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지는 청년들] ㊤ 취업·주거난서 시작된 청년 빈곤…노후 파산 악순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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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지는 청년들] ㊤ 취업·주거난서 시작된 청년 빈곤…노후 파산 악순환으로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6.26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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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3명 중 1명 "나는 빈곤층"
MZ세대 내 자산 격차 35배 넘어
청년 빈곤, 노후 파산 악순환 이어져
한국의 청년 빈곤이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젋어서 고생은 늙어서도 한다."
2023년 한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희망'보다 '절망'에 더 가깝게 서 있다. 최근 연 10%의 이자를 주는 청년희망적금을 해지하는 청년들이 가파르게 늘었다. 4명 중 1명이 중도해지를 택했다. 이 중 '월 10만원 미만' 납입자의 해지율이 49.2%로 가장 높다. 이유는 슬프다. 쓸 돈이 없어서다. 청년빈곤은 단순히 소득이나 주거 같은 경제적 빈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관계와 건강, 교육 등 비경제적 빈곤까지 여러 측면이 얽히고 설켜 있다. 과거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시기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부됐던 청년빈곤은 이제 생애 전주기로 고착화돼 삶의 질까지 좌우하는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청년에게 주어진 빈곤의 굴레를 짚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2023년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에 대한 한줄 요약이다. 이들은 살인적 취업 경쟁과 주거 불안 등으로 저축은 고사하고 대출금 상환하기에 바쁘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 청년들의 깊은 수렁을 대변하는 신조어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청년 3명 중 1명 "나는 교육·주거 빈곤층"

'나는 빈곤층이다.' 청년 3명 중 1명은 자신을 교육 빈곤층(27.8%), 주거 빈곤층(31.3%)으로 여긴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명 중 7명은 자신의 소득만으로 집을 장만할 수 없어 부모의 지원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7월 국내 19~34세 청년 403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 결과 청년의 내집 마련 욕구는 컸다. 응답자 81.2%가 내 집 마련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 19~24세의 84.6%, 25~29세 80.2%, 30~34세 78.7%가 같은 답을 했다. 연령이 낮을 수록 내 집 마련 의지가 컸으며 조사 전 대상에 걸쳐 자가 욕구가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이미 자가를 취득했다는 응답은 4.6%에 그쳤다. 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로는 80.7%가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를 꼽았고, '자산 상승 목적'(9.3%), '결혼하려고'(6.0%) 등이 뒤를 이었다. 기대하는 주거 형태 1순위는 아파트(76.6%)였다. 단독주택(11.9%), 다가구·다세대·빌라(7.5%)도 있었지만 비중이 낮았다.

대학 교육 이외 취업을 위한 사교육 부담도 안고 있었다. 대학·대학원 졸업 응답자 3550명 중 30.0%가 '취업을 위해 학원 등 사교육을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사교육 유형으로는 '취업·고시 준비'가 42.9%로 가장 많았고, '자격증 준비'(31.4%), '학교(전공) 교육의 보완'(11.9%) 순이었다. 87.0%는 사교육 비용이 부담된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86.8%가 학교 졸업 후 직업훈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구를 수행한 김형주 선임연구원은 "청년 취업난이 오랜기간 지속되면서 삶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다양한 결핍이 발생하고 있다"며 "청년 삶의 다차원적 측면을 고려한 정책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의 부가 대물림되며 청년 간 자산 격차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MZ 내에서도 벌어지는 자산 격차

MZ세대 내에서도 자산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20%의 자산이 하위 20%보다 35배 이상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기성세대보다 사회활동 기간이 짧은 MZ세대의 자산 격차가 큰 폭으로 벌어진 이유로 부(富)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30대가 가구주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1849만원으로 집계됐다.

자산 하위 20%(1분위)는 2473만원에 그친 반면 상위 20%(5분위)는 8억7044만원이었다. 상위 20%를 하위 20%로 나눈 값인 '5분위 배율'은 35.2배나 됐다. 상위 20%의 재력은 4분위(상위 20~40%)에 비해서도 두드러진 격차를 보였다. 4분위 평균이 3억6871만원보다 5억원 이상 많았다. 

