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9) 한양도성 성곽을 헐고 들어선 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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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9) 한양도성 성곽을 헐고 들어선 동대문운동장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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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동대문에서 장충동 방향으로 가다가, 혹은 그 반대 방향에서 오다 보면 주변 분위기와 현저히 다른 건축물이 들어선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알루미늄으로 지은 외계 비행체 같은 이 건축물은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입니다.

이 건축물이 들어선 자리에는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합운동장이 있었습니다. 50대 이후 세대에게는 ‘서울운동장’으로 그 아래 세대에게는 ‘동대문운동장’으로 알려진 곳이었지요. 아마도 이 자리가 운동장이었던 걸 모르는 젊은 세대도 있겠지만요. 

그런 동대문운동장이 처음 건립되었을 때는 ‘경성운동장’으로 불렸는데 운동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조선시대의 군사시설과 한양도성 성곽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일본 동궁의 결혼을 기념해 건립한 경성운동장

지금의 DDP와 그 인근에는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훈련원, 그리고 하도감과 염초청이라는 군사 관련 시설이 있었습니다.

훈련원은 병사의 무과 시험, 무예 연습, 병서의 강습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을지로5가와 6가 일대를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도감은 한양을 방위하던 훈련도감의 분영으로 지금의 을지로7가 동대문운동장 터에, 염초청의 화약을 제조하던 시설도 동대문운동장의 야구장 터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을지로5가에서 7가에 걸쳐 넓게 퍼져있었던 조선시대의 군사시설은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해체되었습니다. 이 일대는 1900년대 초반에 ‘훈련원공원’이 되었고 운동 경기 등이 열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들에서 훈련원 광장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이 일대가 평탄한 부지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이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에 훈련원과 하도감 등 군사시설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동대문운동장을 헐자 조선시대 군사시설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사진=강대호

삼일운동 후 조선에 유화 정책이 필요했던 일제는 1920년대 초부터 훈련원공원 자리에 종합운동장 건립을 꾀했습니다. 그러던 1924년, 당시 동궁이었던, 즉 1926년에 국왕에 오르는 히로히토의 결혼이 발표되자 경성부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운동장을 건설했습니다.

훈련원공원 일대는 지면이 평탄해 운동장 조성이 쉬웠고 한양도성이 지나는 자리는 약간 높은 언덕이라 자연 지형을 살려 관중석을 만들기 좋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의 군사시설과 한양도성 성곽이 헐렸습니다. 

그렇게 총면적 2만2700평에 2만5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운동장이 건설되었습니다. 이때 헐린 성곽의 돌 등은 일본인들의 주거 지역을 건설하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관련 자료를 종합하면, 1925년 10월 15일에 개장한 이 운동장은 애초에 '동궁전하어성혼기념훈련원공원운동장'으로 명명되었었습니다. 즉 동궁의 결혼을 축하해서 만든 운동장이라는 거죠. 그러다 ‘경성운동장’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이 헐린 자리에 한양도성 성곽의 흔적이 드러났다. 동대문인 흥인지문과 남소문인 광희문을 연결하는 구간이었다. 사진=강대호

식민 지배의 현장 혹은 민족의식의 현장

경성운동장이 개장된 1925년 10월 15일은 남산의 조선신궁에 신상을 안치하는 ‘조선신궁 진좌제’가 열린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경성운동장에서는 ‘제1회 조선신궁경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조선인체육협회’에서 주최했습니다. 이 대회는 해를 거듭하며 열렸는데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들은 일본에서 열리는 메이지신궁경기대회에 파견되었습니다.

