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LG화학 vs SK이노 배터리 분쟁 '그 이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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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LG화학 vs SK이노 배터리 분쟁 '그 이상의 의미'
  • 김정민 변호사
  • 승인 2020.02.2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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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승리 눈앞에 둔 상황...양측 협상통해 '합의' 전망
합의보다 더 중요한 것, 지적재산보호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보호체계' 갖추는것
"한국내 지재권 보호체계 확고할때, 글로벌 경쟁기업들이 넘보지 못할 것"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LG화학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한 ‘영업비밀 침해’ 제소에 관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중간 판정이 지난 14일 나왔다.

ITC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렸는데 그 이유로 ‘증거 훼손’,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모독 행위’가 거론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확인을 위해서는 공식 결정문을 검토해야겠지만, 유리한 입장이 된 LG화학이 제시한 자료에서 일부 내용을 추정할 수는 있다.

양사간의 배터리 분쟁에 관해 여러 관점의 칼럼을 기고한 바 있으나, ITC의 중간 판정이 나온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배터리 분쟁의 진행과정을 돌아보고, 향후 전개될 방향을 예측해 본 후, 우리 글로벌 기업과 국가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조기 패소 판결’, 이를 승인하는 ‘예비결정’ 그리고 ITC의 조사절차 개관

ITC의 절차는 1) 조사의 개시(제소장 접수) 2) 피제소자 대응(답변서 제출, 정지요청, 반소제기) 3) 조사기간(목표일) 설정 4) 증거개시(Discovery) 5) 심리(Hearing), 6) 판정(Determination) 순으로 진행된다.

LG화학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ITC에 SK이노베이션이 만든 셀, 팩, 샘플 같은 배터리 제품의 미국 수입을 전면 금지해달라는 내용으로 제소했고, 이후 증거개시절차(Discovery)가 진행됐다.

증거개시절차는 분쟁 당사자가 가진 증거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조사인데, 지식재산소송과 영업비밀소송의 경우 제소한 당사자 보다 침해한 상대방이 대부분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구조이므로 침해여부 입증을 위해서 상대방의 증거를 공개하여 조사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2006년 이후에는 ‘e-Discovery (Electronic Discovery)’가 추가됐는데, 종이문서 등 유형(형태가 있는)의 증거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규정에 이메일(첨부문서 포함), 보이스메일, 문자메시지, 오디오, 비디오, 스캔문서, 컴퓨터 저장기록 등의 전자적 정보가 추가됐다.

증거개시절차에서 당사자들은 상대방이 소지한 증거를 추적하고 제출을 요청하는데, 이 과정에서 서류명, 파일명이 드러난 문서는 추적에 추적을 거쳐 대부분 공개가 강제된다. 파일이 삭제되어 목록만 존재하는 경우 이를 복구하고자 ITC가 포렌식 조사명령을 하기도 한다.

포렌식(Forensic)이란 PC, 휴대전화 등 디지털 저장장치에서 삭제된 내용을 복구하거나 삭제되지 않고 남은 정보를 분석해서 소송 증거로 사용하게 하는 디지털 조사를 말한다.

증거개시절차에서 당사자가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일부 자료를 누락시킬 경우 패소될 수 있고, 특히 Litigation Hold(소송대비 자료보전)의무를 위반해 불리한 증거를 고의누락하거나 적극적으로 파기하는 경우 조기 패소 판결을 받게 될 수 있다.

LG화학은 증거개시절차에서 SK이노베이션이 제출한 문서 중 한 PC의 휴지통에 있던 엑셀파일에 기재된 980개 문서가 제출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였고, SK이노베이션이 불리한 문서를 고의로 내지 않았을 가능성을 주장해 ITC에 포렌식 명령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ITC는 LG화학의 요청을 받아들여 SK이노베이션에 포렌식을 명령하면서, "엑셀파일에 열거된 980개 문서에서 LG화학 소유의 정보가 발견될 구체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며 "포렌식을 통해 이 소송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증거들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기도 했다.

ITC의 포렌식 명령에도 증거자료의 확보가 여의치 않자, LG화학은 지난해 11월 증거개시절차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했다며 ITC에 ‘조기 패소판결'을 요청했다.

