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희년, 솔론 개혁, 보노…부채탕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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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희년, 솔론 개혁, 보노…부채탕감의 역사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3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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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구 “금융취약층 123만명 부채 탕감”…건전한 시민사회 위해 인식 공유해야

 

정부가 장기연체자 123만명에 대해 부채를 완전 탕감해주기로 했다. 금융취약계층의 신용회복을 위해 정리되는 부실채권의 규모는 약 22조원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1일 금융계 협회장과 금융공공기관장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국민행복기금 및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21조7,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기관장들도 동의했다. 탕감 대상자는 해당 기관의 조회시스템 또는 신용정보원 소각채권 통합조회시스템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모럴해저드’(moral hazard)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채무자의 빚을 없애주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일부 채무자들은 막대한 빚을 졌음에도 호화판 생활을 유지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조사와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채무 탕감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FIC컨벤션에서 열린 카카오뱅크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금융위 홈페이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러나 돈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다. 채권자는 채무자에 대해 유·무형의 권력을 행사했고 채권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노예로 전락했다.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하려 하면 감옥에 가거나, 농토를 버리고 유민이 되어야 했다.

 

▲ 그리스 집정관 솔론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채무 탕감의 대표적인 예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솔론(Solon)이었다.

BC 594년 아테네 집정관 솔론은 광장에 나와 목판을 펼쳐들고 읽었다. 그 목판에는 부채탕감 법령이 새겨져 있었다. 솔론은 빚을 갚지 못해 노예가 된 사람을 자유의 몸으로 해방시켰다. 아울러 채무계약서는 모조리 폐지하고 저당 잡힌 토지는 본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 빚 때문에 이웃 도시국가에 노예로 팔려간 시민들에게는 국가가 몸값을 지불하고 귀향을 도왔다.

솔론이 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하나였다. 헥테모로이(hektemoroi)라는 특수계급을 구제해 주어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헥테모로이는 신분은 자유민이지만, 귀족이나 부자에게서 땅을 빌려 경작하고 거둬들인 작물의 6분의5를 이자로 갚아야 하는 사실상 예속민이었다.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셍산물의 6분의1로 이자를 갚기는커녕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웠다. 결국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돈을 빌려준 귀족과 부자들의 노예가 되어야 했다.

고대 아테네는 서양문명의 발상지다. 화려한 문명의 이면에는 이런 어두움이 있었다.

자유민이 노예로 전락하면 병력을 충당하기 어려워지고 세금을 걷을 대상도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군에 가거나 전비를 낼 턱이 없다. 솔론은 집정관이 된 후 헥테모로이의 채무탕감을 선언한 것이다.

역사에서 이를 ‘솧론의 개혁’이라고 한다. 솔론의 개혁을 통해 아테네는 빠른 속도로 안정됐으며, 그리스에서 다른 도시국가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된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솔론은 가난한자에게만 특별조치를 한 것이 아니다. 아테네 시민들을 소유한 재산에 따라 4개의 계급으로 나눠 계급에 따라 참정권의 정도를 나눠 줬다. 부자들은 부채탕감법으로 재산상 손해를 입었지만, 정치적 권리를 얻게 되었다. 솔론은 가난한 자들의 혁명을 막고,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계층간의 타협과 화해를 유도한 것이다.

 

성경에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부채 탕감을 해주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 「희년」(禧年; year of Jubilee) 제도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부채를 탕감해주어야 한다.

구약성서 레위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구년이라 칠월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크게 불지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레위기 25:8-10)”

이 제도에 따르면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을 맞으면 노예로 팔렸던 사람들은 노예에서 풀려나고, 조상의 재산을 저당 잡혔던 사람들은 재산을 돌려받았다.

 

▲ 고대 수메르의 점토판 문자 /위키피디아

 

가장 오래된 기록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다. 유태인 전통은 수메르인들과 함께 살면서 받아들인 것 같다. 유태인의 선조 아브라함은 지금 이라크 남부인 수메르 땅 우르에서 왔다.

BC 2400년,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부채탕감 법령이 있었다. 수메르인들의 부채탕감법에는 많은 경우 그 전까지 있었던 모든 빚 관계를 무효화하고 차압한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며,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진 가족들을 독립자영농민의 신분으로 복귀시켜주도록 했다.

유태인들의 부채탕감 풍속에 앞서 중동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시행되었다.

이슬람에서도 채무자들에게 유리한 전통이 있다. 이슬람에서는 고리대금업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채무자 보호를 위해 고리대금업뿐만 아니라 모든 돈 거래에 있어 이자 받는 것 자체를 근원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갈등 구조에 채무자의 손을 영구적으로 들어주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 부유한 서구 국가들이 가난한 나라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주빌리(Jubilee 2000) 프로젝트’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영국의 마틴 덴트 교수와 윌리엄 피터스 전 외교관이 성공회와 연대하고, 록그룹 U2의 보노 등이 힘을 보태 대중적인 캠페인으로 번져가면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외채 탕감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가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사서 소각해버리는 운동이다. 국내에서는 이와 유사한 주빌리은행이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

 

▲ 록스타 보노(가운데 검은옷)와 동료들이 'Jubilee 2000' 행사를 벌이고 있다. /Jubilee 2000 사이트

 

부채 탕감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솔론이 건전한 시민사회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부채 탕감이 절실하다고 깨달은 것처럼, 우리 사회의 극빈층들에게 자활의 기회를 주어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시대적 요구다. 금리 30%의 사채를 끌어쓰며 갖은 모욕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인권을 부여하는 것은 성숙된 사회의 의무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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