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G7 왕따 당하며 철강 전쟁 벌이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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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G7 왕따 당하며 철강 전쟁 벌이는 까닭은?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6.10 20: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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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산업이 국가안보 산업이라는 미 재계 인식이 가져온 충돌

 

캐나다 퀘백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은 미국과 나머지 G6 국가와의 대결장이었다.

정상들은 보호무역주의와 관세장벽을 배격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글을 트윗에 올려 분열양상을 드러냈다.

앞서 2일 열린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G6 재무장관들이 성명을 내고 미국의 철강과나세 부과에 대한 우려와 실망을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에게 전달했다.

 

▲ 6월 8일 G7 회의 모습 /위키피디아

 

그러면 트럼프 행정부가 서방의 분열과 왕따를 각오하며 철강과 알루미늄 부문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 경제에서 철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철강 등 금속산업의 수입규제를 단행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국가안보다. 철강은 탱크, 대포, 소총, 전함을 만드는 원재료이고, 알루미늄은 항공기의 소재다.

지금처럼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을 허용할 경우 미국의 금속산업이 붕괴되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은 무기를 만들지 못한다는 게 이유다. 실제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전제로 한 무역전쟁이다. 물론 유럽이나 일본은 미국의 이같은 주장에 반발한다. 엉뚱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을 보호하는 명분으로 제기하기 앞서 미국 재계에서 비슷한 주장이 몇해전부터 나왔다. 2016년 봄, 미국 제조업 동맹(Alliance for American Manufacturing)이란 이익 단체가 ‘철강수입 증가가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제목의 리포트를 냈다. 이에 미 상무부가 국가안보를 거론했고, 미국 펜타곤이 동조하는 양상이다.

그러면 철강산업이 국가안보에 중요한가. 그렇다. 역사가 증명한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의 철강산업은 세계 1위였지만, 그후 일본에 넘어가고 지금은 중국에 1위자리를 내주고 있다. 중국은 세계철강생산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적어도 미국이 전시에 군수물자를 생산할 정도의 철강산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통상전쟁의 목적이라고 할수 있다.

 

▲ 자료: 세계철강협회

 

그러면 철강을 둘러싼 역사를 살펴보자.

근세 이후 철강은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철(鐵)이 곧 정치요, 국가였다. 철강 사업자는 정치인들을 움직였고, 정치인들은 철강회사에 압력을 넣었다. 철을 많이 생산한 나라가 강대국이었으며, 철 광산과 석탄 산지를 뺏기 위한 공업국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17세기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유럽 대륙에서 지진아였다. 앞서 산업혁명을 치른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공업국으로 변신해 제국주의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을 때 러시아는 봉건 농업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1697년 왕위를 계승한 표트르 대제는 군사력 확대에 금속공업이 필수적이라고 깨달았지만, 당시 러시아는 스웨덴에서 철과 구리를 수입하고 있었다.

표트르 대제의 강병주의는 스웨덴을 자극했고, 이에 스웨덴은 러시아 서쪽 국경을 침입함과 동시에 구리와 철의 공급을 끊었다. 러시아 황제는 니키타 데미도르프라는 제철업자를 궁중에 불러 낮은 가격에 철을 공급하되, 그 대가로 우랄 산맥 일대의 철 생산 독점권을 갖도록 함으로써 철강 생산을 독려했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도 철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공업화의 물결이 넘치던 19세기 독일엔 고로가 산업의 심장이었다. 고로에서 흘러나오는 쇳물은 독일 산업화의 피였다. 그 무렵 프로이센 왕가는 독일과 국경을 접한 프랑스 알자스, 로렌 지방에 질 좋은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1870년 에스파냐의 왕위 계승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파리를 점령하고, 독일 황제는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황제 취임과 함께 독일제국 건국을 선포한다. 당시 패전국 프랑스의 배상 조건은 석탄 산지 알자스, 로렌을 독일에게 양도하는 것이었다.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영토 점령에 반대했지만, 당시 철강업자들은 알자스, 로렌의 합병을 주장했다. 황제는 재상보다는 철강업자의 말을 들었다.

19세기 독일에는 알프레드 크루프라는 인물이 에센 시에 제철소를 건설했다. 주물공의 아들로 태어나 14세에 철강회사 책임자가 된 그는 군국주의를 추수하기 위해 대포 생산과 철도 건설에 온 힘을 쏟았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곳은 전쟁터였다. 독일군이 일단 프랑스를 침략하자, 장군들은 곧 크루프가 만든 대포가 신뢰할만한 장비라는데 공감했다. 그의 대포는 자만에 빠져있던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군대를 단숨에 격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 독일군은 대포의 위력을 깨달았고, 따라서 좋은 석탄과 철광산이 있는 알자스, 로렌을 점령했던 것이다.