이번에 ITC가 조기 패소판결을 승인하는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말 ITC 조사국은 조기 패소 판결 예비결정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고, ITC는 조사보고서에 따른 결정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LG화학-SK이노베이션의 입장

LG화학은 "이번 판결은 ITC가 소송 전후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에 의한 악의적이고 광범위한 증거 훼손과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모독 행위 등에 대해 법적 제재를 내린 것"이라며 "추가적인 사실 심리나 증거조사를 하지 않고 LG화학의 주장을 인정해 '예비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또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법적 제재로 당사의 주장이 그대로 인정된 만큼 남아있는 소송절차에 끝까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소송이 시작된 이후 그간 법적인 절차에 따라 충실하게 소명해 왔다"면서 "ITC로부터 공식적인 결정문을 받아야 구체적인 결정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지만, 당사의 주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결정문을 검토한 후 향후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진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LG화학과 선의의 경쟁관계이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SK이노베이션간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정부와 산업계내에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법적 보호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사진= 연합뉴스
LG화학-SK이노베이션간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정부와 산업계내에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법적 보호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앞으로 전개될 방향은...그리고 이의절차는 어떻게

ITC의 이번 예비 결정으로 오는 3월 초로 예정된 변론(Hearing) 절차는 생략되고 목표일로 정해진 10월 5일 최종결정만 남게 되었다.

선례로 보아 ITC에서 영업비밀 침해소송과 특허침해 소송 예비결정이 뒤집힌 경우는 거의 없다. 조기 패소 판결이 최종 결정이 되면, LG화학의 청구내용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만든 셀, 팩, 샘플 등 배터리 제품의 미국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예비판정 12일 이내에 ITC에 검토를 요청하고, ITC가 불리한 결정을 하면 14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실제로는 미국 무역대표부, USTR)은 ITC의 판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2013년 애플의 삼성 특허 침해 최종판정에 대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으나, 그 이전에 거부권의 행사는 5회에 불과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자국기업인 애플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인 점을 감안하면, SK이노베이션이 미국 행정부를 설득해 거부권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말의 희망은 있는 것이, 조지아州 1공장 완공 2년 앞둔 SK이노베이션이 올해 CES에서 갑작스런 2공장 계획을 흘린 것이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한편, LG화학도 미시간州 홀란드공장을 증설했고, GM과 2.6조원을 투자해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모두가 행정부의 거부권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 불리한 결정을 받은 당사자는 60일 이내에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항소(Apeal)할 수도 있는데, 항소법원은 ITC의 결정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항소절차는 법률적 판단을 하게 된다.

영업비밀 침해를 대하는 우리 글로벌 기업과 정부의 자세

SK이노베이션은 이의절차를 진행함과 동시에 LG화학과의 합의를 타진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예비판정과 동일한 내용의 최종판정이 나오게 되면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부품과 소재를 미국으로 수입할 수 없어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입게 될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LG화학은 선결조건으로 ▲영업비밀 침해 사실 인정 ▲공개사과 ▲손해배상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백기투항'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한 바 있다. 예비판정으로 SK이노베이션이 궁지에 몰린 것은 사실이지만 자존심 또한 지켜야 한다.

필자가 이전 칼럼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셈법의 귀재들인 기업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야할 시기가 왔다.

분쟁 초기에 결과가 예측되지 않을 때에는 서로 자신의 입장만 주장해 협상이나 합의에 이르기 힘들지만, ITC의 첫번째 판단이 나온 지금, 양사는 각 상황별 유불리를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수천억원의 소송비용을 지불했다는 점도 협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배상금과 특허이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양사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크지만 중요한 것은 합의의 여부만은 아니다.

필자는 이전 글에서도 주장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의 마무리가 아니라 지식산업의 미래다. 섣불리 합의하고 덮는 일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 글로벌 기업들의 미래,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명제, 침해에 관해서 확실하게 책임을 지운다는 명제를 글로벌 경쟁상대 누구에게든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이번 사건을 활용해야 한다.

정부와 산업계 모두 글로벌 기술 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의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을 확고히 지키는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양사의 다툼은 더 이상 국내기업 간의 다툼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자, 바이어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번 배터리 분쟁을 계기로 우리가 최고의 기술 가진 분야(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서 다른 국가, 다른 기업이 우리의 지식재산과 영업비밀을 넘보지 못하게 확고한 방호벽을 쌓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지식재산과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된 국가적인 기준과 국내 소송절차를 완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우리기업이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e-Discovery와 자료보존의무를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본안소송에 가기도 전에 패소할 수도 있으며, 소송 당사자의 증거개시 관련 노력 여하에 따라 소송의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우리 글로벌 기업은 증거개시절차에 대한 대응계획을 반드시 마련해 두어야 한다.

평소에 사내 전자정보를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고, 소송에서 증거개시절차가 진행되는 경우, 우리 자료 관리보다 상대방으로부터 원하는 증거를 확보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인식과 관련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 김정민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법학(부전공)을 공부했다. 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IT기업 준법팀장을 거쳐 법무법인 로베이스 파트너변호사로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위 대외협력기획 부위원장,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블록체인법학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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