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조선의 리모델링…“우리 화물, 우리 배로 나른다”
상태바
계획조선의 리모델링…“우리 화물, 우리 배로 나른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05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폐지 20년만에 해운재건 착수…해운·조선·철강산업에 연관효과

 

우리나라 해운·조선 역사 초창기에 ‘계획조선(計劃造船)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취지는 “우리 화물은 우리 배로 나르고 우리 배는 우리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는 것이었다. 1976년에 도입돼 1998년에 공식 폐지되었다.

이 제도에 의하면, 정부가 실수요자(해운회사)를 선정해 산업은행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국내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하도록 했다. 조선·해운·철강등 연관산업을 동시에 육성하는 제도였다. 이 제도 시행으로 제18차 계획조선까지 181척, 455만톤의 선박이 건조됐다. 초창기 해운·조선업 성장에 크게 기여했고, 철강산업에도 파생효과가 컸다.

 

정부가 20년 동안 사장되어 있던 계획조선제도를 리모델링해 부활시켰다.

정부는 5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확정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 가운데 계획조선과 비슷한 제도가 들어 있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매출액이 10조원 이상 감소하고,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우리 해운산업을 살리겠다는 취지다. 게다가 조선, 철강 산업등 관련 산업에 힘을 실어주자는 취지도 실려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오는 7월 설립되는 한국해양진흥공사와 기존 선박 신조지원 프로그램의 투자·보증 등을 통해 향후 3년간 중소 선사의 벌크선박 140척 이상을 포함하여 200척 이상의 신조 발주 투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포함해 컨테이너 60척 신조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해양진흥공사는 별도의 금융지원 기준을 마련해 중소선사들이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원할 계획이며, 중고선박은 물론 선박평형수 처리시설 등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외항화물선 50척 대체건조에도 지원할 계획이며, 아울러 신조건조 지원 대상을 확대해 중장기적으로 선박 개조, 연안선박 건조까지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또 유사시를 대비해 최소한의 해상운송 능력을 국가가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법 제정을 통해 국가필수 해운제도를 도입·운영키로 했다.

 

계획조선제도를 부활하자는 주장은 2년전 업계에서 제기되었다. 조선·해운업계 위기를 극복하고, 철강업계에도 내수창출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2년전 부산시는 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선·해양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지역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고 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정부 10대 건의과제를 정리해 정부와 국회에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조성제 부산상의 회장(BN그룹 명예회장)은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돈을 좀 풀어줘야 하는데 그냥 풀 수는 없고 어떻게 푸느냐. 조선소에 일류 엔지니어들을 전부 모아서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5만~6만톤, 55미터 선형의 배를 빨리 개발해서 정부 돈이나 안 되면 펀드를 만들어서라도 한 100척 정도 먼저 발주하는 것이다. 생산원가만 받고 조선업이 연명만 할 수 있도록 발주해놓으면 다시 호황이 오면 살아날 수 있다.“

조 회장은 계획조선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국내 조선소의 일류 엔지니어를 활용해 장기적으로 조선산업을 일으키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구조조정」이라 함은 부채를 줄이는 것(debt restructuring)을 의미한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해운과 조선업종의 막대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불요불급한 자산을 매각하고, 오너의 사재를 출연하며, 채권자의 몫을 줄이자는 내용이다. 그 와중에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국유화되었다. 조선소는 수주 감소로 인력과 설비 축소를 해야 했다. 중소 조선소는 은행관리 또는 법정관리를 피할수 없었다.

 

▲ 회생절차가 추진중인 성동조선 전경 /성동조선 사이트

 

지난해 이후 세계 경기가 회복기조로 돌아서고 해운 및 조선시장에 훈풍이 돌고 있다. 이제 다시 정부 주도로 해운과 조선업을 살리자는 취지다.

국내 해운업과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국내의 선박 수요를 일으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내에는 노후 선박이 많다. 세월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쓰던 노후선을 개조해 사용하다가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연안여객선 가운데 노후선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여객선들을 차제에 교체하고, 이를 위해 금융기관에 저리의 자금을 대주면 상생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 조선소는 컨테이너선등 대형 선박 건조를 위해 설비 및 인력이 구조화돼 있다. 하지만 기존 설비를 재활용하고, 인력을 재교육시킬 경우 같은 산업생태계에서 여객선 건조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회복 기조를 살리고 설비와 인력을 보존하는 차원에서도 추진해볼만한 일이다.

조선과 해운산업은 보완관계에 있을 것 같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배척관계에 있었다. 국내 해운업계는 신조선을 할 여력이 없어 용선(임대)을 해왔고, 그러는 사이에 국내 조선소에선 외국 선주 또는 선사를 위해 저가의 선박을 만들어줬다. 세계 1,2,3위의 조선소들이 지난 10년간 국내 해운업계의 경쟁사들에게 싼 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지금 국적선 선복량은 2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2016년 8월 국적 원양컨테이너선 선복량은 105만 TEU이었지만, 지난해 10월 현재 40만 TEU로 감소했다. 한진해운 파산의 여파가 컸다.

이제 우리 국적선의 선복량을 증대시켜야 할 때다. 정부 주도로 국내 조선소에 주문을 내도록 선박금융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계획조선은 WTO(세계무역기구)의 보조금 금지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었다. 1998년 이 제도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이 조항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펀드 형태로 운영할 경우, 보조금 금지 규정을 피할수 있다. 국책은행이 일정 지분을 갖고 국내 자금을 동원해 펀드를 만들어 내수를 창출하는 다양한 방안이 나올수 있다. 그렇게 해서 우선 국내 노후선을 대체하고, 조선·해운경기 회복후의 선박을 미리 발주하는 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해운·조선 경기는 수년째 침체를 겪어 왔다. 우리 경제에 큰 암덩어리였다. 하지만 해상운송이 글로벌 물동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국제 교역은 장기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분단되어 있어 섬나라나 다름없다. 해운·조선업이 뿌리채 뽑혀서는 안될 이유다.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해운·조선·철강산업이지만 국가적으로 필요한 기간산업이며, 언젠가는 살아날 업종이다. 이 업종을 살리기 위해 국내에서 수요를 창출하는 방안은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