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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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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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의사 우종영이 숲에서 배운 47가지 인생 수업...'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
저자는 나무에게서 세상과 사람 사는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에서 아이 키우는 지혜를, 나무가 환경의 위협을 이기는 모습에서 위기관리의 지혜를, 나무와 숲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들려준다.사진=pixabay
저자는 나무에게서 세상과 사람 사는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에서 아이 키우는 지혜를, 나무가 환경의 위협을 이기는 모습에서 위기관리의 지혜를, 나무와 숲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들려준다.사진=pixabay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러미스트] 철학자라고 하면 평범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과 단어로 세상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다양한 선행 이론들을 학습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진리를 찾는다.

반면 철학 학위가 없더라도 세상에서 철학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er)’이라는 어원처럼 나름의 시각으로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철학자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한다. 그만의 시각이지만 그가 겪은 경험에서 얻은 성찰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편타당한 지혜를 주기 때문에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철학자 못지않은 삶의 지혜를 터득한 철학자들은 어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책의 저자는 사람이 아닌 나무가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무를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라고 부르며 “나무로부터 단단한 삶의 태도를 배웠노라”고 고백한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의 저자 ‘우종영’은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 의사’일 것이다. 그는 30년 넘게 아픈 ‘조경수’나 ‘가로수’ 혹은 ‘보호수’를 고치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요즘은 후세들이 자연을 바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이끄는 강연과 저술 활동에 주력한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메이븐 펴냄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메이븐 펴냄

이 책은 평생 나무와 함께 한 저자의 고백록이다. 젊은 시절 다양한 좌절을 겪다가 나무와 만나게 되고, 오랜 시간을 나무와 함께 보내며 변화해가는 저자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많은 나무가 삶의 스승이 되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는 사람들이 단편적으로만 아는 나무의 여러 미덕을 깨닫게 한다.

봄이면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을 뚫고 어린싹이 올라온다. 저자는 그런 광경을 오래전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씨앗은 운이 좋다면 1년 만에도 싹을 틔운다. 하지만 적당한 환경과 조건을 만나지 못한다면 딱딱한 껍질 안에서 수십 년을 보내기도 한다고.

 

“씨앗 안에는 오래도록 씨앗으로 존재하려는 현재 지향성과 껍질을 벗고 나무로 자라려는 미래의 용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좋은 환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힘과 언제든지 싹을 틔우려는 상반된 힘이 씨앗 안에서 갈등하고 타협한다는 증거다.” (94쪽)

 

그런데 어린나무의 싹이 튼다 해도 몇 해 동안은 크게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땅속의 뿌리 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고.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유형기’라고 한다. 어떤 고난도 이길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시기이다. 어린나무들은 이런 몇 년간의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고. 저자는 젊은 시절 암울하게만 여겼던 방황을 인생의 유형기였다고 술회한다.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무와 함께 하는 인생은 없었을 것이라며.

혹시 ‘우듬지’라고 들어봤는가. 나무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줄기를 말한다. 나무는 싹을 틔운 순간부터 위로 자란다. 죽는 순간까지 해를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이다. 이때 중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듬지다. 때로는 아래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것을 통제하기도 한다. 우듬지 끝이 한 마디쯤 자란 후에야 아래 가지도 뒤따라서 한 마디 자라는 식이다.

위로 곧게 솟은 나무들 사이에서 간혹 이상하게 뻗어 나가는 나무를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나무의 성장을 위협하는 다른 나무나 바위 등 어떤 요소들 때문에 우듬지가 방향을 틀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저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겨내며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우듬지의 힘과 통솔력을 배워보라고 권유한다.

저자는 나무에게서 세상과 사람 사는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나무가 자라는 모습에서 아이 키우는 지혜를, 나무가 환경의 위협을 이기는 모습에서 위기관리의 지혜를, 나무와 숲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들려준다.

멈춘 듯 서 있는 모습이지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나무에게서 저자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다. 나무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저자의 모습이기도 했다.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 나무 병원 ‘푸른공간’을 설립해 30년째 아픈 나무를 돌봐 오고 있다. 그는 인생 후반부에 이르러 나무 치료 일을 조금씩 후배들에게 넘기고, 대신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메이븐 출판사 네이버 포스트
30년 경력의 나무 의사. 나무 병원 ‘푸른공간’을 설립해 30년째 아픈 나무를 돌봐 오고 있다. 그는 인생 후반부에 이르러 나무 치료 일을 조금씩 후배들에게 넘기고, 대신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메이븐 출판사 네이버 포스트

저자의 평생 직업은 ‘조경 관리업’을 하는 사업자였다. 그가 만약 나무로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면 아마 ‘조경 시공업’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80년대 이후 아파트 건설 붐을 타고 떼돈을 벌었을 텐데.

그래도 심은 나무가 자라면 관리를 해야 하는 법, 조경수나 가로수뿐 아니라 오래된 보호수를 돌봐달라는 부탁이 전국에서 왔다고 한다. 저자는 바쁜 일 가운데에서도 후배를 키우고 더욱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산림기사’, ‘수목보호기술자’,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을 갖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정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고백을 여러 곳에서 한다. 하지만 그는 “공부하는 즐거움을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깨우쳐서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덕분에 예순이 넘은 나이에 제1회 나무 의사 시험에 도전해서 합격했다. 그는 우러나와서 하는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학교를 다니며 그저 시키는 공부만 하다가 졸업한 뒤에 아예 공부를 끊은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다면 살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155쪽)

 

저자는 지금 후세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전해주는 강연과 저술 활동에 집중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져 예전처럼 현장에서 일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고. 나무가 마지막에는 열매를 맺듯이 삶을 보람 있는 일로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모습이 보였다.

철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어려운 단어들로 쓰인 두꺼운 책이 떠오른다.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철학자들의 이론은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런 권위 때문에 세상은 많은 것에다 ‘철학’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성공철학, 경영철학, 국정철학 등. 마치 그러면 깊은 성찰이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읽으며 저자의 진정성을 느꼈다. 단순히 사물을 삶으로 비유한 것이 아닌 한 대가가 평생 쌓아온 깨달음이 보였다.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그 어떤 이론도 가져다 붙일 수는 없겠지만 그런 권위 있는 철학 못지않은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7년 만에 세상에 나온 친구가 있다. 그에게 세상이 많이 달라졌냐 물으니 “눈으로 봤을 때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나무의 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사는 곳 가로수들이 7년 동안 눈에 띄게 많이 자랐다는 이야기다. 멈춘 듯 보이지만 조금씩 생장하는 나무의 은근과 끈기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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