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보관에 해로운 건 습기, 산소, 냄새, 빛
오래된 차는 냉침한 후 아이스티 또는 핫티로 먹으면 좋아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차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이 주제에 관련해서는 먼저 용어정리가 필요하다. '유통기한'은 생산자나 판매자 측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해도 되는 최종시한을 말한다. 구입한 소비자가 해당 제품을 소비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고려해야 함으로 대부분의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유통기한과 별개로 먹어도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소비기한'이라는 개념도 있다.
가장 맛이 좋은 기간, 상미기간
논리적으로 '소비기한'은 '유통기한' 보다 길다. 여기에 더하여 '상미기간'이라는 개념도 있다. 해당 식품이 가장 맛이 좋은 기간을 의미한다. 굳이 순서를 정하자면 '상미기간'은 '소비기한' 보다 짧은 편이다.
유럽에서 판매하는 차의 패키지에는 보통 BB 혹은 BBE라는 단어와 함께 날짜가 적혀있다. Best Before 혹은 Best Before End(date)의 약자로 적혀 있는 날짜 이전이 가장 맛있다는 의미다. 위의 세 개념 중에는 상미기간과 가장 가깝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차에도 '품질유지기한' 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역시 상미기간 개념이다.
그러면 질문을 "차에도 상미기간이 있나요?" 라고 바꿀 수 있다. 당연하다. 상미기간이 있다. 그러면 '소비기한'도 있을까? 사실 음용자들의 관심은 이 '소비기한' 일 가능성이 많다. 즉 구입한 후 얼마나 지나면 마셔서 안 되는지 혹은 오래된 차를 마시면 몸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이다.
상미기간과 소비기한 두 문제를 나눠서 알아보자.
모든 차(즉 6대 다류)에 상미기간이 있지만 차 마다 그 상미기간이 다르다. 그러면 어떤 차가 상미기간이 짧고 어떤 차가 상미기간이 길까? 6대 다류는 차나무의 싹이나 잎으로 가공하되 가공방법 차이로 구분한다. 그리고 가공방법 차이의 가장 핵심이 산화과정이다.
녹차는 홍차보다 상미기간 짧아
일반적으로 산화를 많이 시킨 것은 상미기간이 길고 산화를 적게 시킨 것은 상미기간이 짧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비산화차인 녹차는 이론적으로 완전산화차인 홍차보다는 일반적으로 상미기간이 짧은 편이다. 굳이 '이론적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녹차도 보통 어느 정도는 산화가 되고 홍차도 항상 100% 산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화를 적게 시킨 녹차나 산화를 많이 시킨 홍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품질이 나빠지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산화 정도에 따라 그 나빠지는 속도에 차이가 날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품질이 나빠지는 건 맞지만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서 그 속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차에 해로운 것은 습기, 산소, 냄새, 빛이다. 따라서 불투명한 용기에 넣어 잘 밀폐해서 보관해야 한다.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필자는 반대한다. 넣어서 맛과 향을 버릴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소비하기에 양이 좀 많은 경우는 차라리 은박봉투 같은 것에 넣어 실링(Sealing)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처럼 보관방법이 품질에 큰 영향을 끼침으로 구입한 차에 적혀있는 상미기간 날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질문인 상미기간에 대한 답이다.
냉장고에 보관하는 방법은 권하지 않아
식품으로써 차의 특징 중 하나는 상당히 오래 되어도 우유와 요구르트가 변질하고 상하는 것과 같은 상태로는 되지 않는 것이다. 건조함만 잘 유지된다면 아무리 오래되어도 곰팡이가 피거나 부패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오래된 차를 마신다고 해도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맛이 없어질 뿐이다. 그 증거로 보이차를 들 수 있다.
6대 다류 중 보이차(흑차)는 일반적으로 시간이 경과 할수록 맛과 향이 더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모든 보이차가 그런 것은 아니고 좋은 찻잎으로 잘 만든 보이차가 그렇다. 어쨌거나 보이차 역시 차나무의 싹이나 잎으로 만든다는 면에서는 다른 모든 차와 동일하다. 그런데 보이차의 아주 큰 특징은 다른 차 종류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로 품질이 좋아진다는데 있는 것이다. 물론 무한정은 아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결국엔 맛과 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어느 시점이 상당히 긴 시간일 수는 있다.
게다가 근래 들어서는 일부 백차, 우롱차 등도 시간이 경과하면 또 다른 특성이(일반적으로 긍정적인) 발현된다는 주장도 많다.
따라서 두 번째 질문인 '(해당 기간을 지나면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의미의)차의 소비기한'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언제 구입했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맛과 향이 여전한가 혹은 나빠졌느냐에 따라 마실지 말지를 결정하면 된다.
오래된 차는 냉침한 후 마시면 좋아
하지만 해롭지 않다 하더라도 오래되어 기분 상 개운치 않으면 마시는 방법을 바꿔 보는 것도 좋다.
필자는 오래되어 맛이 없어진 차 중 산화가 약하게 된 녹차, 다즐링 퍼스트 플러시, 우롱차(철관음, 아리산우롱 등) 등은 냉침을 한다. 상온의 물에 찻잎을 조금 넉넉하게 넣고 한 두 시간 후에 찻잎을 넣은 채로 냉장고에 넣는다. 10시간 전후(시간은 매우 유동적이다)로 뒀다가 차갑게 마시면 아이스티로도 좋고, 다시 데워 마시면 핫 티로도 맛이 훨씬 좋아진다. 오래된 차가 아니더라도 맛이 없는 차일 경우 이 방법을 사용해 보기를 추천한다.
가향차는 베이스 차에 관계없이 맛과 향이 나빠지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좀 빠르다. 향이 약해지는 것도 이유가 되고 더해진 맛과 향 자체가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 더해진 맛과 향은 차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오래된 가향차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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