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어떤 메시지 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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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어떤 메시지 전할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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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대하드라마가 돌아왔다. 역사 시간에 강감찬 장군과 귀주대첩 정도로 언급되는 고려와 거란 간의 전쟁이 KBS2의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으로 제작되었다. 

<고려거란전쟁>은 지난 2주간 4회가 방영되었는데 정통 사극을 고대하던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텐데 짧은 호흡의 드라마에 익숙한 대중들의 관심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대하드라마, 장편의 사극 드라마

대하소설은 “사람들의 생애나 가족의 역사 따위를 사회적 배경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괄적으로 다루는” 유형의 소설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하드라마를 ‘왕조의 역사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애를, 혹은 전쟁의 역사 따위를 사회적 배경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포괄적으로 다루는’ 유형의 드라마로 정의할 수 있다. 단순하게는 KBS에서 제작한 장편의 사극 드라마를 일컫기도 한다.

KBS에서 대하드라마라는 표제로 제작된 드라마는 1981년 1월 5일부터 방영된 <대명>이 최초였다. 주로 왕조의 역사나 전쟁을 다루며 이와 관련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정치와 전쟁이 주요 에피소드여서 남성 시청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는 장르였다. 

KBS 대하드라마의 대표작으로는, 1987년 10월부터 1989년 8월까지 103회를 방영한 박경리 원작의 <토지>, 1996년 11월부터 1998년 5월까지 159회를 방영한 <용의 눈물>,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104회를 방영한 <불멸의 이순신> 등이 있다.

이들 대하드라마는 한때 주말 KBS 9시 뉴스가 끝나자마자 편성돼 남성 시청자들을 TV 앞에 묶어두는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때로는 대하드라마 끝나는 시간에 KBS2에서 <개그콘서트>가 시작돼 두 프로그램이 서로 시청자를 끌어주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KBS의 간판이었던 대하드라마는 100회는 기본이고 <태조 왕건>처럼 200회가 넘는 프로젝트도 있어 제작비 부담이 컸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는 대하드라마가 생기고 대중들의 드라마 취향도 바뀌었다. 그렇게 대하드라마의 분량이 50회 정도로 줄어들더니 한동안 KBS에서 대하드라마를 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2021년 12월부터 <태종 이방원>이 KBS2에서 32회 분량의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하지만 평균 시청률 5.3%로 최소한 10%는 넘겼던 과거의 대하드라마들과 비교하면 실패작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이 드라마가 화제가 되었던 건 출연한 말이 사망해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을 때였다. 

그래서 <태종 이방원>이 종영되었을 때만 해도 KBS에서 더는 대하드라마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8월 KBS가 공영방송 50주년을 기념해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11월부터 방영할 거라고 발표했다.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지난 11일부터 KBS2에서 주말 밤에 방영되는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32회로 기획되었다. 그래서 993년, 1010년, 1018년 등 25년간 3차례 벌어진 고려와 거란 사이의 전쟁을 함축해서 그릴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방송에서 고려의 역사는 조선이나 삼국시대에 비해 적게 다뤄진 소재였다. 다뤘다 하더라도 후삼국시대 연장선에서 고려 건국을, 혹은 무인 집권기나 몽골 지배기를, 때로는 조선 개국의 출발점으로 고려 말기를 소재로 이용했었다.

그런 점에서 <고려거란전쟁>은 그간의 대하드라마들이 다룬 기간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벌어진 고려와 거란 간의 전쟁을 집중적으로 다룰 거라는 의미가 있다. 32회로 기획되었으니 4회가 방영된 지금 이미 팔분의 일이 지났다. 앞으로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4회가 방영되는 동안 이 드라마가 가진 미덕이 보였다. 인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란이 고려를 세 번 침공했다는 건 앞의 두 침공이 거란의 승리로 끝났지만, 마지막 침공은 고려의 승리로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역사 교과서에는 강감찬 장군의 활약이 중요하게 기록되었지만, 전쟁 승리에는 많은 이의 희생도 뒤따랐었다. <고려거란전쟁>은 영웅으로 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을 그리고 있다.

이런 인물들의 대표로 고려 임금 현종(김동준 분)과 전쟁 영웅 강감찬(최수종 분)이 등장한다. 현종은 쿠데타 세력이 옹립한 힘없는 임금이었지만 전쟁을 통해 각성하며 지도자로 성장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후세에 장군으로 알려진 강감찬은 사실 문신 출신이었다. 그랬던 강감찬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나라를 구한 장군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이 두 인물의 성장을 다루며 주변 인물들의 역학 관계도 함께 다루고 있다. 나라의 위기 앞에서 지도자를 자청하는 위정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고려거란전쟁>은 보여주지 않을까.

무엇보다, 역사의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피지배층인 백성들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백성이 이름 없는 영웅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역사드라마에서 목격하는 오늘날의 모습

대하드라마는 보통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책은 강력한 스포일러다. 그래서 <고려거란전쟁>의 시청자들은 고려가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거라는 걸 안다. 그래도 시청자들이 대하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의 대하드라마는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하면서 오늘날의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 과거 인물이 등장하고 역사 속 이야기가 나오지만, 시청자들에게 오늘날 이야기로 느껴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대하드라마의 미덕이기도 했다. 

KBS는 공영방송 50주년을 기념해 <고려거란전쟁>을 제작했다. 시민들이 내는 시청료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국난의 시기를 다루고 그 고난을 이겨낸 지도자들의 묵직한 이야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려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며칠간 KBS 뉴스 분위기가 달라진 걸 보면 그렇다. 의사 결정권자가 뉴스의 톤과 매너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런 분위기를 대하드라마는 피해 갈 수 있을까?

고난의 역사와 이를 극복한 지도자를 다룬다는 구실로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어설픈 용비어천가로 전락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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