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왕국 사우디] 사우디 '봄철의 불청객' 모래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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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왕국 사우디] 사우디 '봄철의 불청객' 모래폭풍
  • 신승민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원
  • 승인 2021.01.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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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났음을 알리는 전령사 '모래바람'
가끔 모래폭풍우 수준으로 번개·천둥 동반도
시계 제로(0)에 호흡기 질환 유발...한국 황사와 차원달라
신승민 통신원
신승민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신승민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원] 지난밤 대추야자 나무가지가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사우디의 봄은 강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다. 그렇다. 바로 '모래 바람' 혹은 '모래 폭풍'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남쪽으로 진격해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려 할 때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사막의 폭풍'이라는 이름으로 군사작전으로 맞서서 단숨에 이라크에 제압했다. 작전명이 지역의 특색과 아주 잘 맞지 않았나 싶다. 

중동의 모래폭풍을 겪어본 경험이 없는 독자 분들은 아마도 모래폭풍의 위력을 실감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두바이는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광활한 사막이 펼쳐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국토 95%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사막에는 모래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사막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면 바람과 함께 날아오른 모래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사방을 집어 삼키듯 덮쳐온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를 덮치는 모래폭풍.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를 덮치는 모래폭풍.

천둥 번개 동반하는 모래폭풍우도

모래바람이 가벼운 날에는 한국의 황사와 비슷한 정도의 느낌이지만, 먹구름과 함께 밀려온 강한 모래바람도 있다. 'Sand storm'으로 불리는데 모래 바람속에 천둥과 번개도 동반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 모래폭풍속에 들어가는 날에는 마치 '지구멸망의 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보통 2월부터 4월까지 크고 작은 모래바람이 발생하는데 지난 2018년 4월에는 지름이 500㎞ 정도인 모래폭풍이 관측된 적이 있다.  

수도 리야드로 접근하는 500㎞ 지름의 모래폭풍 위성사진. 사진=구글
수도 리야드로 접근하는 500㎞ 지름의 모래폭풍 위성사진. 사진=구글

아랍어로 모래폭풍은 '하붑(هَبوب‎ )'이라고 부르는데, 번역하자면 '미친 바람' 말그대로 '광풍(狂風)'인 셈이다. 한국도 시민들이 미세먼지에 예민해져 있다. 특히나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은 미세먼지지수 어플을 수시로 체크하며 외출을 계획할 정도로 미세먼지가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이유중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장시간 노출되면 목 붓고 염증까지 생겨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우디에는 지역 미세먼지 지수를 나타내는 전문적인 어플이 없고, 그나마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의 결과도 신뢰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곳 사람들은 봄철 하늘이 맑으면 외출을 하고, 부옇게 먼지가 낀 날은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아예 외출을 삼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다.  

한번은 봄 학기초 바깥 운동장에서 축구수업을 하던 오후의 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그다지 맑지는 않았는데 수업도중 바람이 거세지며 앞이 안보일 정도로 짙은 모래폭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수업을 계속 할까말까 고민하는데, 이미 학생들은 축구공과 교수인 나만 남겨 둔 채 건물안으로 피신해버렸다. 평상시에는 느릿느릿한 사우디 학생들이지만, 모래폭풍의 위력을 잘 아는 이들이 유전자속 생존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호흡기 등에 악영향을 미치는 모래바람은 특히 기관지나 비염 등이 있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이기에, 현지사람들도 모래냄새가 코끝에 느껴지면 곧바로 마스크를 쓰거나 외출을 자제한다. 필자는 이것도 모른 채 자전거로 출근하다 모래먼지를 잔뜩 들여마셔버린 끝에 목이 잠기고 염증마저 생겨 며칠간 식도가 부은 상태로 고생하기도 했다. 

경험 많은 택시 운전 기사들은 고속도로에서 모래폭풍을 만나기라도 하면 죽시 안전한 곳으로 차를 세우고 모래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가시거리가 매우 짧아 안개등을 켜도 별 효과가 없을 정도라 잦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모래폭풍속에 사우디인. 사진=구글
모래폭풍속에 머리에 쓰는 쉐막으로 얼굴을 감고 있는 사우디인. 사진=구글

모래폭풍은 지나가고 나서 그 위력을 절감할 때가 있다. 도로가 없어졌다거나 길이 사라졌다라고 하는 말은 전혀 과장된 얘기가 아닐 정도로 풍경이 확 바뀌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사우디 주택들은 창문이 매우 작거나 또는 큰 창문이라면 창문을 열고 닫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창문 단속을 아무리 해도 모래바람이 불고난 후에 방안 곳곳 반짝거리는 작은 모래알 때문이다. 유리창 섀시 사이마다 접착테이프를 여러겹 붙여 놓은 집들이 있지만 모래폭풍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한 사우디 교민은 모래폭풍이 불던 날 자다 깨어보니 덮고 있던 이불 위와 방안에 모래가 가득 쌓여 있더라고 했다. 사우디의 모래바람은 미세한 틈새에도 비집고 들어올 수 있으니, 사우디 이주를 계획하는 독자가 있다면 철저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모래바람이 불면 주차장에 세워둔 차들도 위험상태가 된다. 사우디에서는 반드시 자동차 창문이 완전히 닫혀있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면 안전한 곳에 주차하는 게 필수다. 새 자동차라도 외장 페인트 부분부분에 손상이 가고 심지어 자동차 부품 수명이 짧아지는 것도 모래바람과 무관치 않다. 자동차 정비를 위해 본넷(bonnet)을 열어볼 때면 어김없이 모래시계에서 쏟아진 듯 고운 모래가 엔진 주변 구석 구석에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기적으로 에어 건(air gun)으로 털어내는 것도 사막지역 운전자들의 필수적인 행동요령이다. 

모래폭풍이 지나간 후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들. 사진=구글
모래폭풍이 지나간 후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들. 사진=구글

사우디에선 삽겹살 못먹어 아쉬움도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도 가벼운 모래바람이 불어왔는데 모래 냄새가 가시질 않고, 눈과 목이 무겁고 불편할 정도다. 

40년전 사우디에서 근무하셨던 필자의 아버지는 이 모래폭풍을 '할라스'라는 단어 한마디로 기억하신다. 아랍어로 할라스는 '끝' 이라는 뜻인데, 멀리서 폭풍이 오면 일하는 현지인들 모두 “할라스~  할라스~ ”라 하며 일을 끝내더라하셨다. '오늘 업무 끝'이라는 의미다. 아버지는 지금도 봄철이 되면 할라스 바람이 많이 불어오니 몸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신다.

이 모래폭풍 계절이 끝나면 본격적인 사우디의 더위가 시작된다. 모래바람은 사우디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계절인 겨울이 끝나감을 확실하게 알리는 전령사인 셈이다. 

모래폭풍 한가운데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사진=구글
모래폭풍 한가운데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사진=구글

한국에서는 먼지를 잔뜩 먹은 날에 삼겹살이나 돼지고기 수육을 먹어줘야 한다는데, 사우디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구할 수 없어 아쉽다. 창 밖으로 불어오는 모래 먼지 속에서 삼겹살, 수육 먹는 상상만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 필자인 신승민 교수는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서 학위를 마치고 2017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Dharhan(다란)에 위치한 king Fahd University Of Petroleum & Minerals(국립 킹파하드 석유광물 대학교) 체육학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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