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까...‘직업표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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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까...‘직업표류’등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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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생 일본작가 렌의 '직업표류'...'취업 빙하기'에 살아남은 8인 이야기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다양한 업종의 사장들 인터뷰 실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할까..."어쩌면 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일 수도"
비오는 광화문 출근을 서두르는 시민들.사진=연합뉴스
비오는 광화문 출근을 서두르는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최근 우연히 본 장면이 계속 생각났다. 길을 걷는데 아주머니들이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식당 안내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었는데 ‘국비 직업 훈련 교육생’ 안내였다. 컴퓨터, 미용, 조리, 커피, 중장비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 앞에 ‘고용복지플러스센터’가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건물에 들어가 보니 ‘실업급여’를 전담하는 민원실이 있었고 ‘취업’과 ‘재취업’을 상담하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어두운 얼굴로 건물 곳곳을 오가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용’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뉴스가 계속 나온다. 성장률 1% 하락에 취업자 45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굳이 통계가 아니더라도 점점 나빠지는 경제 상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요즘이다.

고용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는 구직자의 취업과 재취업을 위해 3단계에 걸쳐 취업 상담, 직업 훈련, 일자리 알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국비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모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구직자에게는 지원금도 준다.

얼마 전에 읽은 책 때문인지 취업 혹은 재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을 보니 ‘표류’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나이즈미 렌’이 쓴 ‘직업표류’라는 책 때문이다.

 

'직업 표류'.샘터 펴냄.
'직업 표류'.샘터 펴냄.

 

표류. 안정된 정박지를 향해, 어디일지 모르는 그곳을 향해 떠도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가 원하는 직장 혹은 직업을 향해 떠도는 일본 청춘들의 모습을 “직업을 향한 표류”라고 비유했을 것이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인 ‘이나이즈미 렌’은 1979년생으로 같은 세대의 취업 문제는 물론 그 이후까지도 자세히 보기를 원했다. 저자는 ‘이직’이라는 주제로 그와 같은 세대 8인을 취재한 내용을 책에 담았다. 4년에 걸쳐 취재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일본의 취업빙하기 이후 직장인이자 사회인이 된 그들의 궤적을 이 책에 담았다.

“불과 몇 년 전에 대학생이었던 그들은 어떻게 기업 조직에서 일을 시작했고, 또 자신의 가치관과 어떻게 타협하며 ‘사회인’으로 성장했을까? 시대의 파도에 떠밀려 표류하다가 어떻게 자기만의 정착지를 발견했을까?” (머리말 중)

저자가 인터뷰한 8인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일본에서 명문으로 알려진 대학교를 나와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사회의 첫발을 디딘다. 그런데 그들 모두 첫 직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

같은 직종에서 같은 직종으로, 때로는 전혀 다른 업종으로 옮긴다. 회사의 규모도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긴 사례가 있는가 하면 큰 기업에서 작은 회사로 옮긴 사례도 있다. 그들은 첫 직장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직을 한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8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본인의 분석을 곁들여 적어 내려간다.

그들의 이직은 주로 “이 일이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들 대부분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러 곳에 입사 지원을 해서 제일 먼저 합격을 한 회사에 들어간다. 혹시 취업을 못 할까 봐 이것저것 재지 않고 다른 회사보다 앞서 자기를 선택해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간 것이다.

MBC 드라마 '꼰대 인턴'. 최악의 꼰대 부장을 부하직원으로 맞게 된 남자의 통쾌한 갑을체인지 복수극이자 시니어 인턴의 잔혹 일터 사수기를 그린 코믹 오피스물.사진=MBC
MBC 드라마 '꼰대 인턴'. 최악의 꼰대 부장을 부하직원으로 맞게 된 남자의 통쾌한 갑을체인지 복수극이자 시니어 인턴의 잔혹 일터 사수기를 그린 코믹 오피스물.사진=MBC

그들은 상사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도 본다. 평생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전혀 발전 없이 직급만 올라가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실적만 올리라는 회사에서 그들은 숨이 막힌다. 그러다 보니 직장과 직업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그들은 그렇게 여러 번의 이직을 거쳐서 저자와의 마지막 인터뷰 당시에는 만족스러운 직장에서 일하게 된다.

취업과 직업. 직을 취했다 해서 업에 안착했다고 할 수 없다. 업에 진입했다 해서 늘 직을 갖는 것도 아니다. 직이 배라면 업은 바다다. 사회 초년생이 어렵게 배를 탔다면 이제 망망대해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어도 항로를 모른다면 표류다. 저자는 일본의 자기 또래들이 그렇게 표류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직업표류라고 했을까.

“회사 입장보다 내 커리어가 중요합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회사가 내게 ‘좋은 회사’이죠.” (378쪽)

저자는 후기에서 8인과의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어쩌면 이 말이 79년생 저자 또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읽다 보니 일본과 일본인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우리와는 어떤 모습이 닮았고 어떤 모습이 다를까.

침체에 빠져든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판박이처럼 닮아간다는 말이 많다. 특히 ‘청년실업’은 일본이 겪은 부분과 아주 유사하다. 혼밥족에 이어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족), 일인 가구 증가, 캥거루족, 해외 취업, 프리터족, 5포 세대를 넘긴 n포 세대는 ‘달관했다’는 뜻의 일본 ‘사토리 세대’와도 통한다.

어렵게 취업을 했다 해서 끝나지 않는 문제도 일본과 유사하다. 고도성장기에는 회사와 함께 개인 역시 커갔지만,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은 취업과 함께 소모되어간다는 인식으로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외 취업이나 이민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많은 젊은이가 창업, 특히 자영업 창업으로 눈을 돌리기도 하고.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브로드컬리 펴냄.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브로드컬리 펴냄.

 

그 지점에서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로컬숍, 그러니까 지역 가게 연구 잡지인 ‘브로드컬리’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이전 책에서는 빵집과 작은 서점, 제주도 이주민의 가게 등을 다뤘다. 이 책의 부제는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이다.

이 책은 평균 나이 36세, 회사 재직 기간 7년, 퇴사 후 약 3년 경과, 오픈 2년 내외인 가게 사장들과 인터뷰한 책이다. 그러고 보니 ‘직업표류’에 나온 8인들과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은 직장을 옮기는 대신 자영업 창업을 했다. 직종은 식당, 혹은 카페나 바, 그리고 서점이다.

논픽션 작가가 쓴 ‘직업표류’는 저자가 직접 본문에 개입하여 자기 생각을 적어 내려간 산문 형식이라면 이 책은 철저히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 잡지나 신문의 인터뷰 기사처럼 오로지 질문과 대답만 나온다. 묻고 답하고. 어떤 직업을 가졌었는지, 가게 업종 정한 배경은 무엇인지, 창업 비용은 어떻게 얼마나 조달했는지, 장사는 잘 되는지 등.

그들이 잘 다니던 직장을 나와서 자신의 가게를 차린 배경은 비슷했다. 직장과 직업이 자신의 꿈을 이뤄주기에는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달랐다는. 그래서 자기가 주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물론 다양한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정리하자면 대개 그렇게 요약되었다.

이 책의 부제처럼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할까. 물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고용센터에서 본 현실은 어쩌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었다. 코로나19‘가 현실을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표류’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표류자의 소망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무사히 살아남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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