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스탠바이'를 거부한 웬디의 이야기..영화 ”스탠바이, 웬디” 리뷰
상태바
[영화 리뷰] '스탠바이'를 거부한 웬디의 이야기..영화 ”스탠바이, 웬디” 리뷰
  • 김이나 에디터
  • 승인 2018.05.30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물 넷 다코타 패닝의 완벽한 연기가 돋보이는 성장영화

그대로 있어라.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우린 이 말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잔인한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를 지난 4년간 지독하게 깨달아 왔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 (Please stand by)" 에서 주인공 웬디는 '스탠바이' 를 거부하고 건너선 안되는 길을 건넌다. 영화는 그렇게 세상 속으로 뛰어든 자폐아 웬디의 이야기다.

 

▲ 스탠바이,웬디


영화를 고를 때 우리가 고려하는 것은 주연배우, 감독, 시나리오 아니면 지금 볼만한 영화 (킬링타임용) 아니면 이런 저런 리뷰다. SNS 혹은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추천해 주는 영화들에 끌릴 때도 있고 그다지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안 보면 대화에 끼지 못할 것 같아서 보는 영화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사회를 통해서 영화를 볼 때는 사전 정보가 다소 부족하다.

감독, 배우, 상영시간(?) 등등의 기초 정보는 입수한다 해도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은 입수하기가 어렵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스키니진을 한 벌 사려고 하는데 상품에 대한 리뷰가 하나도 없어서 심하게 망설이는 심정과 견줄만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카피 한 줄만 기억하고 시사회장으로 향했다.

“주연 다코타 패닝”. "우주전쟁"의 꼬마 아가씨. 이젠 스물 넷의 미스 패닝. 나는 “우주전쟁” 이후 그녀를 두번째 만났다.

 

▲ 그룹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웬디

 

 

웬디의 소통은 수첩, 반려견 피트, 아이팟, 스타트렉

 

소통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소통이 잘되면 만사 형통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능력을 인정받는다. 물론 소통의 목적은 다르고 소통의 주체도 다르며 소통의 방식도 다르다.

웬디의 소통은 수첩, 피트, 아이팟, 스타트렉이다. 수첩에 기록된대로 행동하고, 피트와 대화하며 아이팟으로 세상을 만나고 스타트렉으로 꿈을 꾼다.

'스스로를 닫은 채 (自閉)' 살아간다고 진단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그룹 홈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부모 혹은 가족과 떨어져 함께 거주하는 형태)에서 계획된 일과에 따라 살아가도록 훈련(?)을 받으며 시나몬빵을 만드는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룹홈을 벗어나 언니 오드리, 조카 루비와 살고 싶어 한다. 그녀를 감당할 만한 여유가 없는 언니의 상황을 알기에 그녀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 즉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주관하는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하여 상금을 받기 위해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한다.

어느덧 완성은 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우편 응모는 마감 시한을 넘기고 직접 LA로 향하는 지상 최대의 임무를 시작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그녀에겐 수첩, 반려견 피트, 아이팟 그리고 스타트렉 스크립트가 있다. 더 이상 스탠바이 할 수가 없다.

스타트렉의 커크와 스팍 (특히 스팍은 지구인과 외계인의 피가 흐르는 인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웬디를 떠올리게 한다)이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호를 타고 미지의 행성을 찾아가듯, 법과 제도에 맞게 살아가도록 길들어진 사람들에 비해 다소 부족한 점이 보이는 웬디는 우주에서 역경을 헤쳐나가는 스팍처럼 하이웨이를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 반려견 피트와 웬디

 

간절히 원하면 과연 온 우주가 도와주는 걸까

 

영화 "데드풀 2"에서 엑스맨 수련생으로 지원한 도미노에게 어떤 능력이 있느냐고 묻자 자신의 능력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 속 도미노가 곤경에 처할때마다 그녀에게 행운이 따른다.

커크 선장과 스팍이 웬디를 도와주는 걸까.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심지어 중간에 돈과 아이팟을 강탈 당하면서도 웬디는 선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LA에 도착한다. 심지어 웬디처럼 스타트렉 덕후인 '트레키' (스타 트렉의 팬을 지칭) 경찰을 만나게 되고 클링온어(語)로 소통하며 언니 오드리와 그녀의 자립을 도와주던 그룹홈의 스코티 부인과 재회한다.

온 우주가 도와주는 장편 서사시인가. 패닝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수 없다는 순정만화인가. 하지만 이러한 가벼운 터치는, 장애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거나, 영화가 끝난 후 자폐아를 자녀로 둔 부모를 떠올리며 잠시 숙연해지거나 하는 것을 감독이 원치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고 완전무결한 엔딩이라고 보긴 어렵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은 웬디의 여정은 마침표를 찍은게 아니라 오히려 이제 시작인 것 처럼 보인다.

언니의 집으로 돌아와 피아노를 치는 그녀, 조카 루비를 안고 있는 웬디. 이제 그룹홈이 아닌 나의 집에서 소통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반지의 제왕 덕후였던 한 소녀의 실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다

 

시나리오를 쓴 마이클 골람코는  <반지의 제왕> 덕후였던 한 소녀가 팬픽을 써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소녀를 주인공으로 희곡을 완성, 무대에 올리게 된다. LA에서 초연 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스탠바이, 웬디>의 프로듀서인 다니엘 듀비엑키와 라라 알라메딘은 연극을 본 후 곧바로 제작을 결심하게 된다. 

좋아하는 만큼 잘 할 수 있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는 2001년 영화 ‘아이 엠 샘’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빠를 돌보는 소녀를 연기했던 다코타 패닝에 의해 스크린에 재현되었고 패닝은 자폐를 앓는 소녀의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시즌제도 아니고 끊임없이 속편으로 이어지는 ("to be continued") 실패와 좌절로 방황하면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핸디캡으로 짓눌린 분들이 있다면, "피트, 이제 건너자~!" 하고 마켓 사거리를 건너간 웬디를 보며 가슴 벅참을 느낄 것이다.

 

더불어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라고 작게 소리내어 본다면 그걸로도 이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이 영화는 '카카오브런치' 시사회를 통해 감상한 영화입니다. '브런치'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