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대한민국
상태바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대한민국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6.12.26 17: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촛불과 보수 집회를 보고…혁명 아닌 선거로 해결해야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오후 5시,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 내려 덕수궁에서 종로를 거쳐 광화문까지 한시간여 걸어 다녔다. 이 짧은 시간에 나라가 반쪽이 났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덕수궁에서 종로까지는 보수단체가 집회를 열고, 종로에서 광화문까지는 노동단체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촛불시위가 개최됐다. 경찰이 가운데를 막아섰다. 경찰 방어망을 경계로 보수와 진보가 둘로 나뉘어 한쪽에선 ‘탄핵 무효’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헌재도 탄핵’을 주장했다. 종로대로를 중심으로 나라가 완전히 둘로 쪼개졌다. 보수쪽 집회에는 50대 이상 나이든 사람이 주류를 이뤘고, 촛불 집회에는 30~40대가 중심을 구성하고 있었다. 두 집회의 또다른 대결이 세대갈등이라는 점을 느꼈다.

평화 시위는 맞다. 한쪽에선 손 태극기가 펄럭이고, 다른 한쪽에선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이 군무를 형성했다. 서로 등을 돌린채 다른 방향을 향해 목청 높여 구호를 외쳤다. 충돌은 보지 못했다. 경찰이 양측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서로들 충돌을 자제했다. 양측의 접점에서 서로를 향해 약간의 삿대질이 있을 정도였을 뿐이다. 집회는 평화로웠지만, 갈등과 균열의 폭은 점점 커져 메울수 없는 단계로 가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 /자료사진 합성

먼저 들른 곳은 덕수궁 대한문. 오후 2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이 이곳으로 합류했다고 한다. 방송엔 ‘아 대한민국’과 ‘나의 조국’이 울려 퍼졌다. 1980년대에 익숙했던 노래다. 태극기와 ‘탄핵무효’라는 글귀의 피킷이 물결을 이뤘다. 대열의 정연함, 구호 함성등을 보면 집회는 조직적이진 못했다. 하지만 뭔가 나라가 잘못되고 있다는 나이든 사람들의 진지함은 느껴졌다. JTBC 손석희 앵커를 비난하는 구호도 나왔다. 최순실 사태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언론에 대해 보수세력의 분노가 집결된 것이다. 주최측에 따르면 집회에 단가 150원 하는 태극기 수기가 10만장이나 배포됐다고 한다. 이날 오전 보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종로를 향해 걸어는데, 경찰이 막아섰다. 그 건너 집회는 이른바 촛불 세력이 주도하는 집회였다. 종로 대로엔 버스와 승용차들이 다녔다.

광화문의 인파는 시청앞의 그것보다 많았다. 그 시각 촛불 집회에는 보수 집회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고 있었다. 보다 조직적이었다. 스피커 성능이 보수단체의 것보다 탁월했다. 촛불의 움직임도 리드미컬했다. 휘날리는 깃발은 거의 노조상급단체의 것들이었다. ‘이석기 석방’, ‘한상균 석방’을 주장하는 피킷과 조형물이 눈에 많이 띠었다. 어린아이 목에 ‘박근혜 탄핵’이라는 피킷을 걸어주고, 기념촬영하는 부모도 있었다. 철없는 아이에게 부모의 정치논리를 강요하는 것 같이 씁쓸하다. TV에 자주 나오는 가수와 연애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연설을 했다. 이 또한 1980~90년대에 익숙했던 노래다. 재미있는 사실은 진짜 촛불을 가져온 사람은 거의 눈에 띠지 않고 대부분 LED 전등을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말에 LED로 바꿨다고 한다.

양측의 주최측은 언론에 참여인원을 불렀다. 언론은 받아썼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주최측 추산 60만명, 덕수궁앞 보수 집회는 주최측 추산 160만이다. 현장을 답사해보니, 두 주최측이 모두 부풀려 불렀음이 확인됐다. 종로를 중심으로 갈라진 두 집회에서 어느쪽에 더 많은 인원이 참가했는지는 두 군데를 다녀보면 알수 있다. 눈으로 목격한 것은 보수 집회보다 촛불집회에 더 많은 인원이 물렸다. 하지만 보수 집회에도 만만치 않은 인원이 참가했음을 알수 있다. 나중에 높은 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보수집회 참가 인원이 최근 몇주사이에 부쩍 늘었음을 알수 있다. 탄핵을 전후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숫자가 줄어드는 반면에, 보수집회 참여 인원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 /네이버 지도

시청앞에서 광화문까지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핵심이다. 정치 일번지이자, 행정, 외교, 언론의 중심지이다. 이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나라 백성들이 갈라져 등을 돌린채 서로 다른 구호와 노래, 피킷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올해 마지막날인 오는 31일에도 양측은 똑같은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새해로 이어질 가능성은 100%. 이 대결이 오래가면 남북으로 분단된지 70년이 넘었는데, 반쪽짜리 대한민국도 둘로 갈라지는게 아닌가 하는 섬뜩한 생각을 지울수 없다.

 

군중시위는 분명 정치 행위다. 군중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이 분명 있다. 그들은 권력을 잡으려고 한다.

1960년대말에 중국과 프랑스에서 벌어진 군중시위의 정치적 결말을 보자.

1966년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실각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주도로 일어난 대중운동으로, 당시 권력자였던 류사오치(劉少奇)와 실용주의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 유교문화가 붕괴되고, 계급투쟁이 부활했다. 그 결과 중국은 20년이나 낙후했다.

1968년 5월 프랑스 대학생의 시위는 100만에 이르렀고, 노동자 파업은 1,000만명에 달했다. 보수세력을 이끄는 샤를 드골 대통령을 물러나라는 게 골자였다. 학생 시위가 격화하고 파업으로 공장들이 문을 닫아 경제가 마비됐다. 드골주의자들도 맞불 시위를 벌였다. 80만명의 보수세력도 프랑스기를 흔들며 엘리제궁을 향했다. 보수와 진보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프랑스의 좌파와 우파는 결국 선거를 선택하기로 합의했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젊은 층의 상실감을 이해할수 있었다. ‘헬조선’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청년실업 10%가 넘도록 정부와 여당이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비선실세와 기득권 세력의 야합이 분노를 확산시켰다.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는 계층의 고착화가 저 많은 촛불을 태웠을 것이다.

보수 집회의 주장도 이해가 간다. 북한과 대치하면서 경제개발에 나서 대한민국을 반만년 역사에 가장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는데, 이 나라가 잘못된 세력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걱정이 나이든 이들을 집회로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나라를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혁명이냐, 민주주의냐의 선택은 선거제도를 활용하는지 여부에 달렸다. 중국 문화혁명은 대중운동을 이용해 마오쩌둥 집권을 성공시켰지만, 중국을 후퇴시켰다. 프랑스는 선거를 활용해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규합했다.

한주 후면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새해도 서울 도심이 갈라진 두 집회로 점철되어서는 안된다. 결국 미워도 다시한번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이 대결을 극복시키는 방법은 혁명이 아니라 선거다. 집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 무언의 대중의 표를 얻어서 집권해야 힘있는 정부를 구성한다. 대중운동의 수나 구호에 매달리다 실기할 경우 그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돌아간다. /김인영 기자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