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LG와 SK 한국기업끼리 미국에서 소송하는 이유는?
상태바
[김정민 변호사의 IT와 법] LG와 SK 한국기업끼리 미국에서 소송하는 이유는?
  • 김정민 변호사
  • 승인 2019.09.04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 ITC제소·손해배상소송, 미국 관할 법원에서 가능
미국서는 증거보전 쉽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가능..이점 있어
국내도 정부와 국회, 법개정 통해 국민 위한 법절차 만들어야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김정민 변호사] LG화학은 지난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 앞서 올해 초에는 대법원에서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핵심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달 30일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 LG화학의 미국 내 자회사인 LG화학 미시간을 특허권침해를 이유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한다고 발표했다.

바이오제약 업계에서 메디톡스가 지난 2017년 10월 대웅제약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의 소를 국내에서 제기했으며, 올해 1월 말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메디톡스의 전직 직원이 대웅제약에 메디톡스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넘겼다"는 이유로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제소했다.

한국 기업끼리 어떤 사건이든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국가 중 미국에서 소송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국제재판관할, 미국내 어떤 법원이 사건을 담당할 것인지에 관한 관할을 따져봐야 한다.

미 ITC에 제소하는 이점

이해하기 쉽게 ‘사건과의 관련성’이 인정되면 관할이 인정될 수 있다. 이때 만약 한국 법원과 미국 법원이 모두 관할을 가진다면, 당사자가 관할 법원을 선택할 수 있다. ITC는 수입 관련 무역분쟁을 담당하는데 수입금지, 특허 등 침해행위 중지명령을 할 수 있고 재판기간이 짧은 반면 손해배상판단은 할 수 없다.

LG화학은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을 국내에서 진행한 반면,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메디톡스는 국내에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하고 있었으나 ITC에 추가로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은 ITC와 연방법원에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 사법제도가 적용하고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 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때문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미국 법인이 있는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ITC에는 SK이노베이션이 만든 셀, 팩, 샘플 같은 배터리 제품의 미국 수입을 전면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이 미국에서 소송한 이유에 관해, LG화학 관계자는 “배터리사업 해외시장 비중이 높은 미국에서 영업비밀 침해를 명백히 밝혀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서 이를 위해 LG화학은 미국에서 ‘증거개시 절차’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증거개시가 바로 '디스커버리 제도'다. 이 제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디스커버리 제도, 미국서 보편적...우리나라는 제한적

디스커버리 제도란 법정에서의 사실심리 진행 전에 실시되는 증거개시 절차를 의미하는데, 자신한테는 없는 상대방이 가진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절차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관련 증거의 보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증거를 보전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훼손한 당사자는 패소하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허법(제132조)에 일부 도입되어 있을 뿐, 모든 민사소송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2차전지(배터리) 산업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선발업체인 LG화학은 후발업체인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미 ITC에 제소하자 SK측은 특허 침해로 맞제소했다. 사진= 연합뉴스
2차전지(배터리) 산업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선발업체인 LG화학은 후발업체인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미 ITC에 제소하자 SK측은 특허 침해로 맞제소했다. 사진= 연합뉴스

미국법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관련 증거의 보전을 위해서 소송을 당했거나 또는 소송을 당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경우 당사자는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변경, 파기하지 못하도록 의무가 부과된다. 나아가 당사자들은 관련 자료가 변경, 파기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를  ‘Litigation Hold’(적절한 번역용어가 아직 없음) 의무라고 한다.

중거 보전위한 '선의의 노력' 의무 발생
 
이렇게 ‘Litigation Hold’ 의무가 발생되면 당사자는 즉시 증거보존을 위한 선의의 노력(Good Faith Effort)을 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관련 자료를 보유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직원에게 1)소송의 발생 또는 발생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2)소송자료의 보존이 필요하다는 사실 3)보존이 필요한 자료의 범위 4)관련 자료의 변경, 파기를 중단할 것 등을 공지하면, 당사자는 선의의 노력을 다했다고 인정된다.
  
영업비밀 소송에서는 기술유출 사실, 손해의 존재, 손해액의 규모, 유출행위와 손해발생사이의 인과관계 등을 입증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대부분 상대방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정황상 기술유출이 의심됨에도 피해자가 패소하거나 턱없이 적은 손해배상액 만이 인정되곤 한다. 이런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소송상대방의 자료를 들여다보고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바로 디스커버리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 피해액 10배까지 배상받아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또는 "무분별하게" 재산 또는 신체상의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 피해자가 실제 손해만이 아니라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적으로 포함해 배상받을 수 있게 한 제도를 말한다. 국내에도 2011년 하도급법 3배 배상제도 도입 이후 점차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역사가 길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1992년 맥도날드 할머니 사건인데, 할머니에게 처음 800달러의 협상안을 제시했던 맥도날드는 최종적으로 64만달러(약 8억원)를 배상했다. 최근인 2015년에는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사태로 미국에서만 17조2000억원(약 153억3300만달러)을 배상하기도 했다. 동일한 사안이지만 한국에서는 피해 고객이 1인당 100만원의 쿠폰을 받는데 그쳤다. 평균적으로 한국의 손해배상 액수는 미국의 20분의1 그친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영업비밀 침해와 같은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피해자로서 가장 힘든 일은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손해액을 증명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경우, 디스커버리 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덕분에 피해자의 사실관계 주장 입증이 비교적 쉬운 반면 가해자가 자신들의 반대 주장을 입증하기 상대적으로 어렵다.

손해액의 측면에서 보면, 피해자가 자신이 입은 손해의 10분의 1만 입증하더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10배 받을 수 있어 자신의 피해 전부를 보상받는 결과가 된다.

미국서 소송, 시간 절약하고 증거 편중 덜해...과다한 비용 발생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일단은 ITC 판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ITC가 조사를 결정하면 2020년 상반기에 예비판결, 하반기에 최종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민사소송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미국 사법제도를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하고 증거의 편중문제에서 해방돼 최종 결과에 대한 수긍이 쉬운 이점이 있다. 대신 비용은 훨씬 많이 들어간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어떠한가? 한국의 법과 제도는 한국인과 한국기업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법과 제도가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의 요구에 맞춰 적절한 시기에 법과 제도를 만들고 개선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인데, 한국 정부와 국회는 수년간 이를 등한시해왔다.

그러는 동안 한국기업은 미국에서 무수히 많은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홈경기를 못하고 어웨이경기만 하는 셈이다. 소송의 승패, 비용문제 등 모든 것이 어웨이 경기가 불리하다. 급기야 한국기업끼리의 다툼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디스커버리 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대기업이 도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상대방이 기밀을 열람할 수 있으므로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고, 어마어마한 손해배상 액수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환경에서 그 불이익을 한국 대기업이 받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꼼수는 오래 가지 못한다. 이제라도 사회가 요구하고 필요한 법과 제도를 늦지 않게 도입하는 사회분위기와 시스템이 되었으면 한다.

●김정민 변호사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법학(부전공)을 공부했다. 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으며 (주)케이엘넷 준법지원팀 팀장으로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위 대외협력기획 부위원장,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회 위원, 한국블록체인법학회 정회원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