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오늘] 소련, 발트 3국 독립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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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오늘] 소련, 발트 3국 독립 인정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9.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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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 가진 리투니아 독립,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도

 

1991년 9월 6일 소련은 연방의 하나였던 리투아니아(Lithuania)의 독립을 인정했다. 동시에 라트비아(Latvia), 에스토니아(Estonia)도 같은날 소비에트 연방에서 떨어져 독립했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세나라를 발트 3국이라 부른다. 발트 3국이 같은날 세 쌍둥이처럼 독립을 얻게 된 것이다.

세 나라는 발트해 안쪽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유로 역사적으로 스웨덴, 러시아, 독일의 지배를 받는 같은 운명을 겪어왔다.

발트 3국의 근대사는 강대국들의 쟁탈 대상이었다. 18세기에는 러시아 영토였다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 세나라가 독립해 공화국이 되었고, 1934년에는 발트 3국동맹을 체결했다. 작은 나라 세 나라가 동맹을 해도 큰 나라를 이기지 못했다. 1940년에 소련에 합병되었다가 2차 대전 때 독일에 점령되었으며(1941∼1944), 다시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다.

1990년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독립 움직임이 본격화되었고, 1991년 8월의 소련 군부세력 쿠데타가 실패한 직후 소련으로부터 독립이 인정되었다. 소련에 편입된지 51년만이다.

 

▲ 발트 3국 /위키피디아

 

발트 3국 가운데 인구와 면적에서 가장 큰 나라가 리투아니아다.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 때 동유럽을 제패한 적이 있다.

리투아니아의 시초는 공국으로 출발했다. 1253년에 민다우가스(Mindaugas)가 즉위하면서 통일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는 최초의 리투아니아 왕이자 최초의 기독교 세례를 받은 왕이었다.

14세기 들어서 리투아니아 공국은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다. 1316년에 게디미나스(Gediminas; 1275경~1341) 대공이 왕으로 즉위한 뒤 1572년까지 왕조가 지속되었다. 이 왕조는 리투아니아를 동유럽 최강 국가로 만들었고, 따라서 리투아니아 민족은 유럽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게디미나스는 리투아니아 영토를 현재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까지 확장했고, 끊임없이 리투아니아를 넘보는 독일 중세십자군 기사단인 튜튼 기사단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아들 알기르다스(Algirdas) 대공의 통치기간인 14세기 중엽에 리투아니아의 영토는 동쪽으로도 확대되었다.

 

알기르다스의 열 두 아들 중 하나인 요가일라(Jogaila; 1377~1401) 대공은 계속되는 독일 튜튼 기사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폴란드 앙주 왕조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해 폴란드와 동맹관계를 수립했고, 그 결과 튜튼 기사단을 무찔러 독일의 침략을 저지했다. 동맹 조건의 하나로 리투아니아는 로마 가톨릭교를 수용하게 되었다.

요가일라는 폴란드 여왕과 결혼해 두 나라를 통치하게 되면서 브와디스와프 2세(Władysław II)라고 불렸으며, 야기에우워 왕가의 창시자가 되었다. 요가일라의 후계자인 비타우투스(Vytautus)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일부를 포함해 발트 해에서 흑해까지 영토를 확장시켜 리투아니아의 전성기를 이뤘다.

 

▲ 위키피디아

 

비타우타스의 사후 리투아니아는 명목상으로는 폴란드 왕에게 예속되어 있었지만 자치권을 가지고 정치적인 문제에서 독자적 행보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반 4세가 발트 해 진출을 목적으로 리보니아 전쟁(1558~1583)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러시아 세력이 발트 해로 밀려드는 긴박한 순간에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에게 동맹을 강요했고, 리투아니아 중소귀족들은 대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피하고자 폴란드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결국 1569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간의 루블린 합병 조약으로 두 나라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국이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두 나라가 독립을 유지한 연방국가로 보이지만 사실상 리투아니아가 폴란드에 예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주변 국가들이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상대적으로 강해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제국은 1772-1795년에 조직적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국을 해체시켜 유럽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1918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독립국으로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 1989년 8월 23일, 소련에 저항, 독립을 요구하는 인간 사슬운동. 발트 3국 인구의 25%가 참여했다.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18년 2월 16일 리투아니아의 독립이 승인되었다. 그렇게 잠시 독립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1940년부터 리투아니아는 또다시 소련, 그리고 이어서 나치독일에 점령되는 수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에 그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에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재점령하여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으로 편입시켰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기 1년 전인 1990년 3월 11일에 리투아니아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리투아니를 비롯해 발트 3국의 독립을 향한 의지는 ‘노래하는 혁명’으로 불리는 ‘발트의 길’(Baltic Way)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시작되어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이르는 620㎞에 달하는 인간사슬은 발트 3국의 소련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

 

이문열의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2011년작)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김혜련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문열은 음악감동 박칼린의 인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은 박칼린의 일생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지만, 리투니아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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