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의 희생양 단경왕후…『7일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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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의 희생양 단경왕후…『7일의 왕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7.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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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중종 반정 직후에 폐위

 

KBS 2TV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 『7일의 왕비』는 중종 반정으로 남편이 임금이 되지만, 강제로 이혼 당한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 ~ 1557)의 스토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 KBS 2TV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 『7일의 왕비』/KBS 웹사이트

 

단경왕후는 조선 왕조사에서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비로 기록된다.

1506년, 9월 9일(음력) 역적의 딸이라는 누명을 쓴채 19세의 왕비는 궁궐에서 쫓겨난다. 12살에 결혼했으니, 남편과 헤어진 것은 결혼 7년째다. 남편이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그는 아버지 때문에 한 많은 생을 산 것이다.

연산군 12년, 성희안, 박원종, 유순정 등 대신들은 악정을 일삼는 연산군을 폐위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晉成大君)을 옹립하기로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진성대군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거사 당일인 9월 1일, 무사들이 진성대군 집을 에워쌌다. 진성대군은 형인 연산군이 휘두르는 칼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사들이 집을 포위하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진성대군은 ‘이제야 죽는구나’며 벌벌 떨고 있는데, 부인 신씨가 바깥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집을 에워싼 말들이 집의 바깥 쪽을 향해 서 있었다. 부인은 “만약에 말머리가 집쪽으로 향해 있으면 위험할 수 있지만, 말머리가 밖으로 향해 있으면 우리를 보호해주려는 것”이라며 남편을 진정시켰다. 나이 19세의 젊은 부인은 현명했고, 강단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여인이었다. 중종은 유약하고 우유부단했다. 게다가 정변을 주도한 신하들이 설치는 상황에서 남편이자 임금인 중종은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부인 신씨의 아버지는 신수근(愼守勤)이다. 신수근은 누이가 연산군의 부인이고, 딸이 진성대군의 부인인 권신이다. 그는 어머니가 임영대군의 딸로 온통 이씨 왕실과 겹겹이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런 덕택에 연산군 때 좌의정과 우의정을 지냈다.

반정 직전에 모의자들의 두목격인 박원종 등이 좌의정인 신수근에게 넌지시 “누이와 딸 중에 그 어느 편이 더 중하냐”고 물어보았다. 신수근이 그 말의 의미를 금새 알아차렸다. 신수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임금(연산군)이 비록 포악하나 총명한 세자를 믿고 살겠다”고 화를 냈다.

반정 세력들은 신수근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적폐 세력이 되었다. 만일 그때 “딸의 편에 서겠다”고 하고 쿠데타 세력을 지지했더라면 그의 딸은 왕비로 남아있었고, KBS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사가 일어나자 신수근은 하루 아침에 역적이 되었다. 쿠데타 세력들이 신수근을 굳이 죽여야 했을까. 신수근은 자신에게 가담 여부를 묻는 반정세력들을 고변(고발)하지 않았다. 그 것만으로도 살려줄수 있었을텐데, 권력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산군때 정승을 한 죄, 연산군의 처남이라는 죄로 타도할 대상, 즉 적폐세력이 된 것이다. 반정 세력들은 거사를 일으킨 후 가장 먼저 신수근을 죽였다. 연산군의 부인인 신수근의 누이가 폐비가 되는 것은 당연한일, 그런데 딸이 문제였다.

반정 세력들은 신씨의 폐위를 주장했다. 18살의 중종이 언젠가 장성해 권력을 쥐면, 왕비 신씨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이 걱정되었다. 싹을 자라기 전에 잘라야 한다는 절박감에 박원종의 무리들은 임금에게 왕비의 폐위를 요구했다. 죄목은 역적의 딸이라는 것.

중종은 유약했다. 임금을 갈아치운 세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자신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을 걱정해야 했다.

이때 신씨는 남편을 위해 “어느 자리에 있어도 무방하다”고 오히려 남편을 위로했다. 9월 2일 반정이 일어나고, 9일에 신씨가 궁궐에서 쫓겨났다. 드라마는 『7일의 왕비』라고 했지만, 정확하게는 8일째다.

 

▲ /그래픽=김송현

 

신씨가 궁에서 쫓겨나던 1506년 9월 9일(음력), 『중종실록』은 이렇게 기록했다.

