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민 칼럼] 외교장관 셔츠에 GPS가 새겨진 까닭 
상태바
[윤경민 칼럼] 외교장관 셔츠에 GPS가 새겨진 까닭 
  • 윤경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15 10:3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경민 칼럼니스트] 현대 운전자들에게 내비게이션은 필수가 된 지 오래다. 매일 다니는 길이 아니라면 습관처럼 내비게이션을 켜기 마련이다. 필자는 아는 길이어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다.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길을 훤히 잘 아는 택시 기사들도 대부분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운행한다. 어디가 막히고 어디가 안 막히는지 인간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내비게이션은 이를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GPS 때문이다. GPS,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Global Positioning System)은 미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독점하지 않고 전 세계 민간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GPS 작동 원리는 위성 신호를 통해 수신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세 개 이상의 GPS 위성에서 송신된 신호를 받아서 위성과 수신기의 위치를 결정한다. 노래방 화면 가사 없이는 노래할 수 없게 된 것처럼 현대인들은 GPS 없이는 운전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박진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간부들이 왼쪽 가슴에 'GPS'가 새겨진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으로 대한민국 외교의 좌표를 설정하자는 의미일까. 알고 보니 GPS는 글로벌 피보털 스테이트(Global Pivotal State)의 약자였다.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뜻이다. 피보털(Pivotal)은 무언가 회전하는 물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축이라는 뜻을 가진 Pivot의 형용사다. 

박진 외교장관의 티셔츠에 GP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사진 제공=윤경민 칼럼니스트

그렇다면 글로벌 중추국가란 무엇인가. 전 세계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축의 역할을 하는 국가라는 뜻일 것이다. 세계 지도를 대한민국 중심으로 놓고 지구촌이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냉전 종식 이후 20년 간 미국이라는 유일무이한 초강대국 중심의 일극체제였던 국제사회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인구 14억의 거대한 중국의 부상하면서부터다. 많은 국제학자들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하며 미중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패권국이었던 스파르타가 급부상하던 아테네를 두려워하면서 빚어진 펠로폰네소스전쟁에 근거한다.

새로 떠오르는 세력이 기존 지배세력에 대항하며 위협할 때 구조적 긴장이 발생해 전쟁이 발발하는 현상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미국과 중국이 바로 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5백 년 동안 신흥 세력의 지배 세력 위협 사례가 16번 있었는데, 12번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게 앨리슨의 연구 결과다.

그래서 경제 군사적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미국에 위협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를 두려워하면서 전운이 돌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가장 유력시되는 미중 간 군사 충돌 지역으로는 동아시아가 거론된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정권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고 미국은 어떠한 현상변경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앨리슨의 예상처럼 실제로 미중 간에 전쟁이 발발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일어날지 모를 미중 전쟁이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안보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동맹국인 미국을 돕지 않을 수 없고 이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 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엇보다 김정은의 오판 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미 핵 무력을 사실상 완성한 김정은 정권이 대만 해협에서의 미중 군사 충돌을 빌미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다면 제2의 6.25, 나아가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외교·군사 전략이 절실하다. GPS, 글로벌 중추국가 전략은 그래서 인도태평양전략과 맞물려 돌아간다. 

박진 외교장관이 지난해 12월 28일 외교부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인태전략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 외교장관이 지난해 12월 28일 외교부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인태전략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말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우리나라가 21세기 인도-태평양의 시대를 맞아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포괄적인 외교 전략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태 전략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시장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수호와 증진을 대외 전략의 핵심 요소로 명시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한국의 외교적 지평을 인도 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미국은 일찍이 중국이 일본의 경제력을 넘어 월드 넘버 2로 등극한 이후 피봇 투 아시아 (Pivot to Asia)를 선언했다. 미국의 외교·군사정책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옮긴다고 대내외에 천명했던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 불안정한 대한민국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의 도움으로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GPS(Global Pivotal State), 즉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의 실현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인태전략'을 짜임새 있게 가다듬어가며 실행해야 한다. 머지않아 휴전선 넘어 북녘땅에서도 GPS를 활용한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대를 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 윤경민 칼럼니스트는 YTN에서 도쿄특파원을 역임한 일본통이다. 채널A에서 국제부장, 문화과학부장을 지냈다. 늦깎이 학도로,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덕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일본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강의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은퇴 후 전 세계 20개 도시 한 달씩 살아보기가 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홀릿 2023-12-11 13:38:42
진짜로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