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모자의 나라’…단발령 이후 사라져
상태바
조선은 ‘모자의 나라’…단발령 이후 사라져
  • 김송현 기자
  • 승인 2017.12.11 1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수집가 “한국은 모자로 신분 나타내는 유일한 나라”

 

19세기부터 조선의 유물들을 모아온 독일의 수집가는 “한국은 모자로 신분을 나타내는 유일한 나라”로 이해하고 다양하고 특이한 모자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Museum für Völkerkunde Hamburg) 초대관장을 역임한 틸레니우스라는 사람인데, 구한말 독일 주재 총영사였던 마이어(H.C. Eduard Meyer, 1841~1926)를 통해 한국모자를 모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에 함부르크민속학박물관과 미술공예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가 책자로 발간되었다. 그 책자에 소개된 조선시대 모자를 보면 특이한 것들이 많다.

 

▲ 군뢰복다기 /문화재청

그 첫째가 군뢰복다기다. 군뢰(軍牢)는 군대에서 죄인을 두루는 병졸인데, 군장(軍裝)을 할 때 쓰던 갓이다. 빨간색 고깔모자처럼 생겼고, 모자에는 ‘용기 용’(勇)자가 새겨져 있다. 아마 후퇴를 하거나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에게 군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자는 뜻이 아닐까. 지금 우리 군에서 헌병들이 붉은 모자를 썼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또 송낙이라는 승려의 모자도 소개됐다. 소나무 겨우살이(송라)를 역어 만들었다. 서양 모자의 형태가 결합된 독특한 유물들은 현재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것들이다.

또 음악인들이 착용하는 진현관(進賢冠)이라는 모자도 게재되었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제복을 입은 사람 이외에는 모자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자를 쓰더라도 추운 겨울날 방한용이나, 멋을 부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될 뿐이다.

▲ 송낙 /문화재청

하지만 과거엔 우리 조상들이 거의 모자를 썼다.

어른이 되면 망건과 상투에 두르는 상투간을 썼다. 양반들은 외출할 때 갓을 썼고, 소년들은 대나무로 만든 초립을 머리에 올렸다.

결혼할 때 신부는 화관(花冠)을 올렸다. 족두리는 고려시대 이후 여성들의 예식용 모자로 사용되었고, 상례를 치를 때 백사모, 백립등을 올렸다. 제사를 지낼 때도 유건을 썼다.

무당들의 모자는 화려했다. 승무를 추는 고깔모자는 아름다웠다. 조선시대 초상화를 보면 머리에 무언가 모자를 쓰고 있다.

 

19세기 은둔의 나라 조선이 서양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조선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이 나라를 ‘모자의 나라’라고 기록한 경우가 많다.

▲ 진현관 /문화재청

앙리 갈리라는 서양인은 ‘극동전쟁’(1905)이라는 저서에서 “조선의 모자의 종류는 4,000 종에 달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샤를르 바라는 ‘뚜르 드 몽드’에서 “한국은 모자의 왕국이다. 공기와 빛이 적당히 통하고 기능성에 따라 제작된 조선의 모자 패션은 파리인들이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선비들은 의관정제라 하여 외출 시 반드시 옷과 모자를 갖췄으며 구한말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우리 민족은 모자와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선비들은 머리카락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자 했다.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도구였던 모자는 단발령 이후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이다.

 

우리민족은 상고시대부터 모자를 써왔다.

고깔은 승려나 무당 또는 농악대가 머리에 쓰는 모자를 뜻한다.

상고시대부터 사용된 우리 민족의 상징적 표상"이라며 "고깔에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단군의 홍익이념과 겸손하게 받들며 기도하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고구려 벽화에는 말을 타고 화살을 쏘는 기마병이 머리엔 기다린 깃을 장식한 모자를 쓰고 있다. 경주 신라고분에서 발굴되는 왕관의 섬세함은 임금의 권위를 보여준다. 작은 무덤에서 발굴되는 귀족들의 무덤에서도 관이 발견된다. 관은 직급을 의미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