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부흥⑪…국가 부채의 수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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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부흥⑪…국가 부채의 수렁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6.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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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가부채 급팽창…인플레이션 유발, 세수 확대가 급선무

 

일본인은 저축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1998년 미국의 저축률이 0%에 근접했지만, 일본은 13%에 이르렀다. 일본인 가정의 전체 저축액을 달러로 환산하면 무려 6조4,000억 달러로, 뉴욕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런데 일본의 국가부채는 갈수록 늘어나 98년에 5조4,000억 달러에 달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일본인들의 저축을 다 부어 국가 부채를 청산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수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국민 개인의 재산을 강탈해 국가 부채를 탕감하는데 쓸 수 없다.

일본 경제는 이해할 수 없는 패러독스에 빠져있다. 일본 국민들은 자린고비처럼 돈을 저축하는데, 국가부채 비율은 선진국에서 가장 높다. 정부가 경제난을 해결하려고 개입할수록 부채는 커져간다. 금융 구조조정이란 기업 부채가 은행부채로, 은행부채가 국가부채로 전환하는 작업을 의미할 뿐이다. 결국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 또는 나중에 갚을 것을 조건으로 발행한 채권을 통해 기업과 금융기관의 악성 부채를 털어 주는 것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미국의 재정 적자를 조롱하던 일본은 10년만에 세계 최대의 부채국가로 전락했다. 경기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정부가 증시를 부양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적자재정을 편성,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했다. 1992년 1조4,000억 달러의 경기부양 자금을 투입한 이래 일본 정부는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자예산을 편성, 수시로 대량의 정부자금을 부어댔다.

일본의 국가 부채는 줄어들기는커녕 확대 일로에 있다. 금융 개혁 과정에서 세제 감면과 공적 자금 투입으로 2000년 이후에도 적자 재정 편성이 약속되어 있다.

경기불황이 시작된 1992년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70%였다. 당시 미국의 국가 부채가 GDP의 60%를 웃돌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재정 적자 규모가 누적되면서 99년엔 국가부채가 GDP의 120%에 이르렀다. 유럽에서 국가 부채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를 넘어서 G-7 국가에서 가장 빚이 많은 나라로 부상했다.

IMF는 일본의 재정 적자가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 2003년이면 국가부채가 GDP 대비 13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GDP의 30~40%에 해당하는 공적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예측한 점을 감안하면 조만간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170~180%에 이르게 된다.(무디스의 전망) 1980년대 미국이 극심한 재정적자에 시달릴 때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에 3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하중이 일본 경제를 짓누르게 될 전망이다.

1년 간 걷어들이는 세입 대비 국가부채의 비율은 1999년에 1,400%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으로부터 1엔의 세금을 걷을 때 14엔의 부채에 눌려 있는 셈이다.

국가 부채가 누적되면 금리 상승을 동반한다. 일본의 금리 상승은 주변 아시아 국가의 금리 인상을 부채질하고, 결국 아시아와 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무서운 존재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금이 간 댐처럼 일본 부채는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막대한 국가부채를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국민들이 저축한 돈을 꺼내 쓰고, 그 돈이 돌아 내수 경기가 살아나 경제에 활력이 생기면 정부의 세수가 늘어나 부채를 갚을 수 있게 된다. 1980년대말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렸으나, 금융 구조조정으로 경제가 살아나면서 재정 적자가 해소됐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그렇게 하면 된다.

문제는 당시 일본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막대한 국가부채가 경제를 짓눌렀기 때문에 정부의 예산 투입으로 내수 경기가 다소 회복되는가 싶으면 얼마 안가 다시 가라앉았다. 국가 부채가 무겁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0%의 단기금리를 적용해도 장기금리는 오히려 오르는 역효과가 생겼다. 99년말 장기금리는 단기금리의 60배에 거래됐다.

 

▲ /그래픽=김인영

 

미국 재무부나 학자들은 일본 중앙은행이 엔화를 무제한 발행,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방법을 권유했다.

MIT의 폴 크루그먼 교수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중앙은행이 엔화를 무제한 찍어냄으로써 경기를 부양해야 아시아 경제와 세계 경제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의 처방은 금융 개혁이 일본 경제 회생에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정부가 금융기관의 부실 여신을 구제하는 방식은 금융 시스템의 회생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부분적 해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또 정부의 공공 투자 확대 정책은 정상배의 배만 불리며 소비 촉진과는 거리가 멀다. 감세안은 저축을 늘리지만, 소비 심리를 부추기지 못한다. 금리가 낮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생각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일본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억제정책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발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디플레이션 상태에서는 비정통적인 방법으로 경제를 회생시켜야 하며, 인플레이션 상태로 전환될 때까지 엔화를 찍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물건 값이 오르기 전에 소비하려는 심리가 생기고 기업들이 돈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투자를 하게 된다. 통화 팽창에 다른 엔화 약세로 수출이 촉진된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논리다.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은 미국 재무부의 입장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1999년을 일관해서 일본은행은 통화팽창에 의한 인플레이션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인플레이션을 좋아하는 중앙은행이 없기도 하거니와 2차 대전중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은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다른 방법은 세금을 늘리는 길이다. 이 방법도 채택하기 어려운 방안이다. 일본 정치인들에겐 세금 확대는 터부시되고 있다. 일본 정치인이 용기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앙은행 뿐아니라 지방은행도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동경도(東京都)를 비롯, 주요 5개 지방 자치단체는 90년대말에 재정에 관한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지방 공무원 수를 줄이고, 중앙정부에 예산 요청을 하는등 법석을 떨었다. 지방 정부의 재정적자를 합칠 경우 1999년에 이미 1조6,000억 달러에 달했다. 일본은 국가부채와 지방 부채를 합쳐 7조 달러의 공공부채가 누적한채 새로운 세기를 맞았다.

보수논객 이시하라 신타로는 1998년말 동경도지사 선거에 당선됐다. 그는 취임후 한 첫 번째 일은 동경도의 부채를 축소하는 일이었다. 그는 사사건건 중앙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그는 동경도 예산의 30%에 달하는 공무원 보너스를 깎았다. 미국에도 ‘노(NO)’라고 말하고, 중앙정부에도 ‘노(NO)’를 외치던 그는 정작 그의 부하로부터 ‘노(NO)’ 소리를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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