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관찰일기] 코로나 덕에 역사상 가장 관대했던 프랑스 대입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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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관찰일기] 코로나 덕에 역사상 가장 관대했던 프랑스 대입시험
  • 김환훈 파리 통신원
  • 승인 2020.07.2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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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입시험 바칼로레아 합격률 91.5% 육박
최종 수험 대신 고교내신 등 점수로 평가...200년 역사상 가장 높은 합격률
코로나 바이러스 겪은 학생들 위한 ‘일종의 보상’이라 밝혀
김환훈 파리 통신원
김환훈 파리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김환훈 파리 통신원] 과연 옳은 결정이었을까. “아주 ‘관대한’ 대입시험이었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올해의 사건(코로나 바이러스)을 겪은 학생들에게 이것은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 장-미셸 블랑케(Jean-Michel Blanquer)의 말이다.

지난 7월 7일 발표된 2020년 프랑스 대입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éat)의 결과는 다소 놀라웠다. 합격불합격 방식으로 평가되는 해당 시험의 합격률이 역대 최고 수치인 무려 91.5%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총 72만명의 지원자 중 66만명이 합격했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무려 13.7%나 증가한 수치다. 불합격 후 재시험에 응시할 수험생의 수를 고려했을 때, 합격률은 최대 96%에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직접 프랑스 대입시험 합격률을 발표하는 프랑스 교육부 장관 장-미셸 블랑케(Jean-Michel Blanquer).
직접 프랑스 대입시험 합격률을 발표하는 프랑스 교육부 장관 장-미셸 블랑케(Jean-Michel Blanquer).

순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결과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문제로, 프랑스 정부는 전국의 수험생들이 좁은 공간에서 약 1주일가량 치러야 하는 바칼로레아를 아예 사상 처음으로 취소했다. 최종 시험을 대신해 고교 내신 및 학업 활동을 중심으로 평균 점수를 산정한 종합 점수로 바칼로레아 합격 여부를 결정한 것이다. 이날의 기자회견은 교육부 장관이 그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였던 것.

문제는 그 합격 기준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했다는 점이다.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이어진 200년이 넘는 바칼로레아 역사상 가장 높은 합격률을 기록했을 정도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여론은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로 극히 적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에 따른 폐교조치로, 정규 교육조차 완벽히 이수하지 못하고 정식으로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지 않은 수험생들. 그들에게 합격증을 ‘보상’으로 준다는 조치를 옳은 결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을까?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중 교육 분야 역시 수많은 토론과 의견 수렴이 필요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당장 우리 한국 역시 이 상황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코로나 관련 대입 선발 전형을 수정하겠다 발표했고,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고3 학생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며 수능 난이도 하향을 건의한 상태다.

하지만 이 사안은 단순히 동일한 조건의 고3끼리의 경쟁일뿐만 아니라, 재수생과의 형평성, 나아가 선후배 학생들과의 교육격차 등과 같은 문제가 함께 얽혀있기에 간단히 풀어질 매듭이 아니다. 우리보다 4개월 앞서 바칼로레아를 취소한 프랑스 당국의 결정은 어떤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일까.

가장 ‘관대’했던 바칼로레아… 200년 역사상 가장 높은 합격률 기록

기존의 프랑스 대입시험은 이렇게 진행된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프랑스 학생들은 오직 논술과 구술 형식으로 이루어진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친다. 바로 그 유명한 바칼로레아다. 미국의 SAT나 대한민국의 수능과 같은 객관식이 아닌 오로지 글과 말로 이루어진 논술형 시험으로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독특한 시험 체계이다. 성적은 20점 만점으로 매겨진다. 그리고 일정한 기준 점수를 넘었는지에 따라 대학 입학 자격 여부가 합격불합격으로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올해는 도저히 바칼로레아를 진행할 수 없었다. 이동금지령 및 폐교조치로 학생들은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방역이 문제였다. 이 시험은 70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하루도 아닌 약 일주일가량 매일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프랑스 교육부가 고교 내신 및 학업 활동을 종합 평가하는 방안을 내놓은 이유 역시 그것이었던 것. 그리고 그 결과가 91%라는 사상 최대의 합격률로 나타난 것이다.

관대한 합격 기준 덕에 많은 수의 학생이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그러나 정식으로 바칼로레아를 보았다면 결코 합격을 장담할 수 없었을 거라는 자조 섞인 웃음을 내보이는 학생 또한 있었다고 한다.

