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칼럼] ‘연대’와 ‘각자도생’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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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칼럼] ‘연대’와 ‘각자도생’ 사이에서
  •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YTN사장
  • 승인 2020.06.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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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때 찾아갈 친구나 가족이 없다"
행복 순위 중위권...'사회적 지지' 순위도 최하위권
코로나 사태, ‘너’를 돌아볼 줄 아는 시민사회 키울 때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 YTN 사장]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가 한껏 높아졌다. 강력한 봉쇄조치 없는 효율적 방역으로 바이러스의 고삐가 잡혔다. K 방역의 선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이 보여준 사회적 연대 의식은 유난히 돋보였다.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 의료진의 헌신, 자원봉사의 행렬. 위기 때만 되면 어김없이 한 마음이 되는 모습에 세계는 물론 우리 자신도 감동을 받았다. 

K방역 성공의 그늘

이렇듯 뿌듯한 상황 속에서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를 뒤돌아보아야 할 성적표 하나가 나왔다. 최근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0)가 발표됐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 3명의 학자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각국의 행복 진단표이다. 2017년~2019년의 기간을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행복하면 왠지 한국 사회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건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조사대상 153개국 중 행복 순위가 61위에 그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우리나라는 대만(25위), 필리핀(52위), 태국(54위)보다 순위가 낮다. 그나마 이 정도의 순위를 유지한 것은 1인당 GDP가 27위, 그리고 건강 수명이 8위에 오른 덕분이다. 역시 경제와 높은 의료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90위 이하로 밀린 질적 평가 항목(10개 중 4개)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먼저 삶의 선택에 대한 자유도(Freedom to make life choices) 순위가 140위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이 항목을 조사할 때 질문은 “삶에서 무엇을 할지 자유롭게 선택하는 정도에 만족하느냐, 만족하지 못하느냐”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삶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불만족의 수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다음으로 전날에 행복했거나 즐거웠는지를 묻는 ‘긍정적 영향(Positive affect)’ 항목이 있는데 99위로 낮은 순위다. 일상이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것이다.

필자는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라는 항목을 중시해서 본다. 이 항목의 질문은 “어려울 때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느냐”이다. 우리나라는 99위로 하위권이다. 지난해의 91위에서 8계단이 더 내려앉았다. 힘들 때 서로 돕던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대열에 선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어느 나라든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그렇지 않다. 소득 수준이 비슷하거나 높은 다른 나라를 보면 이 항목의 순위가 제법 높다. 1위 아이슬란드를 포함해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몽골(13위), 싱가포르(37위), 대만(47위) 등이 공동체성 면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점수를 받았다.

타이거 우즈의 가족들. 오랜 기간동안 방황하고 부진을 면치 못할 때 타이거 우즈는 돌아갈 가족들을 생각하며 어려운 시간을 이겨냈다고 밝힌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타이거 우즈의 가족들. 오랜 기간동안 방황하고 부진을 면치 못할 때 타이거 우즈는 돌아갈 가족들을 생각하며 어려운 시간을 이겨냈다고 밝힌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어려울 때 찾아갈 친구가 없는 한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삶이 어떤가요’(How’s Life 2020)라는 조사도 있었다. 36개 회원국과 5개 비회원국 등 모두 41개 나라를 대상으로 한 조사다. 여기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어려울 때 찾아갈 친구나 가족이 없다”는 응답 비중이 우리나라가 19%로 상당히 높게 나왔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힘든 상황을 맞아도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상태이다. 다른 나라를 보면 상황이 딴판이다.

이 응답 비중이 아이슬란드 2%, 핀란드 4%, 영국·호주·에스토니아 각각 6%, 슬로베니아 7%, 미국·독일 각각 9%, 일본 11%로 우리나라보다 크게 낮다.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국가 중 각자도생의 정도가 가장 심한 축에 들어가는 편이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잘 뭉치는 우리가 일상에서는 왜 서로 거리를 멀리 두고 벌판에 서 있는 듯한 위기에 직면해 있을까? 그 정확한 원인의 뿌리를 입체적으로 추적하는 일은 이 글의 역량 밖에 있다. 다만, 세계행복보고서나 OECD의 조사 결과를 보면서 이를 부정하기가 어렵고 무언가 감추고 싶은 부분이 들춰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이 네 가지로 정리했다고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전한다(‘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피로 사회’이다. 외국인 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모습이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앞에서 언급한 조사 결과에 그대로 스며들어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 우리를 바꾸는게 아니라 키우는 건지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회적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런 선한 에너지가 일상에서도 발휘돼 공동체성을 회복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나뉘고 모든 게 바뀐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그 큰 변화의 흐름에 서로를 돌보는 ‘온기의 문화’도 탑승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모두가 지급받은 긴급재난 지원금은 정부가 어려운 국민을 돌보는 상징적 행위였다. 이제 일상의 삶 속에서도 ‘나’만이 아닌 ‘너’도 돌아볼 줄 아는 시민사회의 성숙함을 키워야 할 때이다.

‘행복 여행’을 떠난 꾸뻬씨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조언은 이렇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다’. 철학자 박이문도 같은 맥락의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삶, 따라서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회 구성원, 나아가 우주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보다 이타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이다”(왜 인간은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가)

● 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SBS 등 언론사에서 경제 전문기자로 일한 뒤 머니투데이방송 대표이사, YTN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SK증권 사외이사, 보험연구원 보험발전분과위원장, 유튜버(‘행복한 100세’)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경제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교실 밖의 경제학’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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