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와 왜의 고대선박 비교①…선박의 발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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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와 왜의 고대선박 비교①…선박의 발달과정
  • 이효웅 해양전문가
  • 승인 2017.05.0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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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봉황동 119-1 유적지에서 발굴된 선박과 노 /김해시청

 

<서론>

 

선박은 강에서 내만으로 내만에서 섬으로, 교통수단과 수송수단으로 확대되고 전선으로 사용하면서 선박의 부력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대형선박을 제작하기 위하여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목재들을 구하여 부력을 늘렸으나 곧 대형목재의 부족이나 제작의 어려움으로 한계에 이른다. 통나무 하나를 이용하는 일체성형선(독목주)에서 이체성형선, 삼체성형선으로 발달하나 10명 내외의 소형선에서는 가능하나, 전선과 같이 많은 병사와 노획품을 실으려면 적당하지 않아 작은 통나무의 측면을 가공하여 여러 개를 연결하는 다체성형 구조선이 개발된다. 이 방법은 도구 및 기술의 발달로 작은 통나무를 양면을 가공하여 이어 붙이고 틈을 메워 수밀하는 방식으로 평저형의 중·대형선을 만들 수 있다. 전쟁에서는 최신무기가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으므로 선박은 전선 제작을 통하여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돛의 발달은 이체성형선이나 삼체성형선은 소형선이라 무게 중심이 위쪽에 있게 되어 돛을 달면 위험하므로 거의 장착하지 않았다. 돛은 선박이 중·대형선으로 커질수록 필요하고 장거리 또는 대양항해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돛을 사용하려면 바람의 세기에 따른 조절 능력이 있어야 돛을 사용할 수 있다.

금관가야는 일찍부터 철과 철 기구들을 수출하면서 주변국들 보다 무기와 선박과 관련된 산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가야는 아쉽게도 6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나라가 크지 못하여 이웃 나라인 신라와 백제의 침범을 자주 받아 6세기에는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가야철이 왜에 전하여 지면서 왜와는 자연스럽게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많아지게 되었다. 특히 주변국의 침범을 받아 고향을 떠나는 유민들은 왜로 많이 흘러갔다. 왜는 한반도에서 문물들을 받아들였으나, 왜가 강성해지면서 한반도의 물자와 백성들을 노획하여 갔다. 특히, 대마도는 식량이 부족한 관계로 수시로 한반도의 전 해안을 누비며 침범하였다. 이런 가운데 왜는 선박의 발달이 한반도 국가들 보다 빨랐고 앞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왜병이나 왜구들은 신라 및 가야를 수시로 침범하여 식량과 백성들을 노획하여 갔다. 왜는 섬나라이므로 선박은 필수적인 운송수단이어서 우리 보다 앞 설 수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나라 보다 산림이 많고 기후가 좋아 삼나무 등의 선박 재료를 구하기 쉽고, 시모노세키에서부터 오사카에 이르는 세토 내해는 지중해와 같은 역할을 하여 선박이 발달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태풍, 지진,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로 선박의 해난사고가 많아 제례용 선박도 등장하였다.

주형토기에서 보여 지는 선박은 제례용 선박이라 일반 선박과는 차이가 있지만 3-5세기의 주형토기들에서 고대선박의 발달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나 이후로 갈수록 주형 토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고대선박의 대부분은 원목을 이용하여 제작되었는데, 김해 봉황동 119-1 유적지에서 발굴된 선박은 판자로 만들었으며 선박의 부재(측판)를 연결하는 구멍으로 보아 나무못 등의 고도화된 선박 제작 기술을 엿 볼 수 있다. 이 선박은 왜의 선박이라고 추정하는데 당시 톱을 사용하여 판자를 만드는 획기적인 기술을 확보하여 선박을 제작하였으므로 선박의 선형, 크기, 제작방법(공법), 도구 등을 면밀하게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1. 선박의 발달과정

 

선박의 발달은 기원전부터 문명의 발상지인 나일강과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아라비 아 문명과 인도 문명권에 전파되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동남아시아와 중국으로 전해지게 된다. 신라는 동아시아의 제일 끝에 위치하여 가장 늦게 발달하였다고 본다.

고대선박의 발달은 뗏목을 이용한 선박들이 강이나 호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철기문명의 발달과 함께 여러 가지 연모가 발달되면서 일체성형선(독목주)의 구조선으로 바뀌게 되고, 이것은 이체성형선(二體成形船)과 삼체성형선(三體成形船)의 구조선으로 진화하면서 연안항해가 가능해졌다. 물론 그 이전에도 뗏목을 이용한 연안항해 또는 장거리항해도 가능하나 일반적인 여객, 화물을 수송하는 방법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선박의 용도 첫째는 강을 건너거나 섬을 건너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고, 둘째는 물건이나 식량의 운송수단이고, 셋째는 전선(戰船)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주형토기에서 보여 지는 용도는 상용선(常用船)도 보이나 의식용의 제기(祭器)가 많이 보인다.