독일은 철강업자를 등에 업고 군사 대국의 길을 걸었다. 그 종착역은 세계대전이었다. 1914년 합스부르크 왕의 계승자인 프란츠 프레디난트 대공의 암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장기전을 펼치기에 충분한 철강 및 석탄 산지가 부족했다. 두 나라는 속전속결을 원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의 저항이 완강하고, 미국까지 참전하면서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독일은 금속이 부족한 결점을 메우기 위해 점령지 세르비아 광산을 약탈하고, 전쟁터에서 긁어모은 탄피로 전쟁무기를 만들며 장기전에 응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그들이 패배한 것은 철강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식량 부족 때문이었으며, 거기에다 민족주의 물결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기와 그 재료인 철만으로 세계를 지배할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철강산업의 중심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철강생산은 전쟁 전후에 4배나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철강업자가 전쟁이 끝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바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광산업에 종사하면서 야금에 관한 저술을 번역했고,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그는 후에 상무장관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곧이어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미국 역사상 불명예 대통령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소련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대적인 철강 증산에 돌입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후 이오시프 스탈린은 일국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5개년 계획을 세워 철강 생산량을 300만톤에서 1,600만 톤으로 늘리는 목표를 세웠다. 1931년 스탈린은 공장경영자 회의 연설에서 “속도를 늦추게 되면 뒤떨어지고, 뒤떨어진 사람은 패배할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우리는 패배하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기술자를 총동원해 대규모 철강공장을 짓고 반혁명 분자를 강제로 이주시켜 철강산업에 종사하게 했다. 스탈린의 공업화 전략은 철강산업을 주축으로 했다.

이 조치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탄생시켰다. 한 사람은 돈바스 지역에서 석탄을 채굴했던 스타하노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솔제니친이었다.

스타하노프는 1935년 1인 평균 생산량의 14배에 해당하는 100톤의 석탄을 채굴하는 경이적인 생산 기록을 세웠고, 이에 스탈린은 그의 이름을 붙인 ‘스타하노프 운동’을 전개하면서 스타하노프야말로 소비에트형 인간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에 비해 노벨상 수상자인 솔제니친은 제2차 세계대전후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8년간 감옥과 강제노동 수용소를 전전한후 국외로 추방됐다. 그가 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철강 원자재인 석탄 광산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한 수인이 겪는 일상생활을 묘사해 서구인들에게 인권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두 사람은 소련에 각각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스타하노프가 모델이 된 운동은 소련을 철강대국으로 이끌었고, 이에 힘입어 소련은 모스크바까지 압박해온 나치 군대를 물리칠수 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솔제니친은 공산 치하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의식을 불러일으켜 결국 소련의 해체를 가져온 밀알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소련과 그 동맹국이 ‘철의 장막’을 치는 냉전의 시작이었다. 100년 이상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유럽 국가들은 전쟁의 상징인 철강 생산을 억제하기 위해 1952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를 결성했다. 전후 철강의 과잉생산을 해소하고, 전쟁무기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외교관인 장 모네가 제안한 이 협약은 오늘날 유럽공동체(EU)와 유럽단일통화인 유로의 모태가 되었다.

패전국 일본에서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철강회사를 전쟁의 전범으로 여겨 일본 제일의 철강회사 ‘일본제철’을 ‘야와타’와 ‘후지’로 분할했다. 철강회사를 눌러 군사 대국화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핵무기의 원료인 우랴늄, 항공기의 원료인 알루미늄이 과거 대포의 원료인 철강재를 대체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승리로 이끌었던 유에스 스틸은 전쟁 직후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부상했지만, 1970년 세계 14위로 전락했다. 철강산업이 더 이상 전쟁을 위한 산업이 아니며, 대형 벌크선이 개발되면서 양질의 대규모 석탄 및 철광산지가 없는 나라에서도 철강산업이 발전할 토대가 형성됐고, 강대국들도 더 이상 철강산업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 자료: 온라인 통계회사 statista

 

세계철강업계에 따르면 2016년 세계 철강생산량 가운데 미국의 비중은 4.8%다. 미국 상무부는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 철강산업이 전멸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최소한의 철강산업을 유지할 만큼의 수입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트럼프에게 건의했다. 트럼프는 여기서 더 나갔다.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은 중부 러스트벨트를 위해 상무부가 제시한 것보다 더 높은 관세율을 매기겠다고 나왔다.

미국이 벌이는 철강 무역전쟁은 세계 철강산업을 장악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량을 요구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적절한 타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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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2018-06-11 00:42:57
잘보고갑니다

김동현 2018-06-10 21:25:21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