조선인체육협회는 1919년 2월 일본인 정재계 고위층이 주축이 되어 조직되었습니다. 협회 이름에 ‘조선인’이 들어갔지만, 일본인이 주축이었던 거죠. 유화 정책의 일환이기도, 식민 지배의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이 협회에 대응해 1920년 조선인들을 주축으로 ‘조선체육회’가 발족했습니다. 또한 ‘민족의 발전은 건장한 신체로부터 나온다’는 표어 아래 육상, 야구, 축구, 정구, 수영대회 등 여러 종목의 운동 경기를 개최했습니다. 오늘날 열리는 ‘전국체육대회’가 이 대회를 계승한 겁니다. 많은 관중이 경성운동장에 모여들면서 민족의식이 발화되는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일제는 이를 경계했습니다. 1938년에 조선체육회는 해체되면서 모든 체육 경기가 일제의 감시 아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전쟁이 한창이었던 1942년 이후로는 모든 운동 경기가 금지되었습니다. 

이 시기 경성운동장에서는 조선인들에 대한 징병 시행을 찬양하는 ‘징병제 실시 감사결의대회’ 같은 관제 행사와 군사훈련만 진행되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기념관’의 조형물. 과거 축구장과 야구장이 있었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강대호

서울운동장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1945년 해방이 되자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운동장 역할에 걸맞게 각종 체육행사를 소화했지만 많은 정치 행사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운동장은 이승만 시절부터 유신 시절까지 수많은 ‘반공 궐기대회’가 열렸던 단골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서울운동장은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가 시작된 곳이었습니다. 1983년에 프로야구 개막 경기가 열린 곳이 서울운동장 야구장이었고,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1985년에 서울운동장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또 바뀌게 됩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종합운동장의 지위를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에 내어주었습니다. 

그런 동대문운동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시설 노후화에 대한 지적이 많아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2003년 주 경기장은 운동장의 역할을 다하고 폐쇄됐습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혹은 노점상들의 풍물시장으로 이용되다가 결국, 2007년 12월 동대문운동장은 철거되었습니다.

한양도성의 수문이었던 ‘이간수문’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이간수문은 남산자락에서 흘러오는 ‘남소문동천’을 청계천으로 내보내던 수문이었다. 멀리 옛 동대문운동장의 조명탑이 보인다. 사진=강대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그리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운동장 철거 과정에서 땅 밑에 잠들어 있던 조선시대 유물과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80년 넘게 운동장 아래에 묻혀있던 ‘이간수문(二間水門)’도 이때 햇빛을 봤습니다. 남산자락의 ‘남소문동천(南小門洞川)’에서 내려온 물을 청계천으로 흘려보내던 수문, 즉 배수구였습니다. 

현재 이간수문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목책을 끼워 넣었던 돌구멍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장 건설 과정에서 헐린 한양도성 일부도 복구되어 있습니다. 복구된 성벽이 향하는 방향을 보면 원래는 흥인지문과 광희문을 연결하던 성곽이 지나던 곳이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운동장 아래에 묻혀있던 옛 군사시설의 흔적도 발굴되었습니다. 이러한 옛 시절의 흔적과 복원된 시설 중심으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들어섰습니다. 발굴된 유물을 전시한 ‘동대문기념관’도 함께 있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을 헐면서 조명탑 2개를 흔적으로 남겼다. 사진=강대호

동대문운동장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두 개의 조명탑과 ‘동대문운동장기념관’으로 남았습니다. 기념관에는 운동장과 관련한 각종 기록과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맑은 날 옛 동대문운동장 앞 도로를 지나노라면 눈이 부십니다. DDP, 즉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금속 외피가 화창한 햇빛을 더욱 강렬하게 반사하고 있으니까요. 

DDP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과거 임기 때 ‘디자인 서울’을 모토로 계획한 전시장과 쇼핑몰이 들어선 건축물입니다.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는데 설명자료에 의하면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보니 제 눈에는 ‘비정형’이라기 보다는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추억의 장소인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진 아쉬움과 역사의 흔적을 발굴했다는 반가움이 섞인 양가적 감상 때문일까요. 제 눈에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괴이한 형상으로만 보입니다. 물론 트렌디한 건축물로 여기시는 분들도 많겠지만요.

다음 글에서는 동대문운동장 일대에 조성되었던 과거와 현재의 상권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조형물은 김영원 조각가의 ‘길’.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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