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⑥ 저마다의 아픔을 품어주는 명절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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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⑥ 저마다의 아픔을 품어주는 명절을 기대하며 
  •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실장
  • 승인 2024.02.0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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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실장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실장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실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은 언제 읽어도 마음에 강한 울림을 남긴다. 소설 속 주인공의 평탄치 않은 삶의 굴곡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이 품고 있는 인생의 아픔이 있기에 톨스토이의 문장은 독자들의 가슴에 뾰족하게 박힌다.

안나 카레리나는 불륜 끝에 결국 기차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비극으로 인생을 마치지만 독자들은 파국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선택과 그 선택의 과정을 따라가며 안타깝고 복잡한 심경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 화제가 됐던 온라인 동여상 서비스(OTT) 티빙의 드라마 ‘LTNS’는 요즘 사람들이 안고 있는 저마다의 불행을, 저마다의 불륜 스토리로 그려냈다. 드라마의 소재로 흔하디 흔한 것이 불륜이고 사연없는 불륜은 없다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의 떳떳치 못한 행태를 추적하고 들춰내면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라 웃기면서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지점들을 만나게 된다. 

티빙 드라마 ‘LTNS’의 한 장면
티빙 드라마 ‘LTNS’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캡처

등산하며 만난 황혼커플은 불륜 상대를 통해 처음으로 인간으로 누군가에게 존중받고 사랑받는 경험을 느낀다. 남성은 돈 많은 처가를 만나 석재상을 하며 부유하게 살지만 가정 내에서는 내내 무시당하며 기를 펴지 못한다. 여성은 ‘키스 한 번 못해보고 아들 둘을 낳아’ 키우며 평생 생활전선에서 억척스럽게 살았다. 그나마 의지하던 반려견마저 죽자 마음 둘 곳이 없던 차에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한 여성으로 대우해주고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나 행복하다. 

동성커플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헤어졌지만 의사 남편과 시어머니의 갑질에 지쳐 과거의 연인을 다시 만난다. 불륜 커플을 추적해 돈을 뜯어내는 주인공 부부 역시 한 때는 뜨거운 신혼이었지만 스타트업이 망하고 그나마 몰던 택시가 침수되고 하우스푸어로 대출 이자에 허덕이다보니 어느새 섹스리스 부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에서 불륜이 미화되는 것은 아니다. 불륜 커플들은 불륜 사실이 발각되면 치졸하고 비루한 모습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애쓴다. 다만 불륜이라는 공통된 사건 너머에 팍팍하고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에 지치고 마음을 다친 사람들의 제각각의 스토리가 연민을 자아내며 이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개 한다.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키스는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사람들의 풍속을 판화에 담아냈다.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키스는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사람들의 풍속을 판화에 담아냈다. 사진=유튜브캡처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New Year's Shopping, Seoul (1921)’ 키스는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사람들의 풍속을 판화에 담아냈다. 사진=유튜브캡처

오래 전 명절이 되면 똑 같은 풍경의 훈훈한 장면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여졌다. 그리운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사람들과 자식을 기다리는 나이든 부모님의 푸근한 얼굴, 정성껏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며느리들과 규범에 맞춰 차려진 제사상,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드라마와 뉴스를 통해 쏟아졌다. 꽉 막힌 귀성길 보도에는 “빨리 고향에 가고 싶다”는 기대에 찬 인터뷰가 붙었고, 오랜만에 가족들 만날 생각에 들떠있는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가 함께 따라왔다. 여기에 ‘피곤함’이나 ‘스트레스’ 같은 불손한 단어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어느때부터인가 명절이라는 획일적인 틀을 깨려는 목소리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는 명절이 불편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고, 그 이후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위한 행동지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조차도 낡은 이야기들이 되어 이제는 각자의 입장과 방식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행복은 비슷하지만 불행은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있다. 이번 설에는 서로의 그늘을 따뜻하게 밝혀주고 아픔을 품어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디지털플랫폼 실장은 경영학 박사이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조직과 거버넌스의 변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민간 싱크탱크에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참여형 정책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주도하고 있으며, DAO 운영 등 다양한 웹3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클라우드 국가가 온다(공저)’, ‘코로나 시대 한국의 미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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