 

유순·김수동·유자광·박원종·유순정·성희안·김감·이손·권균·한사문·송일·박건·신준·정미수 및 육조 참판 등이 같은 말로 아뢰기를,

"거사할 때 먼저 신수근을 제거한 것은 큰 일을 성취하고자 해서였습니다. 지금 수근의 친딸이 궐내(大內)에 있습니다. 만약 궁곤(宮壼, 왕비)으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고 인심이 불안해지면 종사에 관계됨이 있으니, 은정(恩情)을 끊어 밖으로 내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뢰는 바가 심히 마땅하지만, 그러나 조강지처(糟糠之妻)인데 어찌하랴?"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신 등도 이미 요량하였지만, 종사의 대계(大計)로 볼 때 어쩌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쾌히 결단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종사가 지극히 중하니 어찌 사사로운 정을 생각하겠는가. 마땅히 여러 사람 의논을 좇아 밖으로 내치겠다."

하였다. 얼마 뒤에 전교하기를,

"속히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의 집을 수리하고 소제하라. 오늘 저녁에 옮겨 나가게 하리라."

하였다.

 

초저녁에 신씨(愼氏)가 교자를 타고 건춘문(建春門)을 나와, 하성위의 집에 우거하였다.

 

임금이자 남편이 한다는 말이 고작, “조강지처인데…”라는 말 뿐이었다. 단경왕후는 반정의 희생양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폐비는 이혼을 의미한다. 조선의 유교사회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륜에 반하는 일을 했을 경우 - 배우자가 역적이 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 이혼을 허락했다. 양반은 예조에서 이혼을 허가했고, 평민의 경우엔 이혼이 비교적 자유로왔다. 하지만 왕비의 경우 폐위라는 제도를 통해 이혼시켰다.

단경왕후는 이혼당한 것이다. 단경왕후는 사가로 물러난뒤 중종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남편인 중종의 임종 직전에는 궁궐 내에 들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소문일 뿐이었다.

 

사직공원에서 인왕산을 오르다보면 너럭바위가 있다. 이 곳에 단경왕후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폐비가 되어 하루 이침에 궁궐에서 쫓겨난 왕비는 남편을 쉽게 잊지 못했다. 그녀는 인왕산 자락에 올랐다. 그리고 붉은 치마를 바위에 펼쳤다.

“부디 이 붉은 치마를 날 본 듯 여겨 주시어요.”

이후 백성들은 그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

 

세월이 흘러, 반정세력이 주축이 된 훈구파가 힘을 잃고 조광조등 개혁파들이 들어섰다. 조광조는 단경왕후의 복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중종은 듣지 않았다. 사랑이 식은 것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 얻은 왕후가 왕자를 생산했기 때문에 단경왕후가 복위해 왕자를 낳으면 후계구도가 복잡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중종은 단경왕후를 쫓아낸후 많은 후궁을 두었다. 그 중에서 장경왕후를 중전에 책봉했다. 장경왕후는 결혼 9년만에 아들 인종을 출산하고 출산 직후 25살에 산후병으로 사망했다. 이때 산후병을 돌본 사람이 MBC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이다. 장경왕후가 죽었을 때 장금은 의녀였기 때문에 벌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중종이 막아 주었다.

장경왕후가 죽은 후 후궁 중 하나였던 경빈 박씨가 중종의 총애를 기반으로 왕비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경빈 박씨가 자신이 낳은 복성군을 내세우려는 야심을 알기 때문에 후궁 가운데 선택하지 말고 간택의 방법으로 왕비를 책봉하자고 했다. 간택으로 뽑은 왕비가 문정왕후였다.

 

폐위된 이후 인종이 즉위해 그녀가 거처하는 곳에 폐비궁(廢妃宮)이라는 이름을 주고 생활에 보조를 했다.

중종과의 사이에 소생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죽을때까지 홀로 살았다.

1557년(명종 12년) 71세의 나이에 사망하자 왕후(王后) 시부모의 예(例)에 따라 이등례(二等禮)로 초상을 치렀다. 죽은후에 시호도 없이 폐비 신씨 혹은 신비(愼妃)라고 불리다가, 영조 15년(1739년) 왕후로 복위되었다. 그때 단경(端敬)이라는 시호와 함께 공소순열(恭昭順烈)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능은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온릉(溫陵)이다.

 

▲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온릉(溫陵). 단경왕후의 능이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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