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못 믿는 투자자들…"시장에 선반영 됐다"더니 시총 50조원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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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못 믿는 투자자들…"시장에 선반영 됐다"더니 시총 50조원 증발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8.05 2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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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닥칠 때마다 '틀에박힌' 립서비스...근거없는 낙관론보단 냉정한 현실인식 절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국내증시가 휘청거리자 금융당국의 위기 대응 능력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대‧내외 악재에 코스피‧코스닥지수가 하룻새 대폭락했으나 근거 없는 낙관론만 펼친 데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이 위기 대응은 고사하고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상황점검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지난달부터 예상했던 사안”이라며 “그 영향은 시장에 상당 부분 선(先)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하루 만에 시총 50조원 날아가

그러나 손 부위원장의 언급이 무색하게 시장은 크게 휘청거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1.15포인트(2.56%) 하락한 1946.98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 2일 2000선이 무너진 뒤 하루 만에 1950선까지 내준 것이다. 코스닥지수 또한 전일보다 45.91포인트(7.46%) 떨어진 569.79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시가총액 50조원이 증발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은 전날보다 각각 33조5000억원, 15조7000억원이 쪼그라들었다.

지수를 끌어내린 건 외국인 투자자들이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개인이 3142억원, 외국인이 4404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외국인이 371억원을 순매도했다.

이같은 외국인 매도세마저도 손 부위원장의 “아직까지 금융시장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평가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예측은 빗나간 것이었다.

물론 손 부위원장의 낙관론은 외환보유액과 단기 외채 비율,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 평가 등을 근거로 들긴 했지만 시장의 움직임과 한참 거리가 있었다.

원화 가치 또한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17.3원 급등한 1215.3원에 마감했다.

◆ 헛된 기대감만 심어주는 금융당국…신뢰도 하락 불가피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당국의 안이한 인식이 국내 증시를 끌어내리는 데 한몫했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당국 역시 지난달부터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의 실현 가능성이나 향후 파장을 예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위기 의식을 바탕으로 촘촘한 분석과 함께 시장과 소통하며 선제적인 대책 마련에 집중하는 게 맞다.

그러나 정작 손 부위원장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지난 2일 글로벌 증시가 동반 하락했으나 국내증시는 상대적으로 낙폭이 적었다”고 금융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만을 앞세웠다. 그러면서 “일본 수출규제 대처에 민‧관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미리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당장 한국 시장을 떠나려는 투자자들을 잡아두기 위해 막연한 낙관론만 펼친 셈이 됐다. 코스피‧코스닥이 추락하는 가운데 이같은 립서비스만으로는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융당국이 헛된 기대감만 불어넣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당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난다면 오히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과거 금융위기가 닥칠 때마다 금융당국은 점검회의를 소집하고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신속 대응하겠다"는 식의 '틀에 박힌'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시장이 출렁거릴 때마다 뾰족한 해법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장 기능이 작동하며 스스로 안정될 때까지 지켜보는 게 고작이었다.

시장 상황별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고, 그것이 또 대외비라고는 하지만 그 실체를 보여준 적이 거의 없으니 투자자들은 그 존재여부 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부정적이더라도 냉정한 현실 판단을 통해 닥쳐올 불안정성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는 것”이라며 “국내증시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금융당국에선 같은 일이 반복되는데 이제라도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냉정한 분석과 함께 치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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