바칼로레아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프랑스 베르사유 지역의 수험생들.
바칼로레아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프랑스 베르사유 지역의 수험생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교육 당국의 이러한 조치가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다. 바칼로레아 합격률 수치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기준이 너무 ‘관대’하지 않았냐고. 거기에 블랑케 장관이 내놓은 답변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주 ‘관대한’ 대입시험이었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올해의 사건을 겪은 학생들에게 이것은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이 조치가 학생들의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블랑케 장관은 학생들에게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과 인생을 스스로 가꾸어나가고 한 명의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마땅히 이런 기회가 주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급격히 늘어난 예비 입학생 수 때문에, 현재 약 80%의 학생만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차질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각 대학의 입학 정원을 늘릴 계획이며, 이는 아주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사안”이라고까지 밝혔다. 

그런데 사실 프랑스인이라면 그리 크게 놀랄만한 조치는 아니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1968년 68혁명의 결과 대입평준화가 도입된 나라이다. 전국의 모든 대학들은 원칙적으로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 또한 대학의 이름조차 파리 1대학, 파리 2대학 등 평등의 원칙에 따라 불려진다. 나아가 바칼로레아라 합격증만 있다면 수험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은 전국 어디든 선택할 수 있다. 만약 동일한 대학에 정원 인원을 상회하는 지원자가 몰릴 경우, 성적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선발되는 학교까지 있을 정도다. 그만큼 프랑스인들에게는 ‘교육의 평등과 형평성’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가치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만을 고려해 섣불리 판단해선 안된다. 프랑스에는 두 가지 종류의 대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준화에서 벗어난 엘리트 전문 교육기관 '그랑제콜'

프랑스의 대학 교육 기관은 이원화되어 있다. 위에서 말한 일반 대학, 그리고 '그랑제콜(Grandes Écoles)'이다. 그랑제콜은 일명 대학 위의 대학이라 불리는 엘리트 전문 교육 기관이다. 그랑제콜이라는 이름만 해도 그대로 직역하면 상급 학교(Grand School)라는 뜻이다.

18세기 혁명 당시 오로지 실력만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우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도입된 이래, 68혁명의 와중에도 대학 평준화의 그물을 벗어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랑제콜 졸업자의 수는 프랑스 전체 학생 수의 채 3%도 되지 않는 반면, 각 계 정상에서 프랑스를 움직이는 인물 대부분이 그랑제콜 출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수의 정치인, 프랑스 최고 기업들의 CEO, 과학자와 기술자, 유명한 철학자와 학자와 작가들 대다수가 그렇다.

당연히 그 설립 목적에 맞게 그랑제콜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결코 한국 못지않게 살벌(?)하다.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해선 고등학교 졸업 후 프레파(Prépa)라 불리는 2년 과정의 그랑제콜 준비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바칼로레아 성적이 높을수록 더 좋은 명문 프레파에 입학 수 있는데, 프레파 입학 후에도 여러 번의 시험과 본고사, 논술 및 면접 시험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지만 그랑제콜 학생이 될 수 있다. 그랑제콜 입학에 실패해 재수를 택하는 학생 역시 부지기수.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의 수는 절반 정도 된다고 한다. 오로지 국가를 책임지고 국가에 헌신할 엘리트를 선발하기 위해 오직 실력이라는 가치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올해. 그랑제콜에 입학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2년 또는 그 이상을 준비한 학생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을 피해갈 순 없었다. 올해는 시험 일정이 조금 미루어져 수험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시험에 임해야만 했다. 정부의 이동금지령이 1차 완화조치가 내려지자마자 곧장 시험을 치룬 학교도 있었다. 평범한 학생들, 그러니까 일반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특별한 ‘보상’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엄격한 기준이 고스란히 적용됐다.

프랑스 내에서도 그랑제콜의 학벌주의는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는 오래된 문제다. 그랑제콜 출신이 아니면 고위직에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은 물론이고, 자신의 자식을 그랑제콜에 보내기 위한 상류층 부모들의 과도한 치맛바람 역시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피해가진 못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이를 ‘부모세대 계급의 재생산’이라며 계급 세습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서 이처럼 초엘리트 양성의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 보아도 재미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강조하되, 국가를 위해 헌신할 엘리트만큼은 철저하게 혜택과 책임을 동시에 지는 방식으로 육성하고 있다. 바칼로레아를 보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시험 없이도 대학 입학 자격을 부여하지만, 그랑제콜에 입학해야할 학생들에겐 변함없는 경쟁의 원칙을 적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도,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교육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관철시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프랑스라는 나라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너무 쉽게 속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중 하나다.

● 김환훈 파리 통신원은 서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선 한국문학에 매진 중인 자유기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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