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4) 서울시청 인근 호텔 타운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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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4) 서울시청 인근 호텔 타운의 유래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5.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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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서울시청 일대는 현대적 풍경 속에 과거의 흔적을 품고 있습니다. 덕수궁이 대로변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면 원구단 터는 건물들 사이에 숨겨져 있습니다. 

원구단은 1897년(광무 원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에 오른 즉위식이 열린 곳입니다. 원래는 선조 임금이 의안군에게 선물한 남별궁 터였습니다. 남별궁은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 우키다의 진지로 쓰였었는데 나중에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사령부로 쓰기도 했습니다. 왜란 후에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영빈관으로 쓰였고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원구단과 그 일대는 조선총독부의 국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4년 원구단이 헐린 자리에 지하 1층과 지상 4층의 근대적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황궁우’와 석조 대문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황궁우는 삼층의 팔각 건물로 하늘신 위패를 보관하던 곳이었습니다.

총독부의 철도국이 운영한 이 호텔의 이름은 ‘조선경성철도호텔’이었습니다. ‘철도호텔’ 혹은 ‘조선호텔’로 불린 이 호텔은 일본에서 오는 귀빈이나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오는 서양인들만 묶을 수 있는 고급호텔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사진엽서에 실린 조선호텔 전경. 호텔 오른쪽에 황궁우가 보인다.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고급호텔의 대명사 조선호텔

광복 후 조선호텔은 미군 사령관인 하지 중장 등 고위 장성들의 숙소로 이용되었습니다. 미군 군정이 끝난 후에는 한국 정부의 교통부가 운영권을 이어받았고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 철도국이 운영했으니 그 행정 철학을 승계한 교통부가 운영하게 된 거죠. 

한국전쟁 중 조선호텔은 전선에서 휴가 나온 미군들의 휴양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종전 후에는 미8군 장교 숙소로 이용되었고요. 그러던 1961년 11월 한국 정부의 교통부가 조선호텔 운영권을 반환받았습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남한은 관광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은 잠시 멈췄지만, 긴장이 계속되던 시기였으니까요. 전후 복구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먹고 사는 시설 위주로 재건이 이뤄져 관광객을 위한 시설은 열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1962년 ‘한국관광공사’를 설립해 고급호텔 설립과 운영을 맡겼습니다. 이때 설립된 게 워커힐호텔입니다. 그리고 1963년 8월부터 한국관광공사는 조선호텔을 운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설이 낡아 외국 기업과 합작해 새 호텔을 짓기로 했습니다. 외국자본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선진 호텔 경영 기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선택된 기업이 미국의 아메리칸 항공사였습니다. 새로운 조선호텔은 1967년 10월 공사에 들어가 1970년 3월에 개관했습니다. 지하 2층에서 지상 18층에 470개 객실이 있는 고급호텔이었습니다.

이후 조선호텔의 주인은 바뀌게 됩니다. 1979년에 아메리칸 항공사는 조선호텔 경영권을 미국 웨스턴호텔 측에 양도했습니다. 1983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갖고 있던 호텔 부동산과 주식 지분 일체가 공매 입찰의 형식으로 삼성그룹에 양도되었습니다. 

공매 형식이었지만 내정이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매각대금을 13년 동안 분할 상환하도록 해 의혹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지금은 범삼성가로 분류되는 신세계백화점 그룹에서 조선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황궁우와 조선호텔. 조선호텔은 원구단을 헐고 들어섰다. 사진=강대호

반도호텔에서 롯데호텔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원구단 터의 황궁우 경내로 진입하는 순간 어두워진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이 건물들은 호텔입니다. 황궁우 남쪽에 들어선 게 조선호텔이고 북쪽에 들어선 게 프레지던트호텔과 롯데호텔입니다. 

롯데호텔의 유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 사업가가 경험한 문전박대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이 사람은 ‘노구치 시다가후’로 세계적 규모의 화학회사인 일본질소비료의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1927년 함경남도 흥남에 흥남질소비료공장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노구치는 1930년대 초반 흥남에서 일하던 차림으로 서울에 왔는데 조선호텔에 묵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 행색이라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합니다. 조선호텔은 귀빈을 위한 고급호텔이었으니까요.

