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숨진채 발견...65년 치열했던 삶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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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숨진채 발견...65년 치열했던 삶 마감
  • 문주용 기자
  • 승인 2020.07.10 0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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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장수 서울시장 반열에 올랐던 박원순 서울시장. 갑자기 치열했던 삶을 스스로 마감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 반열에 올랐던 박원순 서울시장. 치열했던 삶을 스스로 마감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문주용 기자] 전일 오후부터 연락이 닫지 않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끝내 숨진채 발견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0일오전 0시 20분쯤 서울 북악산 숙정문 근처에서 박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9일 오전 10시 44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시장 공관을 나섰다. 이후 딸이 박 시장과 연락이 되지 않자 오후 5시 17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이상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지금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신고했다.

이에 경찰과 소방 당국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고, 수색 6시간여만에 박 시장을 발견했다.

박 시장의 마지막 모습은 오전 10시 53분 와룡공원에 있는 CCTV에 담겼고 오후 2시 42분 와룡공원에서 지인과 통화한 것이 마지막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인 8일 오후 서울시청 소속 박 시장의 전직 비서 A씨는 최근 박 시장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하였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 제출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변호사를 대동해 9일 새벽까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A씨는 2017년 박 시장의 비서로 일하며 수시로 박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등 당시 정황을 자세히 진술했고, 더 많은 피해자가 있지만 박 시장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또 박 시장이 휴대전화 텔레그램 등을 이용해 자신에게 보낸 개인적인 사진과 대화 내용을 경찰에 증거로 제출했다고 한다.

박 시장 사건은 서울시민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충격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파장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클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최종조율하기 위한 10일 오전 당정협의를 취소했다.

시민운동의 대부가 서울 행정 책임자로 변신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11년 10월 27일, 당시 만 55세의 시민운동가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박 시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벌였다가 물러난 뒤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는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으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이 단체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한국 시민운동을 진화시켰다. 이 시기에 일어난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천·낙선운동 등 굵직한 시민운동을 이끄는 '시민운동의 대부'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높였다.

그 전에 박 시장은 이름을 날리는 인권변호사였다. 학생운동으로 구속돼 서울대에서 제명된 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어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수료와 함께 검사로 임용됐다가 1년만에 박차고 나와 '인권변호사의 전설'인 고(故) 조영래(1947∼1990) 변호사와 함께 일하면서 부천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등의 변론을 담당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 중 하나로 활동했다.

'디테일 행정'....대선후보 지지율 안올라도 꿋꿋히

박 시장은 취임 이후 시민활동가·인권변호사라는 경력을 바탕으로 서울시정의 틀을 바꿨다. 시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안을 꼼꼼하게 챙겼고,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물들을 대거 서울시로 데려와 시정 곳곳에 배치해 서울시행정의 쇄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현직 시장으로서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도전을 받은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에서는 수성에 성공하며 재선 서울시장이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선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곤 했지만, 재선 성공을 계기로 박 시장은 완연한 대권 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특히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전격적으로 투명한 정보공개를 단행하는 등 결단력을 과시하며 쾌도난마의 행보를 보여 한동안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권 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8년 6월 14일에는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와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를 제치고 3선에 성공해 2022년 6월 30일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대선후보로서의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하지 않았지만 "지지율에 개의치 않는다"며 시장으로서 청년·복지·환경에 관심을 계속 쏟았고,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했다.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직접 발표한 정책은 지난 8일 '서울판 그린뉴딜'이었다. 당시 박 시장은 "세계가 혼란스럽고 방황할 때 저희는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가면 새로운 산업화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 이후를 내다보는 대대적 친환경 정책의 밑그림을 내놨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의 대부에 이어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에 올랐던 박원순 시장이 65년의 치열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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