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5 오늘] 단치히 자유시 수립…양철북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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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오늘] 단치히 자유시 수립…양철북의 배경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1.14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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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39년 존속…2차 대전후 폴란드 그단스크로 바뀌어 독일인 추방

 

1920년부터 1939년까지 19년 동안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단치히 자유도시(Free City of Danzig)라는 작은 독립국이 있었다.

이 도시국가는 1차 대전의 산물이었다.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승전국인 프랑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독일 땅을 떼어 독일 땅도, 폴란드 땅도 아닌 독립국을 만들었다. 법적 근거는 1차 대전 강화조약인 베르사이유 조약 100조였다.

1차 대전 종전 2년후인 1920년 11월 15일은 단치히 자유도시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독립국으로 출범한 날이다.

도시국가는 독일과 동프로이센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면적은 1,966㎢으로,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 정도였고, 200개의 타운과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민은 98%가 독일인이었고, 공용어도 독일어였다. 누가 뭐래도 독일 땅인데, 발트해 동서로 독일에 갇혀 있는 폴란드에 항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자유(free)라는 이름을 내세워 인위적으로 만든 나라였다. 당연히 독일인들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1차 대전후 전후 처리를 위해 만들어진 이 도시국가는 국제연맹의 보호를 받았고, 폴란드와 관세동맹을 체결했다. 폴란드는 단치히에 통신 및 철도, 항만 이용권을 가졌고, 프랑스에서 차관을 얻어 이 자유도시에 근대적 항만시설을 건설했다.

 

▲ 단치히 자유시 위치 /위키피디아

 

단치히는 프로이센에 병합되기 이전엔 독립된 도시였다.

10세기에 비스와 강의 하항(河港)을 무역항으로 활용하며 형성된 도시였다. 12세기 이래 독일 상인이 이주해 왔으며, 1224년 도시권을 획득하고, 1361년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에 가맹해 동유럽의 주요항구로 번영했다. 그러다가 1793년 프로이센에 병합된다. 그후 서프로이센의 주도가 되었다.

 

▲ 단치히 자유시 국기 /위키피디아

국제연맹에 의해 창설된 단치히 자유시는 독자적인 화폐(100페니히=1굴덴)와 국기를 가지고 있었다. 정치체제는 의회주의였고, 상원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나치(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가 1933년 단치히 의회에 진출해 1936년 의회의 다수당이 되어 자유시를 장악했다.

1939년 9월 1일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로 독일 나치군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단치히 의회는 나치 독일에 합병을 선언했다. 단치히 자유시에 있던 폴란드인들은 우체국 등지에서 항전을 벌였지만, 대부분 사살되었다. 베스테르플라테(Westerplatte) 반도에 주둔하던 폴란드군 205명이 일주일 동안이나 독일군에게 맞서 싸웠다. 이들은 현역 군인 신분이었기에 총살당하지 않았다.

폴란드 침공 이후 단치히는 독일이 장악하고, 자유시는 소멸되었다.

 

그러나 나치의 점령도 오래 가지 못했다.

2차 대전 기간에 독일과 소련의 전투로 시가지와 항만시설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소련군은 이 도시를 점령했고, 1945년 얄타회담과 포츠담 선언을 통해 이 도시는 폴란드령으로 넘어갔다. 폴란드 땅이 된 이후 단치히라는 독일식 지명은 사라지고, 대신에 폴란드식 그단스크(Gdańsk)로 이름이 바뀌었다.

2차 대전 후 소련은 단치히(그단스크)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추방했다. 1950년 28만5,000명의 독일인들이 추방되거나, 독일로 망명했다. 남은 독일인 가운데 1만3,000명이 폴란드로 국적으로 전환했다.

이 도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199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의 대표작 양철북(The Tin Drum)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는 이 곳에 있는 조선소를 중심으로 노조 운동을 일으켰다. 폴란드 공산정권은 자유노조에게 굴복해 민주화되었다.

단치히가 폴란드로 넘어간 이후 1947년 단치히 망명정부가 수립되었다. 망명정부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유시 당시의 헌법을 고수하고 있다. 망명정부는 독일의 1939년 합병이 불법이며 폴란드의 점유도 인정할수 없다고 주장한다.

 

▲ 단치히 자유시 화폐 굴덴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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