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25·끝) 나라가 망하면 기업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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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25·끝) 나라가 망하면 기업도 죽는다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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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있는 기업도 먹잇감…은행은 미국의 감독하에

 

뉴욕 금융가에서는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에서 자국 산업에 대해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죽이려고 한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이같은 루머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움직임은 1998년 3월 18일 워싱턴에서 열인 미국 반도체 협회(SIA)의 결의였다. SIA는 IMF의 아시아 금융위기 지원을 지지하지만, 해당국 정부가 IMF 협정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대한 감시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SIA 결의문은 한국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국을 관심 대상임은 분명히 했다.

SIA는 결의문에서 “아시아 반도체 업체의 투자, 생산, 수출은 시장 경쟁력을 토대로 해야하며, 정부의 보조금이나 불공정 상행위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보조금을 받는 수출, 정부 주도의 수출목표 설정 등은 아시아 경제를 더욱 왜곡시킬 것이며, 시장 경쟁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시각에서는 정부와 금융, 대기업의 유착관계에서 이뤄지는 아시아식 금융 구조 자체를 보조금의 성격으로 간주했다.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과잉 생산이 이뤄지고 있고, 세계 시장의 가격 인하경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 미국 의회는 IMF 지원법안을 1년이나 끌어오다가 1998년 10월 이를 통과시키면서 “IMF 자금이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섬유산업등을 지원하는 결과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특별 조건을 달았다. 미 의회의 이런 행동은 한국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통상압박을 가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의사가 반영한 것이다.

비즈니스위크지는 「삼성의 위기」라는 제목에서 삼성전자는 60억 달러에 이르는 달러 외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1994~95년 반도체 가격이 좋았을 때 그 수익을 자동차산업등 문제 있는 프로젝트에 투입했음을 지적했다.

 

필자는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인 1997년 1월에 미국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에 있는 현대전자 현지법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대의 감명은 아직 남아있다. 서쪽으로는 북미대륙을 관통하는 로키 산맥과 동쪽으로는 광활한 중부 프레이리 평원이 접해있는 곳에 심비오스 로직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이런 곳에까지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마치 연구소와 같이 아담하게 가꿔진 회사는 현대전자가 가지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한 단계 위인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었다.

1994년 11월 적자투성이었던 AT&T 비메모리 부문의 경영권이 현대에 넘어간 후 이 회사는 2년만에 흑자로 전환됐고, 연평균 20%의 성장을 지속했다. 서울에서 지원금이 없어도 현지 미국 금융회사로부터 자체 신용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했다. 1백년전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선 유랑객들이 산맥기숡에 마차를 세워두고 정착한 도시에 한국 기업이 21세기 미래산업의 금광인 하이테크 산업을 개척하기 위해 정착한 것 아닌가 하는 어떤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 회사가 1년후 미국기업에 매각됐다. 1997년 6억2,000만 달러의 매출에 6,800만 달러의 흑자를 낸 건실한 기업이 매각된 것은 한국의 외환 위기가 가져온 결과였다. 미국을 비롯, 선진국 은행들이 한국 기업에 외화를 빌려주기는커녕 빌려준 돈마저 돌려달라는 독촉에 값나가는 해외법인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IMF 금융지원이 결정된 후 시작된 뉴욕 외채협상은 한국 금융권의 단기외채를 만기연장해주는 것으로 결론났다.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는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만기를 1~3년 연장, 한숨을 돌렸지만, 기업의 외채부담은 여전하다. 협상 후 미국의 중소은행들은 한국계 현지법인 또는 지상사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자금 회수에 나선데 이어 오랜 거래관계를 유지해오던 대형은행들도 이에 가세했다.

미국 은행들은 1997년 12월 이후 한국 기업의 해외법인에 대한 크레딧 라인(대출한도)을 30~50%나 줄였고, 더 이상 대출을 늘리거나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은 채 국제금리인 LIBOR(런던 은행간 금리)에 대해 6~8%의 높은 가산금리를 요구했다. 6% 미만의 국제금리 수준으로 돈을 빌리던 한국 기업으로선 두배나 높은 금리를 물어야 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한 한국계 현지법인이 미국 은행에 대출 연장을 신청하면, 외국 은행과의 일체의 거래내역, 만기 등을 열거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현지법인의 자금부장들은 IMF에 긴급자금을 받고 난 이후부터 미국 은행들의 대출형태가 현격하게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토로했다. 당시 현지 법인 자금부장들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 은행들은 한국에 한번 데었기 때문에 한국의 신용등급이 향상되더라도 대출규모를 어차피 줄일 것이다. 문제는 줄이는 속도다.”

“외채협상으로 은행의 단기 채무는 거의 롤오버됐지만, 미국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전체 대출규모를 축소하는 바람에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는 쪽으로 힘이 쏠리고 있다.”

