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을 사실로 받아들인 소설 ‘훈민정음 암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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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을 사실로 받아들인 소설 ‘훈민정음 암살사건’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3.14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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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출판사

팩션(faction)이라는 장르의 소설은 사실이 분명해야 한다. 사실과 사실의 틈바구니에 비어 있는 공간에 작가가 허구의 살을 붙여 소설을 만들어야 팩션으로 자리를 잡을수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고 팩션을 쓰는 것은 공상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김재희라는 시나리오작가가 쓴 「훈민정음 암살사건」(2006년, 랜덤하우스 코리아)는 그런 부류다.

일단 가림토 문자란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 고조선이 가림토 문자를 만들어 썼다는 것은 환단고기라는 책에 나오는데, 이 자체가 역사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 ‘훈민정음 원류본’이라는 책자가 있었다는 얘기도 뜬금없다. 설사 그런 책이 있다손 치더라도 원류본이라는 일본풍 냄새가 나는 현대식 한자어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상당수가 일본이 쓰는 한자어에서 왔다.)

그 믿어지지 않는 소재를 사실로 믿고 역사학자를 동원하고 일본 우익을 동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허황된 논리를 제시하는 국수주의자들의 주장이나 다름 없다.

스토리의 흐름도 난삽하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겨냥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게 아닐까, 생각조치 들었다. 스토리를 억지로 꾸며낸 느낌이 강하다.

한글 창제 과정을 테마로 했지만, 뜬금 없는 추리소설에 불과하다. 무협 소설이라고나 할까, 탐정 소설 쯤 될 것 같다.

 

▲ /그래픽=김현민

 

역사학계에서 사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환단고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풍속이 하나같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백 리 되는 나라의 땅에서도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에 삼랑(三郞)을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다."

 

환단고기를 믿는 사람에게서 가림토 문자가 기원전 2181년 고조선 시대에 고대 문자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들은 한글이 가림토 문자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 책자에 그려진 문자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란 책은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 계연수(桂延壽)라는 사람이 역사책이라고 서술한 것이다. 삼성기(三聖紀),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 태백일사(太白逸史) 등 네권으로 되어 있다.

계연수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계연수는 다음 경신년(1980)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고 제자 이유립(李裕岦)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1979년에 환단고기는 수십부 영인된 뒤 1982년 일본인 가시마(鹿島昇)가 일역(日譯)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을 계기로, 세간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선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로 보고 있다. 계연수가 70년 이후에 세상에 공개하라고 한 것은 이해되지 않으며, 관직명 인명, 지명 등의 용어에서 시간적 비약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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