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2)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당동 일대
상태바
[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2)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당동 일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5.12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신당동(新堂洞)의 신당은 원래 신당(神堂)을 의미했습니다. 광희문(光熙門) 바깥에 신당이 많았고 무당도 많이 살아서 유래한 지명이었는데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은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광희문이 시신을 내보내는 시구문인 영향이 컸던 걸로 보입니다.

신당동 연구 문헌을 종합하면, 조선시대 후기에 광희문과 가까운 신당동 구릉지대에 묘지가 많았습니다. 과거 사진에도 한양도성 성곽 주변에 들어선 묘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조선시대에 금표를 설치하고 묘지를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영조 시절만 해도 금표 구역 안의 묘지들을 금표 바깥 지역으로 이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정조 시절에는 갑자기 많은 무덤이 늘어나 오히려 진혼제를 치러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양성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엄격히 금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신당동 일대에 묘지가 늘어나지 않았을까요.

일본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던 신당동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들도 신당동에 공동묘지와 화장장을 설치했습니다. 관련 기록을 참고하면, 1901년 일본 영사가 한성부와 교섭해 광희문 밖 솔밭 70여 평을 화장장과 묘지 부지로 확보했습니다. 1902년 2월에는 화장장이 완공되고 공동묘지 주변 도로도 정비되었습니다.

1922년에 제작된 서울 지도인 ‘경성도’. 광희문 동쪽으로 이곳저곳에 공동묘지들이 표시되어 있다. 푸른색으로 표시된 '내지인 공동묘지‘ 즉 일본인들의 묘역에는 화장장도 있었다.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1922년에 제작한 <경성도>라는 지도에 신당동 일대의 공동묘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에는 광희문 인근에 조성된 ‘조선인 공동묘지’와 바로 그 옆 한양도성 성곽 따라 조성된 ‘내지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의 위치가 잘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내지인은 일본인을 의미합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신당동과 장충동은 성곽으로 단절된 지역이었습니다. 도성 안쪽 지역과 바깥 지역으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 생활 환경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단절을 극복하고 이웃한 동네가 된 연유에는 한양도성 훼철이 있습니다. 장충동 일대가 주택지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성곽을 헐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장충동 쪽의 장충단로와 신당동 쪽의 청구로를 동서로 잇는 장충동 주택가의 이면 도로들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에 뚫렸습니다. 대표적인 도로가 장충단로8길과 장충단로10길입니다. 그러니까 이들 도로는 성곽이 헐린 자리를 지나는 겁니다.

이 시기 신당동 일대의 모습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장충동처럼 새로운 주택지가 들어서게 되었으니까요. 장충동에 소화원 주택지가 있었다면 성곽 바로 옆 신당동에는 동소화원 주택지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희문에서 남산 방향의 한양도성 주변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1928년 말경 조선인 공동묘지는 수철리(금호동)나 미아리로, 일본인 화장터와 묘지는 홍제동으로 옮겨 갔습니다.

신당동에서 분동한 동화동의 아파트단지. 전봇대와 전선 등 과거 재개발 이전 동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강대호

신당동에 들어선 문화촌

공동묘지가 파묘된 자리는 물론 신당동 일대의 많은 지역이 새로운 주택지로 개발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들이라 ‘신당리 문화촌’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삼천리>라는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발행된 잡지에 신당동의 문화촌을 묘사한 기사들이 몇 있습니다. 여기에는 ‘동화에 나오는 신비한 고성’이라거나 ‘불란서의 천사원’과 같은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촌이 들어서기까지는 조선인 토막민들의 고통과 희생이 따라야 했습니다. 일본인 개발업자들은 신당동의 공동묘지와 구릉지를 주택지로 개발했는데 이 일대는 빈민들의 터전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개발 예정지에 있던 토막집들을 철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의 갈등과 충돌을 전한 당시 신문 기사를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철거민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주 먼 곳으로 갈 형편은 아니었을 겁니다. 도심에서 막일 등을 했을 테니까요. 연구 문헌 등을 참고하면, 철거민들은 신당동 인근의 미개발된 구릉지 등을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오늘날 신당동 일대에서 볼 수 있는 구획이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골목들이 그때의 흔적일 수도 있습니다.

신당동 개미 골목. 개미처럼 부지런한 이들이 산다고 붙여진 이름. 지자체에서는 명인 골목으로 이름 짓기도 했다. 각종 기술을 가진 명인과 장인들의 업장이 있었기 때문. 현재는 서민 주거 공간과 봉제 공장 등이 함께 있는 골목이다. 사진=강대호

광희문 밖 토막민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흥미로운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당동 빈민촌의 유래일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에 걸쳐 청계천 준설 공사를 했는데 특히 영조 시절의 준천 사업이 대규모였습니다. 이때의 준천으로 청계천 일대가 깨끗하게 정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대에 살던 빈민들은 집이 헐려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는데 이들이 향한 곳이 바로 광희문 바깥, 지금의 신당동 일대였다는 겁니다.

당시 광희문 바깥에 빈민 구휼 시설인 동활인서가 있는 데다 낮은 산 곳곳에 무덤들이 흩어져 있어 빈민들이 정착하기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원 기관도 있고 감독의 눈길을 피해 토막을 짓기 편해서 신당리 일대에 빈민들이 모여들었다는 거죠.

이런 자료들을 연결해서 보다 보니 도시 빈민들의 행동 양상이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쫓겨나도 멀리 가지 못하고 가까운 데로 향하는 모습에서요. 현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서울 도심의 판자촌을 철거해도 그 옆에 또다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시절 철거민들을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광주로 강제 이주시킨 게 아닐까요. 높으신 분들의 시야에서 아예 사라지게 하려고요.

신당동 떡볶이 거리. 사진=강대호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신당동

신당동은 과거 황학동은 물론 흥인동, 무학동, 청구동, 동화동, 약수동 등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광복 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갈라지거나 합쳐지면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지역의 정체성 중에는 신당동의 역사를 공유하는 게 많습니다. 

오늘날 신당동 일대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떡볶이 거리나 이른바 '힙당동 명소'가 특히 유명합니다. 이렇듯 신당동 일대는 오늘을 사는 이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당동은 서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옛 주거 공간들을 재개발하고 들어서는 아파트단지가 새로운 신당동의 풍경을 만들고 있지만요.

신당동의 박정희 가옥. 1930년대 문화주택의 틀이 유지되고 있는 건축물이다. 사진=강대호

한편, 일제강점기 문화촌으로 개발된 신당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건축했던 많은 주택이 헐리고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섰지만, 이 집만큼은 보존되었습니다. 1930년대에 건축한 이른바 ‘박정희 가옥’입니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문화주택’의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당동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장간 거리나 개미 골목은 신당동의 옛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 후 광희문 앞 신당동 골목에 들어선 시구문 시장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서 들은 보물 같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골목 사람들 이야기’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지난 몇 주 서울 중구의 동쪽 지역을 탐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중구의 중심이자 서울 도심의 중심이기도 한 서울시청 일대를 탐험해 보겠습니다.

신당동 대장간 거리. 한양공고에서 퇴계로 건너편. 쌍림동 인근의 대장고개와 신당동 인근의 풀무재에는 한때 160개가 넘는 대장간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 근방에 군사시설이 많아 무기 제조나 수리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에 보이는 세 곳만 남아 있다. 사진=강대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