“외국은행들은 한국 기업에 대한 대출금을 줄이는 방안으로 한국계은행의 보증을 받는 은행차입 방식으로 바꾸라고 하는데, 한국의 은행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 은행들이 과거엔 용도를 묻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 확인한 후 일부 롤오버(rollover)를 해준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무역회사 현지법인들이 미국 은행들로부터 수출신용장(LC) 개설을 받지 못해 겪는 애로사항이다. 한국 국가나 기업이 모두 정크 본드 상태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행들이 LC 개설을 거절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기에다 DA(수출어음만으로 선적 서류를 내주는 일종의 외상거래)마저도 일정해 주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한국이 외채를 갚는 유일한 길이 수출을 많이 하는 것인데, 미국은행은 물론 한국계 은행마저 수출 신용을 해주지 않았다. 어느 상사의 경우 서울본사와 현지 법인 사이에 달러 현금 챙기기 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한다.

외환 위기는 미국에서의 한국기업 철수로 이어졌다. 현대전자의 심비오스 매각도 하나의 본보기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현지 법인 유지비용이 높아진데다 외화 부채를 갚기 위해서 외화 사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은행들이 현지에서 한국 현지법인에 대해 대출을 기피하는 것이 더더욱 철수 바람을 확대했다.

쌍용시멘트는 현지공장이었던 리버사이드 시멘트를 미국 회사에 매각했고,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와 새크라멘토에 있던 매리어트 호텔 두곳을 미국 호텔에 팔아야 했다. 한라그룹도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을 매각했다. LG전자가 매입한 제니스(Zenith) 전자는 적자에 허덕이다 마침내 미국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 외환 위기 후 1998년 대대적으로 확산한 '금 모으기 운동'. 그해 2월13일 대치동에서는 1㎏짜리 금괴가 95개나 접수됐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쌓인 금괴 앞에 호기심 어린 시민들의 표정과 기쁜 듯 설레는 표정으로 금을 감정하는 감정사의 모습이 생생하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미국 벌쳐 캐피털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과 동남아 상공에도 배회했다.

뱅커스트러스트, 골드만 삭스, 메릴린치, 레만 브러더스, 모건 스탠리, JP 모건, 살로만 브러더스등 월가의 투자은행과 증권사들은 일본의 부실 은행을 매입하기 위해 한꺼번에 일본에 몰려들었다. 제조업체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GE 캐피털, 곡물회사인 카길사의 금융파트, 연금 운용 회사인 론스타, 부동산 회사인 크레센트, 캘리포니아의 투자회사인 씨큐어드 캐피털도 일본 은행이 매각할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월가의 벌쳐 캐피털이 일본에 대거 진출한 것은 일본은행들이 가격 상승을 기대, 7~8년 동안 팔지 않았던 6,000억 달러의 부동산 가운데 상당수를 매각하려 들고 있기 때문. 일본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피크였던 1991년에 비해 1998년초 20% 수준으로 폭락했다. 월가 자본이 노리는 부동산은 사무용 빌딩은 물론 건설을 중단한 골프장, 야쿠자와 연결된 러브호텔, 파칭코 점포등 다양했다.

1998년초 월가의 투자자들이 협상중인 일본 은행 부동산은 100억 달러에 이르렀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니폰 신용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장부가의 10분의 1 수준인 2억2,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골드만 삭스도 97년말 스미토모 은행의 자산 3억1,000만 달러(장부가)를 매입한바 있다. 미쓰이 투자신탁은 장부가로 1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하기 위해 미국 부동산 자문회사의 전문가를 판매 고문으로 썼다.

미국의 벌쳐 캐피털들은 1996년 프랑스 은행들의 부실 자산 매각에 참여했으나,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프랑스보다 몇 배나 많은 물량이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본 부동산을 사들일 생각을 했다. 메릴린치 증권은 부도가난 야마이치 증권의 50개 지점을 샀고, 동시에 직원 수천명을 고용했다. 부동산만 산 것이 아니라 인적 자원까지 사들인 것이다.

 

환율의 마력은 국가간 경제적 위상을 뒤바꿔놓는다. 1980년대 일본은 뉴욕의 록펠러 센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헐리웃의 칼럼비아 영화사를 샀고, 하와이는 엔화 경제권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경제를 지배했다. 엔고의 덕분이었다. 그러나 10년후 엔화가 절하되고 일본 경제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뉴욕의 빌딩과 하와이의 콘도미니엄들은 미국으로 되돌아왔을뿐 아니라 다시 일본의 부동산과 공장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고평가된 달러를 무기로 재벌들은 「세계화(globalization)」를 부르짖고 미국에 전자회사를 사고, 영국에 공장을 건설했다. 선진국의 환상은 원화 고평가에 있었다. 그러나 원화가 절하되면서 해외 공장들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국내 공장들은 미국에 팔려나갔다.

나라경제가 망하면 기업과 은행도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IMF 외환위기 과정에서 우리는 충분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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