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산업계 '직급파괴경영' 확산...한화도 과장대신 '프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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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산업계 '직급파괴경영' 확산...한화도 과장대신 '프로님'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3.04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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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임직원 직급 통합 및 호칭 단순화 봇물
'변해야 산다'는 위기감 반영, 조직문화 개선
수평적 문화 확산…효율성·창의성 증대 기대
직급파괴 경영, 책임 소재 불명 등 우려도
재계에 임직원 간 직급을 통합하고 호칭을 단순화하는 직급파괴 경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상무→전무→부사장→사장'으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직급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직급을 하나로 통합하는 한편 3~5년마다 주어지던 승진 연한을 폐지하는 기업도 잇따르고 있다. 재계에 불고 있는 직급 파괴 경영이 이면을 살펴봤다.

재계 부는 직급 파괴 바람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래지향 인사 제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하고 승진 연한인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을 폐지했다. 직급과 연공서열을 중시하던 기존 인사 제도에서 탈피해 능력만 있다면 30대 임원 40대 최고경영자(CEO)도 배출하겠다는 취지다. 

CJ그룹은 더 파격적이다. 사장, 총괄부사장, 부사장, 부사장대우, 상무, 상무대우 6개로 나눴던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로 통일했다. 회장과 부회장을 제외한 모든 임원이 하나의 직급으로 통일됐다. 

롯데는 상무보A·B를 상무보 하나로, 부장(S1)과 차장(S2)도 '수석'으로 통합했다. 통산 S1 3년, S2 4년으로 임원까지 최소 7년이 걸렸으나 이번 직급 통합으로 5년 차부터 임원 승진 대상이 된다. 

한화와 현대중공업은 상무보 직급을 폐지했고, 삼양식품은 사원부터 부장 직급을 매니저와 팀장 2단계로 단순화했다.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대표이사가 이끌고 있는 한화솔루션은 이번 달부터 직원 간 호칭을 '프로'로 통합한다. 수평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호칭 통합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다만 나머지 한화그룹 계열사는 기존대로 직급과 그에 따른 호칭 체계를 유지한다. 

현대차그룹과 SK그룹은 이미 2019년부터 인사 제도 개편을 통해 임원 직급을 대폭 줄였다. 현대차는 이사대우와 이사, 상무 직급을 상무로 통합했고, SK는 사장 아래 임원을 모두 부사장으로 일원화했다. LG그룹은 2017년부터 '사원-선임-책임'으로 통합했다. 

호칭도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직급 대신 '프로'로 통합했으며 임직원 간 상호 높임말을 쓰도록 하고 있다. 현대차는 사원과 대리는 '매니저', 과장~부장은 '책임 매니저'로 이원화했다. SK는 평사원 호칭은 매니저로 통일하고 임원은 본부장·그룹장·실장 등으로 나눠 부른다. LG경영연구원은 올해부터 '00님'으로 호칭을 단순화했다. 포스코ICT 역시 올해부터 사원~부장의 호칭을 모두 '프로'로 통일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올해부터 구성원 간 호칭은 '00님'으로 통일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는 재계에서도 보수적으로 통하는 한화그룹 내에서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변해야 산다' 위기감이 바꾸는 조직문화

주요 기업들이 직급을 파괴하고 호칭을 통합해 간소하는 배경에는 조직이 변하지 않고선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전례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시장 경쟁 격화 등에 대처하기 위해 의사 결정 속도가 핵심적인 요인으로 떠올랐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선 그만큼 거쳐야 하는 사람이 줄어야 한다.

아울러 직원 간 호칭을 간소화해 위계적인 조직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꿔 인재를 유치하려는 전략도 깔려 있다. 수직적 권위와 위계적 서열에 대한 MZ세대(밀레니엄+Z세대)의 거부감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기업은 임직원 간 자유로운 의사교환을 통해 업무 효율성과 창의성 등이 높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달라진 오너십도 직급 파괴 경영의 한 요인이다. 외국 유학파, 30~40대 IT기업 총수 등이 등장하면서 '직급=연공=숙련도'라는 과거의 공식이 깨지면서 연공서열 파괴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단적으로 경쟁 대기업이 부장 이하 직원 뿐 아니라 임원 직급을 대폭 간소화하는 상황에서도 유독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 온 한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이 직원 호칭을 '프로'로 통합한 것을 두고 김동관 대표이사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김동관 대표이사는 평소 실무 임원과 직접 소통하는 등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7년 직급파괴 경영을 시도했던 네이버는 임원직급폐지 2년 만에 임원직급을 부활했다.  사진=연합뉴스

임원제 부활한 네이버, 왜

직급파괴 경영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직급이 단순화되면서 승진과 연봉 상승 기회가 줄어들고, 특정 직급 체류 기간이 길어져 경력 정체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여기에 임원급을 통합하면서 책임 소재가 모호해질 가능성도 짙어진다. 

2017년 1월 신속하고 수평적인 업무문화를 위해 임원직급을 폐지했던 네이버는 폐지 2년 만인 2019년 다시 임원제도를 부활시켰다. 그러면서 '책임리더' 직급을 신설했다. 책임리더는 사실상 비등기 임원으로 위꼐상 대표급(C-레벨)과 리더 사이에 위치한다. 책임리더는 매년 계약을 갱신하며 보유 주식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네이버가 임원직급을 부활시킨 건 기업 규모가 급속히 커지면서 이를 관리할 중간 임원급의 역할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사업분야별로 분사까지 염두한 사내독립기업(CIC)이 늘어나면서 해당 CIC를 자율적으로 운영할 임원급 관리자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는 현재 인공지능(AI), 검색, 사용자콘텐츠 등에서 CIC를 운영 중이다. 

동시에 네이버는 책임리더 등 인재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등 확실한 보상도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창업가 정신이있는 리더들에게 책임과 도전의식을 갖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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