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자신만의 삶 살아간 한 소녀의 이야기...‘배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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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자신만의 삶 살아간 한 소녀의 이야기...‘배움의 발견’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29 10: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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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섯살까지 학교에 가본 적 없던 소녀 '타라 웨스트오버', 케임브리지 박사 되기까지
입지전적 경험 쓴 비망록이 아닌, 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투쟁의 이야기로 관심받다
2018년 버락 오바마가 추천한 올해의 책, 2018~2019 '뉴욕 타임스' 최장기 베스트셀러
배움을 쟁취한 한 소녀의 이야기. 사진=pixabay
배움을 쟁취한 한 소녀의 이야기. 사진=pixabay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읽을 책이 떨어지면 서점 나들이를 한다. 제일 먼저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중에서 읽을만한 책이 있는지 살펴본다. 베스트셀러에 새로 오른 책이 없다면 분야별 매대로 눈을 돌린다. 새로 나온 책들이 많은 코너에 가면 꼭 처음 가본 곳을 여행하는 것처럼 설렌다.

처음 만나는 책에서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외모다. 제목과 부제, 띠지와 뒤표지는 물론 디자인까지 싹 훑어본다. 마음에 들면 그 책의 출신을 본다. 어느 출판사에서 냈는지 그 출판사에서 낸 다른 책들은 어떤 게 있는지 살펴본다.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라도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냈던 출판사라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책을 선택하게 하는 학습효과일까.

올해 초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있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차지한 책들이 많아서 새로 올라온 그 책은 유독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배움의 발견’이라는 제목이 나를 선입견에 빠지게 했다. 연초니까 학부모들을 겨냥한 책이겠군 하는. 그 책을 낸 곳이 큰 출판사니까 마케팅에 힘 좀 쏟았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비판적인 마음으로 매대에서 책장을 넘겼는데 선 채로 한참을 읽었다.

‘배움의 발견 (Educated)’는 '타라 웨스트오버’의 첫 저술이자, 회고록이다. 미국 아이다호주 벅스피크의 유년 시절부터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얻기까지 남다른 배움의 여정을 다룬다.

2018년 초에 나온 이 책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의 찬사 속에 2019년 말까지 미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고. 회고록의 폭발적인 인기 속에 타라는 2019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다.

 

'배움의 발견'. 열린책들 펴냄.
'배움의 발견'. 열린책들 펴냄.

공교육 거부한 아버지로 인해 16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해

‘타라 웨스트오버’는 1986년 미국 아이다호에서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모르몬교 근본주의자였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타라는 아버지 말에 따라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고, 밤에는 ‘산속 피신용’ 가방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산파이자 동종 요법 치유사인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끓이며 여름을 보냈고, 겨울에는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폐철을 모으고 자르는 일을 했다.

타라의 가족은 주류 사회로부터 너무나 고립된 상태로 살았고, 이 때문에 자녀들은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도, 가족 간의 은밀한 학대에도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현대 의학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 본 적도 없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 심각한 뇌진탕, 심지어 폭발로 인한 화상도 모두 엄마가 만든 약초를 써서 집에서 치료했다.

타라가 처음 배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열일곱 살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가 집에 돌아와서 산 너머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자 타라는 새로운 인생을 향해 발걸음을 떼겠다고 결심한다. 열여섯 살이던 타라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들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모르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브리검 영 대학에 합격한다.

타라의 대학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초 교육 과정을 모두 건너뛴 채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레미제라블’에서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 인물이고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기초 지식이 부족했다. 외딴 산골에서 부모의 일을 돕거나 주말에 교회에 가는 것 말고는 거의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던 타라는 친구, 지인, 이성을 대하는 법, 커피를 마시는 방법까지 모두 다시 배워야 했다.

 

몰몬교도 아버지의 공교육 불신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타라 웨스트오버. 사진=출판사 SNS
몰몬교도 아버지의 공교육 불신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타라 웨스트오버. 사진=출판사 SNS

'이방인'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진짜 '이방인'임을 깨닫다

새롭게 경험한 대학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은 세상과 너무나 달랐다. 성경과 모르몬 경전 이외에는 다른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던 타라에게 대학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도 처음 알았고, 흑인 민권 운동도 처음 배운다. 페미니즘에 대한 의미도.

타라는 위대한 선지자의 말이나 역사학자가 제시하는 해석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고, 자기 생각을 덧붙일 수 있다는 생각. 그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을 처음으로 한다.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불렀지만, 타라는 점점 자신의 가족이야말로 진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라는 아버지의 왜곡된 신념 때문에 자신과 가족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 왔는지 깨닫고, 깊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 타라는 ‘아버지가 기른’ 그 소녀와 배움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지금의 ‘나’가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타라는 강의실에서 교수가 칠판에 쓴 물음을 떠올린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그녀는 ‘바로 나’라고 생각한다.

배움을 향한 열정은 타라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고, 그녀는 바다와 대륙을 건너 케임브리지와 하버드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박사 학위도 받았다. 하지만 가족과 끊어진 삶은 그녀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지, 아직 집으로 돌아갈 길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타라는 새로운 자아가 내린 자기의 결정을 믿는다.

 

“(16세 이전의)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507쪽)

 

타라 웨스트오버. 사진=웨스트오버 트위터
타라 웨스트오버. 사진=웨스트오버 트위터

한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투쟁의 이야기

이 책은 시골에서 열여섯까지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않았던 소녀가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 경험을 담은 회고록만은 아니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투쟁의 이야기이다.

또한,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며, 가족과의 연결 고리를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담은 이야기이다. 타라에게 배움은 단순히 좋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뜨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었다.

‘배움의 발견’은 500쪽이 넘는 책이다. 그런데 집중해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만약 회고록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소설이었다고 해도 믿을만한 책이었다. 그만큼 저자가 살아온 배경과 겪은 일들이 너무나 허구 같았다. 게다가 저자는 1986년생이다. 책에 나온 전근대 같은 배경이 불과 30여 년 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라 웨스트오버’의 이야기가 놀라우면서도 성찰을 준다. 배움이 무엇인지, 배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바로 배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의지를 얻는다는 사실을 평범한 사실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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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7 14:01:23
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