이후 ‘노구치 시다가후’는 조선호텔 인근의 땅을 사들여 8층짜리 건물을 지었습니다. 조선호텔보다 높은 건물이었는데 5층까지는 사무실, 6층부터 8층까지는 호텔이었습니다. 호텔 개업은 1938년이었고 이름은 ‘반도호텔’이었습니다. 

을지로 대로변의 반도호텔. 지금의 롯데호텔 본관 자리로 일제강점기의 사진이다.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광복 후 반도호텔은 미군사령부에서 사무실과 장교 숙소로 사용했습니다. 반도호텔은 이른바 호텔 정치의 산실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유당 말기에 이기붕 국회의장 집무실이 있었고, 제2공화국 시절에는 장면 총리의 집무실이 있었습니다. 

조선호텔이 그랬듯 1963년부터 반도호텔의 운영권은 한국관광공사가 맡게 됩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채산성이 떨어지자 민간 기업에 운영권을 넘기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간택된 곳이 롯데였습니다.

신격호 회장이 1948년 일본에서 창업한 롯데는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일본 제과업계를 대표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주력 품목은 껌이었고요. 그러던 1967년 4월 신격호 회장은 한국에 롯데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해태와 함께 롯데는 한국 제과업을 대표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 10월에 이른바 ‘롯데 껌’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관계 당국에서 불량식품 공장을 단속했는데 롯데 껌 공장이 여기에 해당한 거죠. 롯데를 향한 여론이 나빠진 가운데 정부에서 제시한 타개책이 고급호텔 건축과 운영이었습니다. 반도호텔을 헐고 그 인근 땅들을 포함해서 새 호텔을 지으라는 거였지요.

당시 서울시 고위공무원이었던 고 손정목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가 남긴 기록을 보면 최고 권력자의 권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정부의 적극 지원 약속은 물론이었고요. 이 자료를 인용한 한국의 호텔 역사 관련 연구 문헌이 꽤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 사례 중 하나가 법률 신설이었습니다. 1962년에 제정되고 1971년에 개정된 <도시계획법>에 따르면 을지로 일대는 재개발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1972년 12월에 <특정지구 개발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이라는 법률로 그 일대를 개발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특혜법률이었던 거죠.

그렇게 반도호텔 일대는 ‘반도특정가구정비지구’가 되었고 롯데호텔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호텔 건설 과정에서 정부는 법률 지원뿐 아니라 외자 도입에 도움을 주는 등 롯데 측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도호텔 공매 과정의 편의 제공은 물론 그 인근 땅 매입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대표적인 부지가 국립도서관 자리였습니다.

당시 원구단 북쪽에 국립도서관이 있었는데 원래 1923년에 총독부도서관으로 지어진 곳이었습니다. 1974년에 땅을 매각한 국립도서관은 당시 남산에 있던 어린이회관으로 이전했고, 어린이회관은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능동으로 이전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던 일들이 정부의 주도 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을지로 대로변의 롯데호텔. 사진=강대호

롯데호텔은 1975년 봄 공사에 들어갔고 1979년 3월에 개관했습니다. 이때 롯데백화점이 입주한 별관도 함께 지었는데 1979년 12월에 개관했습니다.

이 시절 서울 도심 호텔 허가 자체가 특혜였습니다. 1970년대 정부는 서울 강북 도심의 팽창을 막기 위해 호텔 등 유흥시설 신설을 금지했으니까요. 그래서 강남 개발 당시 신사동 일대에 유흥시설과 테헤란로 일대에 숙박업소가 몰린 거였습니다. 하지만 롯데호텔은 도심에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정책은 도심에 백화점 신설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도 롯데백화점이 들어설 수 있었던 건 백화점이 아닌 ‘쇼핑센터’로 허가받았기 때문입니다. 손정목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어느 공무원이 쇼핑센터라는 우회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합니다. 아마도 금지 항목에 쇼핑센터는 없었나 봅니다. 

어쩌면 롯데백화점을 롯데쇼핑센터로 부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을지로 일대와 명동 입구는 롯데타운이 되었습니다. 이 시절 도심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와 기업이 합을 맞추는 모습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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