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일 칼럼니스트]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예일대 철학교수(67)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하바드대 교수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로 꼽힌다. 케이건 교수는 저서 ‘데스(Death)’에서 “죽음이 없는 삶은 세상에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역설했다.
역대 미국대통령 가운데 가장 장수하고 있는 지미 카터 대통령(99)의 77년 동반자 로잘린 카터 여사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
고인을 애도하고자 28일(현지시간) 에모리대 글렌 메모리얼 연합감리교회에서 거행한 장례식에는 전·현직 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최고위급 정치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전직 대통령 부부가 애틀랜타로 날아왔다. 미셸 오바마도 추모식장에 모습을 들어냈다.
앙숙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화당 출신의 전직 대통령 부인인 로라 부시와 멜라니아 트럼프 등도 먼 길을 달려와 조의를 표했다. 그 외 다수의 여·야 구분없이 연방의회 의원들과 조지아 주요 선출직 공무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와 마티 켐프 여사의 참석이다. 공화당 주지사임에도 불구, 민주당 출신 전직 주지사(카터 전 대통령은 조지아 주지사 출신이다)의 배우자 영결식에 부인과 함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켐프 주지사는 이에 앞서 카터 여사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조지아 주 방위군과 기타 주 자원을 배정하는 등 추모를 위한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이로 인해 미국국기와 조지아주기가 27일부터 2박 3일간 모든 주 건물과 부지에 조기가 게양됨은 물론, 장례절차도 무리 없이 진행됐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고인에 대해 애도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지난 2018년 12월 5일 ‘아버지 부시’인 조지 허버트 워커(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거행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전직 대통령 부부들이 한 자리에 나란히 앉는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으며 그들과의 만남을 피해왔던 터이다.
카터, 클린턴, 아들 부시, 버락 오바마, 트럼프 등 전·현직 대통령 5명 모두가 참석했다. 이념이 다르고 정책이 달라 서로 헐뜯는 말들도 했지만, 한 마음으로 고인이 된 대통령을 추모했다.
물론 세간의 눈총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장례식 내내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던 것도 사실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카터 전 대통령이 먼저 도착해 나란히 앉았다. 3명의 대통령 모두 민주당 출신이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입장하면서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멜라니아 여사는 먼저 자리에 앉으며, 오바마 부부, 클린턴 전 대통령과 차례로 악수를 한 뒤, 힐러리 전 국무장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와 악수를 한 후 손을 거뒀다.
이 어색함은 공화당 출신의 아들 부시가 전·현직 대통령들과 악수를 하고, 미셸 오바마에게 사탕을 건넨 장면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돌변했다.
그러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경우는 어땠을까? 역시 당시 생존해 있던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인 제널드 포드, 카터,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부시, 클리턴 등 모두가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포커 페이스의 달인들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고인의 공과(功過)를 떠나서 시민의 투표로 뽑힌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다한 것이다. 성숙된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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