소득만 놓고 보면 MZ세대 간 차이는 크지 않았다. 2020년 상위 20%는 9963만원으로 하위 20%의 3046만원에 비해 3.27배 많은 정도였다. 하지만 MZ세대 중에서도 사회활동 기간이 짧은 20대에서 자산격차가 두드러졌다. 20대 상위 20%는 3억2855만원의 자산을 소지한 반면 하위 20%는 844만원에 그쳤다. 격차가 38.92배였다. 

결국 소득에 비해 자산 격차가 월등하게 벌어진 건 부모 재력에 따른 출발선이 달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본 젊은 층의 주택 매입이 늘었다.

소위 '부모 찬스'로 자금 지원을 받은 2030세대들이 적극적으로 주택 매입에 나섰다. 여기에 2020년 주택 매입을 위한 자금 마련 계획을 증빙하는 '자금조달 계획 신고 의무제'의 허점을 노린 편법 증여도 기승을 부렸다. 부모에게 빌린 돈은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는 허점을 파고들었다.

부모에게 돈을 빌린 경우 증거로 차용증을 써서 제출한다. 문제는 개인 간 차용증은 상환기간도 5년, 10년, 20년 등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고 원금상환 기준도 없이 이자만 주기적으로 내면 된다. 결국 부모에게 돈을 빌려 이자만 주기적으로 몇 번 내다가 몇 년 뒤 팔아 차익을 내고 원금을 갚아버리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반면 일반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KB국민은행 리브 부동산에 따르면 연 소득 대비 주택구매가격 비율은 2021년 6월 18.5에서 지난해 말 기준 16.9로 지속적으로 높은 비율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평균 소득을 버는 사람이 평균 가격의 주택을 매입하기 위해선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8년6개월(2021년 6월 기준)을 모아야 함을 의미한다.

사실상 근로소득만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산다'는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한다)과 '빚투'(빚 내서 투자한다)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청년층 1인당 평균 대출잔액은 1억1158만원에 달하며 다중채무자 10명 중 3명이 30대 이하 청년층(139만명)으로 조사됐다. 청년층 다중채무자의 대출잔액은 155조1000억원으로 4년 전인 2018년 3분기(120조7000억원)와 비교하면 28.5%(34조4000억원) 급증했다. 1인당 대출평균 잔액 역시 4년 전 9096만원과 비교해 2000만원 넘게 늘었다. 

청년 빈곤이 부모세대의 노후 빈곤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든에 40대 아들 뒷바라지…노인 빈곤으로 이어지는 청년 빈곤

취업에 실패하고 부모의 품에 사는 '캥거루족'이 고령화되면서 부모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청년 빈곤이 생애 전주기를 거쳐 이어지면서 청년은 물론 부모 세대의 빈곤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식이 노후보험'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의 노인 빈곤은 여러 이유가 있다. 길어진 기대 수명으로 커져 버린 의료비 지출과 자녀 뒷바라지에 노후 준비 부족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근 '더블케어', '트리플케어'로 불리는 '기생파산'도 늘고 있다.

더블케어는 노부모와 함께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을 돌보는 것을 말한다. 트리플케어는 여기에 손자와 손녀 양육까지 떠맡는 경우다. 팔순·구순의 노부모에다 성인 자녀, 손녀와 손자까지 뒷바라지하며 허리가 휘는 6070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취업실패나 사업실패 등으로 부모에게 기생하며 경제적 부담을 키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자녀를 책임지다보니 본인까지 파산하는 기생파산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6070의 노후준비는 정작 부족하다. 한국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 수준인 70~80%에 크게 못 미치는 40% 수준이다. 정부에서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적정 생활비는 물론 최소 생활비를 마련하기에도 버거운 한계층이 적지 않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베이비붐 고령층 세대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하는 과정에서 소비 여력이 감소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어 이 연령대의 부실 위험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후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돼 있는 것도 문제다. 전체 자산의 80%에 가까운 자금이 부동산에 치우쳐 있어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택연금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아직 한계가 뚜렷하다. 주택가격이 도시와 지방 간 차이가 크고 대출금액도 크지 않기에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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