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감산 없다" 삼성전자의 승부수…되살아난 반도체 '치킨게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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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감산 없다" 삼성전자의 승부수…되살아난 반도체 '치킨게임'의 추억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10.31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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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빅3' 엇갈린 행보…삼성전자 "감산·감축 없다"
빅3 위주 시장 재편, 반도체 치킨게임 재현 없을 수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회장 취임 후 난 28일 오후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에 있는 협력회사를 방문해 직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혹한기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 1위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선언하는 동시에 공격적 투자의 길을 선택했다.

불황 끝에 벌어질 '옥석 가리기'의 승자가 되겠다는 삼성전자의 큰 그림이 숨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자칫 2000년대 중반 빚어졌던 반도체 업계 '치킨게임'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새어 나온다. 

삼성전자는 내년도 감축 및 감산을 단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유일하게 투자 선택한 삼성전자

31일 반도체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빅5' 중 유일하게 감축이나 감산 대신 투자를 선택했다. 

인텔은 지난 27일(현지시각)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내년 운영비 중 30억 달러를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25년까지 80억~100억 달러 규모의 운영 예산을 줄인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드 내년 설비투자 금액을 기존 계획보다 각각 50%와 30% 이상 줄인다. 물가 상승에 따른 IT기기 수요 둔화, 반도체 다운 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 예산의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황으로 유발되는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생산 계획도 낮춰 잡았다.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에 들어간다. 

삼성전자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는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투자를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는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방침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본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치킨게임의 추억

2007년 대만 D램 업체들은 앞다퉈 생산량을 늘리며 제1차 치킨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대만 업체를 필두로 반도체 업체들은 극단적 가격 인하 경쟁에 나섰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당시 주력제품이었던 512메가바이트 DDR2 D램 가격이 2009년에는 0.5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2006년 6.8달러를 찍었던 제품 가격이 3년 사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폭락했다. 비슷한 시가 1기가바비트 DDR2 D램 가격도 0.8달러 수준으로 내려 앉으면서 D램 업체들은 2년 가까이 눈물 겨운 출혈 경쟁을 펼쳤다. 

결국 2009년 독일의 D램 메모비 반도체 업체 '키몬다'가 파산하면서 1차 치킨게임은 마무리됐다. 키몬다는 2006년만 해도 세계 2위의 D램 생산업체였지만 파산 직전 점유율이 5%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2008년 4분기 누적 적자가 25억 유로, 당시 환율로 약 3조4000억원에 달하자 백기투항했다. 

2차 반도체 치킨게임은 2010년 대만과 일본 기업들이 다시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와 증산을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1차 치킨게임 후 살아남은 메모리 업체들은 D램값 상승과 함께 승자 독식의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또다시 출혈경쟁이 극단으로 치닫더니 당시 주력 제품이었던 1기가비트 DDR3 D램 가격이 2010년 10월 1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D램값의 속절없는 하락에 일본의 D램 업체 엘피다가 위기를 맞았다. 당시 D램 시장 점유율 3위(16.2%)였던 엘피다가 2011년 4분기 적자로 돌아섰다. 이후 적자를 견디지 못한 엘피다는 경영권을 마이크론에 넘겼다. 2차 치킨게임도 엘피다의 몰락과 함께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두 차례 치킨게임의 파고를 맞은 D램 업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빅3' 체제로 재편됐다. 이들 빅3는 이후 시작된 '슈퍼사이클'로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2022년, 세계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머지 않아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엇갈린 행보가 시장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내년도 설비 등 투자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파국은 없다" 전망하는 까닭

과거 두 차례의 치킨게임과 같은 파국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비슷한 규모의 기업이 많으면 출혈경쟁으로 반도체 업계 전체가 타격을 입지만 현재는 '빅3' 중심으로 시장이 나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업황 개선 때까지 버틸 여력도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투자 역시 생산량 확장보다 공정 고도화와 기술 투자 등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당시와 다르다. 공정 전환 과정에서 기존 반도체 생산량은 줄어들기에 자연스럽게 감산이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는 규모의 경제, 원가 경쟁력, 현금성 자산 측면에서 감산할 필요가 없으며 유동성 걱정도 없고 오히려 인수합병(M&A) 기회도 찾아볼 만한 절호의 기회”라며 “‘메모리 경쟁사 대비 ‘나 혼자만 레벨업’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은 4분기에도 지속되겠지만 원가경쟁력 덕분에 이익의 감소 폭이 경쟁사보다 현저히 적을 것”이라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선두업체로서의 경쟁력이 잘 드러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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