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패권에 환시 무장해제…외환 투기에 무방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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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에 환시 무장해제…외환 투기에 무방비 우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5.1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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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환시 개입자료 공개…신흥국 통화위기 어떻게 대처하나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수단은 군사력과 달러 패권이다. 군사력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하지만, 달러 패권은 일상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2차 대전후 미국은 전세계 통화시장 주도권을 장악하고,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푸른색 미국 지폐(그린백)가 국제통화의 기준이 되었다. 달러는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전세계 석유거래의 기준 통화이며, 미국 재무부가 찍어낸 종이돈의 3분의2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통용된다. 따라서 세계의 통화는 미국 달러(US$)와 비 달러로 양분되며, US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 구조가 되었다.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자국 통화를 보호하는 다양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홍콩은 좁은 환율 밴드(band)를 설정해 환율이 그 범위를 벗어나면 금리를 통해 조절하면서 준고정환율제를 취하고, 한때 아르헨티나는 커런시 보드(currency board) 제도를 만들어 환율을 달러에 묶어두고 자국 통화량을 조절하기도 했다. 20개에 가까운 유럽 국가들이 하나의 통화(euro)를 만들어 달러에 대항하지만 달러의 위력을 제압하지 못한채 회원국의 재정 통제에 혼란을 노출시키고 있다.

대다수 국가들은 변동환율제를 취하면서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해 부질없이 막대한 외환을 쌓아두고 있다. 하지만 변동환율제를 취한 나라의 통화는 바다에 떠 있는 나룻배와 같아 미국 거시정책의 자그마한 변화에도 큰 흔들림을 겪게 되고, 때론 전복되어 경제위기를 겪기도 한다. 달러 패권의 시대에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외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환율은 거시 지표 중에서 가장 우선시된다. 환율 변동에 의해 국가 또는 기업, 개인의 부가 수시로 변동한다. 기축통화에 종속된 많은 나라들은 자국 통화를 절하하고 싶어한다. 부의 효과는 줄어들지만, 수출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각국에 외환개입을 문제 삼는다. 상대국이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저평가(절하)시켜 무역거래를 왜곡시킨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외환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나라에 대해 입증할 자료를 내놓으라고 한다.

 

▲ /자료:기획재정부

 

정부는 17일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함께 마련한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을 확정했다.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외환당국이 실시한 외환거래액을 우선 반기별로 공개하고, 1년후부터는 분기별로 공개하기로 했다. 공개 장소는 한국은행 홈페이지이며, 공개 대상은 외환당국의 외환시장 총매수액에서 총매도액을 차감한 순거래 내역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외환거래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시장 여건과 정책 실효성등을 이유로 댔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는 환율보고서에서 2016년 상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차례 연속 한국을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분류했다. 한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풀지 않은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35개국중 한국만이 외환시장 거래내역을 공개하지 않았고, G20 국가중에선 한국 중국 사우디 남아공 러시아 인도네시아가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우리 외환시장의 불투명성을 중국과 같은 수준으로 볼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 /자료:기획재정부

 

환율문제는 국가간에 경제적 가치를 어느 비율로 환산하느냐를 것이므로, 경제영역에서 영토분쟁과 다름없는 치열한 갈등이 노출된다. 2010년 9월 미국과 중국 사이에 환율 문제로 인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삼아야 한다고 맞섰다. 반격했다. 결국, 중국은 위안화 절상을 용인해 한발 물러서면서 갈등이 진화되었다.

 

우리 정부는 외환거래 공개로 외환시장을 컨트롤할 무기를 잃었다. 그동안 누누이 외환시장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게 되었다. 개입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여부의 결과물을 6개월 또는 3개월 단위로 내게 되었으니….

이번 자료 공개로 정부의 외환 정책에 손발이 묶이게 된 셈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이 방침을 발표하면서 "시장안정조치를 한다는 기존 원칙은 변함없다"고 했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는 미국 재무부채권(TB: treasury bond)의 수익률 변화다.

뉴욕시장에서 TB 10년물 수익률은 3.1%를 넘었고, 연말에는 3.5%로 간다는 예언들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며 신흥국 통화는 추풍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국채 이익이 높으니, 신흥국에서 돈을 빼는 것이다. 이른바 커런시 런(currency run)이 나타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러시아, 남아공, 이란, 인도네시아…. 이들 나라들은 외환보유액으로 시장 개입하거나 금리로 자본이탈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겉모습은 OECD 국가이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선 신흥국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흥국 시장의 위기가 가속화될 때 우리 원화는 무장해제한 상태에서 달러의 움직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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