁, 배터리 분쟁 등 우리 기업들이 분쟁을 ITC에 가져가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 기업을 제재하거나 높은 손해배상을 받고자 하는 목적은 1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후발주자에 대한 견제와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신속한 결과 도출, 강력한 증거개시(디스커버리)제도 또한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최종 판정을 교훈삼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미국 ITC와 같은 제도를 국내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우리도 30여 년 전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무역위원회(KTC)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간 활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시스템, 이에 맞춘 전문적인 인적구성, 특히 강력한 증거개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법제도 정비와 아울러 기업들의 인재, 영업비밀, 지식재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도 시급하다. 우리도 다양한 제도와 소송절차를 운영하고 있지만, 증거개시절차 등 투명한 조사절차 도입과 손해배상 액수의 현실화에 미온적이었다. 그 결과 기업이 인재나 기술을 탈취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또한 위증, 증거인멸 등 조사나 소송절차에서의 불법에 대한 제재가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해 이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ITC가 의견서에서 SKI가 “정기적인 관행이라는 변명으로 노골적으로 악의를 갖고 문서 삭제·은폐 시도를 했다"는 점을 지적한 부분을 다시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 기업들은 반도체(시스템 반도체도 포함), 제약 바이오, 2차 전지, 자동차 전장, 조선, 정유화학 등 미래 신기술 산업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기술격차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거나 더 벌려야 하는 입장이다.

기업이 처한 이런 현실에 맞게 기업과 정부가 하루빨리 영업비밀, 지식재산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법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 김정민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법학(부전공)을 공부했다. 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IT기업 준법팀장을 거쳐 법무법인 로베이스 파트너변호사로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위 대외협력기획 부위원장,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블록체인법학회 정회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