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규 칼럼] 인공지능이 법률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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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규 칼럼] 인공지능이 법률가를 대체할 수 있을까
  •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변호사
  • 승인 2020.11.05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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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법률가' 미래 사라질직업 상위권으로 꼽아
인간이 만든 법, AI가 판단한다?...무조건 따르긴 힘들 것
AI 시대...법률가 역할변화는 받아들여야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대표 변호사.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대표 변호사] 인공지능이 바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질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미국의 종합뉴스채널 CNN은 지난 2018년에 미래에 사라질 직업 순위를 발표했는데, 법률가는 스포츠경기 심판, 텔레마케터, 패션모델과 함께 가장 사라질 확률이 높은 직업군으로 선정됐다.

정말로 인공지능이 바꿀 세상에 법률가의 자리는 없을까. 거대한 서류더미를 검토하고 분석하여 정리하는 일들은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참신한 논리를 개발하는 일도 인공지능이 더 잘할지 모른다. 심지어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조차도 인공지능의 판단이 더 정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선 인공지능이 법조계에 자리잡게 되면 법률가들의 업무형태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인공지능은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도 수분내로 쟁점을 파악하고 관련된 법령이나 판례를 간추려 낼 것이다.

법률가 10명이 한달 걸려 하던 일을 순식간에 해낼 것이 분명하니 업무의 효율은 비약적으로 증대된다. 자연히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하던 법률가들은 일자리를 위협받을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법률가 직업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공지능이 법률가 직업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종래에는 1심부터 3심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다투던 문제들이 재판을 거치지 않고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예컨대 교통사고 과실비율에 대하여 최고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하나같이 7대3 이라고 판정을 내린다면 이것을 두고 굳이 재판을 하려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재산분할 분쟁이나, 상속재산 분쟁 등도 재판을 거치지 않고 해결되거나 1심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소송 자체가 줄어든다면 역시 법률가의 일자리는 위협받는다.

그러나 ‘더 잘한다’고 해서 법률가의 일을 전부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릴 수는 없다. 낙태죄를 폐지하는 문제나 대통령을 탄핵하는 문제를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들은 ‘결론’ 보다는 결론을 수긍할 수 있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어느 날 인공지능이 ‘대통령을 탄핵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갑자기 인공지능이 ‘오늘부터 소득세를 2배 걷겠다’고 하면 어떨까. 우리는 이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법을 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의 토론을 거쳐 만든 법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다. 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를 바꾸겠다는 정당에 투표하여 법을 바꾸게 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것이 법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지,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법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법률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와 양보를 통해 서로를 설득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에서 사라질 수 없는 절차이고, 그러한 일이야 말로 법률가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입법절차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판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판사가 재판의 결론을 결정하는 형태지만, 인공지능이 발전하게 되면 판사 개인의 판단이 과연 인공지능의 판단보다 정확할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판사의 법률지식과 양심에 의존하는 체계는 정당성을 상실하고 전면적인 배심제도 도입이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판사가 아닌 평범한 일반 국민들을 배심원으로 선정하고 변호사가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다수결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미국의 법정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배심제가 전면 도입된다면 법률가의 역할은 지금보다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어 놓더라도 법률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가들이 해오던 많은 일들이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일들이 생겨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변화는 생각보다 급격하게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변화는 언제나 모두에게 이익일 수는 없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류인규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시월의 대표변호사로 재직중이며, 대학원에서 경제법을 전공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공인받아 다양한 경제범죄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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