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오늘] 총선에 지고도 집권에 성공한 독일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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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오늘] 총선에 지고도 집권에 성공한 독일 나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1.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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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득세에 우파 연합 형성…승전국의 과도한 요구에 민족주의 부상

 

전세계에 대공황의 광풍이 몰아치던 1932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두 번의 총선을 실시했다.

▲ 아돌프 히틀러 /위키피디아

그해 7월 31일 치러진 총선에서 나치당은 총의석 608석 가운데 230석을 차지해 과반수는 얻지 못했지만 제1당으로 부상했다. 당수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총리직을 요구했지만,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대통령은 총리 임명을 거부했다.

의회가 해산되고, 11월 6일 다시 실시된 총선에서 나치는 196석으로, 제1당은 유지했지만 의석수를 34석이나 빼앗겼다. 나치가 총선에 실패한 것이다.

제2당은 사회민주당으로 역시 12석 빼앗겨 121석이었다. 하지만 공산당이 득세했다. 공산당이 11석 늘려 100석으로 제3당이 되었고, 표도 600만표나 더 얻었다. 좌파 계열의 정당이 합치면 연합정부 수립이 가능한 상태였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극우 보수주의냐, 극좌 공산주의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 기업가와 보수주의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독일이 공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면서 히틀러를 중심으로 보수 연합정부를 구성하자는 움직임이 형성된다.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측근인 쿠르트 폰 슐라이허(Kurt von Schleicher) 장군을 총리로 임명해 강력한 군사통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슐라이허는 반자본주의적인 군사독재를 구상하고 있었으므로 독일 자본가들은 불안해 했다. 자본가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성향을 띤 군사독재보다는 차라리 히틀러를 선택하자고 힌덴부르크에게 요구했다.

당시 독일의 분위기는 우익 세력 보수파들이 나치당을 중심으로 단결한 반면에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제2당과 3당을 차지했지만, 내분이 일어나 대립했다. 게다가 대공황의 여파로 국민들의 불만과 생활고가 날로 높아져 갔고, 군부, 관료, 자본가, 농민층 그리고 중산층까지도 나치 지지로 기울어 졌다.

해를 넘겨 1933년 1월 30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내키지는 않았으나 히틀러를 총리(chancellor)로 임명했다.

히틀러가 총리에 지명된 다음달인 1933년 2월 27일, 나치 정권은 공산당 당원들이 의사당을 방화했다고 주장하며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단행했다. 이어 실시된 총선거에서 나치는 43.9%의 득표율을 얻으며 의석수 288석을 차지했다.

1934년 8월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총리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대통령과 총리직을 겸한 총통(Führer und Reichskanzler: leader and chancellor)이 되었다.

 

▲ 1933년 3월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 총리 /위키피디아

 

독일의 나치 집권에 대한 연구들이 많다. 하지만 2차대전 승전국의 학자들이 내놓은 견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제3자적 관점에서 보면, 1차 대전의 승전국들이 패전국 독일을 지나칠 정도로 가혹한 전쟁배상금을 물렸고, 그에 따른 민족적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하사 출신의 극우주의자를 독재자로 옹립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1차 대전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프랑스는 알사스와 로렌등 독일 영토를 점령해 자원을 가져갔고, 배상금 상환을 압박했다.

배상금 상환에 쫓기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로스차일드등 유태계 은행에서 고리의 돈을 빌렸고, 그 돈을 갚으려 또다시 돈을 찍어내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독일인의 눈에는 프랑스도 미웠고, 그 틈바구니에서 고리대를 뜯는 유태인 금융인도 미웠다.

이 때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하고, 독일에 공산 혁명의 기운이 불었다.

좌냐, 우냐의 극단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좌파적 냄새가 나는 민족주의를 주창한 것이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 National Socialism)이고, 나치다. 독일 노동자 당에서 개칭한 정당명이다.

독일 나치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토양에서 급성장했다.

1차 대전후 패전국 독일은 당시로는 가장 민주적인 바이마르 헌법을 채택했는데, 이 민주 헌법을 활용해 나치는 의회권력을 장악하고, 좌파의 분열을 이용해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집권한 다음 히틀러의 나치 정부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폐기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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