선박 제작의 중요 요소는 재료, 도구, 부력, 복원력, 수밀(방수), 속력, 저항 등이 있다. 선박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편리한 항구 필요하다. 그래서 고대선박의 발달도 대부분 큰 강에서 시작하여 바다로 나가게 되는데 이것은 태풍과 같은 큰 바람과 해일, 쓰나미 등으로부터 안전한 정박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의 한강은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하류는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선박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고, 낙동강은 신라와 가야의 국경을 이루고 있어 선박이 발달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아니다. 다행히 금관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내만인 김해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조수간만의 차도 적어서 선박이 발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의 선박 발달사를 엿 볼 수 있는 박물관의 주형토기들은 주로 가야지방에서 발견되는데, 가야국은 낙동강과 섬진강을 끼고 6가야가 신라와 함께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김해지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의 산지로 당시 금관가야국은 주변국들과 수출입을 하면서 외국의 정보도 제일 빠르게 받았을 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왜에도 전달되어 삼국시대의 선박은 비슷비슷하게 발달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주형토기들에서 보여 지는 모양은 주로 제기로 사용되는 모습이어서 상용 선박과는 조금 다르므로 선박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삼국유사에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이 타고 온 선박에 35명의 일행을 태운 큰 배라고 하였는데, 당시 가야의 주형토기와 비교하면 가야선과 아유타국선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범선의 발달을 볼 수 있는 주형토기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범선 연구의 어려움이 있다.

선박은 강에서 내만으로 내만에서 섬으로, 교통·수송수단으로 확대되고 전선으로 사용되면서 선박의 부력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선박을 제작하기 위하여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목재들을 구하여 부력을 늘렸으나 곧 목재의 부족이나 제작의 어려움으로 한계에 이른다.

▲ <도1> 대구박물관:이체성형구조선 /이효웅 제공

대형 일체성형선(독목주선 獨木舟船)은 일체성형구조선(一體成形構造線)으로 바뀌나 이 선박은 근본적으로 부력이 적고 복원력이 부족하여 파랑으로 안전항해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어느 날 손재주 좋고 창의성 있는 목공에 의해 일체성형선을 두 개 끼운<도1>의 이체성형선(二體成形船)을 개발한다.

이체성형선(二體成形船)의 특징은 통나무 두 개를 이용하여 아래쪽의 통나무에 위쪽 통나무를 파서 얹어 수밀(水密)하는 방법으로 좀 더 큰 배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이 방법은 내부에 물이 적게 들어오면서 부력은 커지고 용골과 같은 용도로 선체(船體) 및 선저(船低)의 내구성도 증가한다. 그러나 이체성형선도 근본적으로 부력이 적어 많은 사람이 승선할 수 없다.

이후 도구의 발달로 부력이 큰 삼체성형선(一體成形船)으로 발달하고, 외국의 전선 및 사신선의 왕래로 선박은 다체성형선(多體成形船)의 중·대형선으로 발달한다.

▲ <도2> 안압지:삼체성형선 /이효웅 제공

삼체성형선은 <도2>의 안압지에서 발견된 선박과 같이 선박의 부력을 키우기 위하여 3개의 통나무나 판자를 이용하여 배를 제작한다. 안압지와 같은 내수면에서는 평저선이 사용하기 편리하나 연안용이나 전선에서는 파도에 강한 첨저형으로 쌍노를 사용하는 중형선으로 발달한다. 그러나 통나무 3개를 이용한 삼체성형선(一體成形船) 또한 부력에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큰 통나무보다는 작은 통나무의 측면을 가공하여 여러 개를 연결하는 다체성형 구조선이 개발된다. 이 방법은 도구 및 기술의 발달로 작은 통나무를 양면을 가공하여 이어 붙이고 틈을 메워 수밀하는 방식으로 평저선의 중·대형선으로 만들 수 있다. 전쟁에서는 최신무기가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으므로 선박은 전선 제작을 통하여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가야의 4-5세기는 삼체성형선과 다체성형선이 혼합된 시기라고 보아진다. 범(돛)의 발달은 이체성형선이나 삼체성형선은 소형선이라 무게 중심이 위쪽에 있게 되어 돛을 달면 위험하므로 거의 장착하지 않았다고 본다. 돛은 선박이 중·대형선으로 커질수록 필요하고 장거리 또는 대양항해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돛을 사용하려면 바람의 세기에 따른 조절 능력이 있어야 돛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소형선은 돌풍 시에 빨리 대처하지 못하면 침몰될 수 있으므로 소형선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주형토기에서 보여 지는 고대선박의 모습은 대부분 독목주를 이용한 제례용 토기들이나 호암미술관의 평저선 토기와 같이 판자를 이용한 선박도 있다. 김해 봉황동 119-1 유적지에서 발굴된 선박을 통하여 가야는 여러 나라와 교류를 하였다는 증거이고 여기에서 재료, 선형, 공법, 도구 등을 비교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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