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컬쳐 프리즘] 바가지 가격 논란은 '문화지체 현상'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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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의 컬쳐 프리즘] 바가지 가격 논란은 '문화지체 현상'의 단면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승인 2023.06.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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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봄철 축제 시즌을 넘어 이른 휴가 트렌드가 부각하면서 바가지 가격이 논란을 일으켰다.

바가지 가격 논란은 일단 개인이나 상인에게 비난이 집중하고 있지만, 구조적 제도적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보면 전반적인 문화 지체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바가지요금 논란을 일으키는 이들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라서 달라진 국민의 의식과 행동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는 듯싶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바가지 가격은 1970~80년대 바캉스 문화의 생성과도 맞물려 있다. 이른 바 '7말 8초'의 여름 휴가문화다. 당시 바캉스, 즉 휴가시즌에 관광지를 방문하는 도시인들에게 높은 가격이 매겨지곤 했고, 이러한 폐습은 ‘바가지를 씌운다’라는 표현으로 압축되었다.

휴가에 대한 달라진 인식

특히, 문화 심리 차원에서 관광지 효과와 기분 효과는 바가지 가격 현상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정보 비대칭 효과도 작용하고 있었다. 관광지의 손님들은 일단 뜨내기손님이 많다. 다시 찾아올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관련 정보도 없다. 늘 관광지는 이럴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굳어지게 하는 배경에는 기분 효과가 있다. 모처럼 기분 내려왔기 때문에 돈을 아끼지 않으려는 심리가 생긴다. 가격 때문에 실랑이하거나 자리를 못 잡고 제대로 이용조차 못 하면 기분을 망칠 수 있다. 이런 낭패를 피하려는 심리 때문에 종종 휴가지에서 상인들이 부르는 값을 치르게 된다. 더구나 가부장적 사회 구조에서는 리더에 해당하는 사람이 관련 비용을 책임지기 마련인데 1년 내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려는 마당에 비용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은 변했다. 휴가는 7말 8초에만 가지 않는다. 연차를 쓸 수 있는 직장인 문화도 형성이 되었다. 가족 단위로 주말이면 전국에 걸쳐서 명승지는 물론이고 행사장 특히 축제 현장을 방문한다. 나들이 가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을 만큼 레저문화가 일상화되었다. 예전에 어쩌다 한 번 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적인 물가 정보를 나름대로 다 파악하고 있다. 스마트 모바일 환경이 전 세대에 골고루 펴졌기 때문이다. 장노년층도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다. 덕분에 과거처럼 정보의 비대칭 현상은 거의 없다. 다른 지역이 어떤 가격 체계를 가졌는지 바로바로 비교 검토할 수 있다. 의식있는 소비자들은 언론보다 더 먼저 바가지요금 현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관한 개선을 이끌어낸다.

특히 공정 세대를 자임하는 2030 세대들은 더더욱 잘못된 관행을 묵과하지 않는다. SNS 통해서 정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불매운동에도 나선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 속에서 단지 '코로나 19 때문에 손해를 봤기 때문에 가격에 전가한다'는 식의 논리는 더 이상 합리화될 수 없다.

바가지 가격 논란이 터지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행사 주체, 나아가 자치단체에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너나 할 것이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들여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오점은 치명타가 된다. 많은 예산을 들인 행정적 노력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오지 마을에서 열리는 행사 내용도 이제는 순식간에 전국민에게 알려지는 요즘이다. 코로나 19 때만 해도 해외로 갈 수 없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일부 바가지 가격이 용인된 면도 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여차하면 비슷하거나 더 낮은 비용의 해외여행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소래포구 상인들은 지난 14일 자정대회를 열고 "호객 행위, 섞어 팔기, 물치기, 바가지 등을 척결하겠다"며 사죄의 뜻으로 큰절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천 소래포구 상인들은 지난 14일 자정대회를 열고 "호객 행위, 섞어 팔기, 물치기, 바가지 등을 척결하겠다"며 사죄의 뜻으로 큰절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단순히 개인 사업자만 탓할 순 없어

그렇다고 해서 바가지 가격 사태에 대해 일부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만은 없다. 우선 고물가 탓에 기본적으로 재료 단가가 높아진 점은 분명 있다. 여기에 지자체 행사의 경우 낮은 입찰 단가가 이런 바가지 가격을 조장하는 제도적 문제도 있다. 상인 입장에서는 낮은 입찰가를 충당하기 위해선 결국 손님들에게 높은 가격을 떠안기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운영 주체들도 이같은 바가지 가격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지 못하면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저렴하게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으며, 그 또한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수많은 미디어에서는 저렴하면서 많은 양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앞다투어 소개하지만, 그것은 허상일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자영업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행태들이다. 물산이 비교적 풍부한 지역이라고 해도 엄연히 생계의 현장이다. 무조건 저렴하지도, 바가지요금도 아닌 적절한 가격에 구매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바가지 가격은 이제 우리 국민에게만 한정되는 이슈가 아니다. 한류를 체험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 피해 사례가 늘어날 경우 이들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해 호감을 키워 온 그들에게 한순간에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바가지 가격이라는 '문화 지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가 다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한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다. 1990년대 말부터 K 컬쳐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해왔으며, 문화 현상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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