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개미 울리는 '물적분할'...제도개선으로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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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개미 울리는 '물적분할'...제도개선으로 막을 수 있을까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1.12.27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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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월 새 '105만→62만원' LG화학·'43만→14만원' CJ ENM
물적분한 후 동시상장, 소액주주 피해 호소 늘어
정치권·거래소 상장 관련 제도 개편 작업 착수
모기업의 물저분할 의결 관련 임시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선 주주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지난 1월29일 최고가 105만원을 찍었던 LG화학의 주가는 11개월여 만에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CJ ENM의 주가 역시 마찬가지다. 43만1600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4분의 1 수준으로 수직 낙하했다.

지난 24일 종가 기준 LG화학은 62만1000원 CJ ENM은 14만900원을 기록했다. LG화학과 CJ ENM의 주가가 하락한 결정적 이유는 '물적분할'이다.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결정한 기업의 물적분할이 '개미'로 불리는 소액투자자를 비롯한 주주에게 비수가 돼 날아들었다.  

물적분할 후 추가 추이

LG화학은 내년 1월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을 앞두고 24일 52주(1년) 신저가를 기록했다. 연초 105만원이었던 주가는 이날 62만1000원으로 40% 넘게 빠졌다. 자회사 SK온이 최근 상장 전 투자 유치(프리 IPO) 절차에 들어가는 등 기업공개를 준비 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32만75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이날 22만3500원으로 30% 이상 떨어졌다. CJ ENM도 지난달 19일 예능,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주요 콘텐츠 제작사업을 물적분할하겠다고 공시했다. 이후 주가는 20% 이상 하락했다. 

SK케미칼 역시 2018년 백신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설립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올해 3월 상장하자 주가가 급락했다. 2월 46만원대였던 주가는 24일 15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SK아이테크놀로지(SKIET)를 쪼개기 상장한 SK이노베이션 역시 연 고점 대비 32% 하락했다. SK는 원스토어와 SK실트론 등 다른 계열사의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기업분할이 이뤄진 50건 중 47건(94%)이 물적분할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배터리와 석유화학 부문의 물적분할을 의결했다. 사진=연합뉴스

반발하는 주주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선 이런 사례가 없다. 단적으로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알파벳그룹'의 상장사는 지주사인 알파벳뿐이다. 구글은 알파벳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기업이다. 

선진국과 다른 국내 기업의 연이은 물적분할에 소액주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물적분할을 법으로 금지해 달라'는 취지의 국민청원을 잇달아 게시하고 있다. 27일 현재 기준 물적분할을 막아달라는 취지의 국민청원은 모두 32건에 이른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은 20일 "물적분할은 지배주주가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그 비용을 소액주주에게 전가하는 자금조달 방식"이라면서 "물적분할을 인적분할로 돌리거나 일반 주주의 의사에 반할 경우 회사가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16일 열린 SK이노베이션의 임시주주총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주가보다 의결권'이 중요한 기업

물적분할은 회사를 모회사(지주사, 존속회사)와 자회사(사업회사, 신설회사)로 쪼개는 것을 말한다. 모회사가 자연스럽게 자회사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게 돼 모회사의 지배주주는 자회사 지분을 따로 갖지 않더라도 모회사를 통해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

한 회사 지분만으로 두 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다시 말해 기존 주주들과 신설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인적분할과 달리 물적분할은 회사가 신설회사 주식 100% 소유하게 된다. 기업 편에서 보면 사업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 유치도 가능하다. 

국내 기업이 물적분할을 선호하는 건 지배주주가 배당이나 주가 차익보다 의결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다. 흔히 '재벌 일가'로 불리는 지배주주는 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떨어지면 지배권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져 이를 극도로 꺼린다. 모회사가 증자가 아니라 굳이 유망한 자회사를 떼어내 상장하려 하는 것도 의결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주가가 떨어지면 대주주도 손해를 본다. 그러나 지배주주는 그때그때의 주가 차익에 따른 손해보다 의결권을 더욱 중시한다. 이런 이유로 지배지분을 유지하는 동시에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지주사 할인으로 인한 배당권 훼손'은 감수하고 물적분할을 단행한다. 

대주주와 달리 소액주주는 배당권 및 주가 차익을 의결권 보호로 상쇄할 수 없다. 온전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6일 '동시상장 제재' 등의 내용을 담은 '금융시장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동시상장 제동 나선 정치권과 거래소

물적분할 후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상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는 관련 규정 개편 작업에 나섰고, 유력 대선 후보는 공개적으로 제재 의사를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물적분할 뒤 자회사 상장시엔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을 우선 배정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소액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일을 막겠다고 26일 공약했다. 

이날 이 후보 측 선대위는 '금융시장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선대위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 현대중공업 등 기업이 물적분할 한 뒤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해 모회사의 소액주주가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입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신설회사 주식상장을 위한 구주 매출 또는 신주 공모 때 모회사 주주에게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해 우선 배정하는 등 제도적 보안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사주 처분 행위 제한과 처분한 의결권 제한, 처분한 지분에 대한 분할신주 배정 금지 등도 추진한다. 자사주를 악용한 대주주나 기업의 일탈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거래소 역시 상장 관련 제도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거래소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할지 아직 밝힌 순 없지만 현재 개선 사안을 금융위원회와 검토·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거래소의 상장규정 개정 작업은 금융위의 최종 승인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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