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의해 밝혀진 신라 금귀걸이의 뒤바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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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 의해 밝혀진 신라 금귀걸이의 뒤바뀐 운명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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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이별, 51년간 다른 귀걸이에 보물 자리 빼잇긴 비운의 노서리 귀걸이

 

병원 신생아실에서 아이가 뒤바뀌어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스토리는 막장드라마에서 주요 소재가 된다. 신라 고분에서 발굴된 천년 유물도 막장드라마와 같은 길을 걸었다. 경주 노서동에서 발굴된 금귀고리 한쌍은 무려 85년간 비운의 시련을 겪으며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기대한다.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문화재를 검색하면, ▲보물 454호 경주 노서동 금팔찌 ▲보물 455호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456호 노서동 금목걸이로 기재되어 있다. 일련의 번호를 가진 세 보물은 일제시대인 1933년 경주읍 노서리 215번지에서 비슷한 시기에 발굴되었다. 또 보물지정일도 세 가지 모두 1967년 6월 21일로 같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발굴된 보물 가운데 455호 금귀걸이만 황오동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을까. 경주시 황오동(皇吾洞)과 노서동(路西洞)은 인근 마을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에 노서동 금귀걸이의 길고 긴,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① 땅에서 나오자 바로 별거

 

1933년 경주읍 노서리 215번지에 살던 김덕언씨가 자기집 토담을 따라 호박씨를 뿌리려고 땅을 파헤치다가 금붙이들을 발견했다. 신라시대에 제작된 금제품이었다. 김씨가 수습한 유물은 금귀고리 1점, 은팔찌 1쌍, 금·은반지 각 1점씩, 금구슬 33알이었다. 한쌍으로 된 금귀걸이 가운데 다른 1점은 찾지 못했다. 이 곳은 경주 노서리 215호 고분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총독부 고적조사팀인 일본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김씨가 발견한 유물들을 찬찬히 들여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쌍으로 되어 있어야 할 귀고리의 다른 한쪽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사팀은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가 나머지 금귀고리 1점과 금구슬 44개 등 유물을 찾아냈다.

따로 발굴된 금귀걸이 한쌍은 재회하자 곧바로 별거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34년 김덕언씨가 수습한 1점은 서울(조선총독부 박물관)로, 아리미쓰가 찾아낸 반쪽은 현해탄을 건나 동경박물관으로 각각 이송됐다.

 

▲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문화재청 제공

 

② 재회, 그러나 잘못 붙여진 이름

 

해방이 되고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에 따라 1966년 5월 28일 동경에 있던 노서동 금귀걸이 반쪽도 서울로 돌아와 나머지 짝과 만나게 되었다. 헤어진지 32년만이다.

이듬해인 1967년 6월 21일 문화재위원회는 노서리 215호 고분에서 함께 출토된 3점을 보물로 지정했다. 금팔찌(454호), 금귀걸이(455호), 금목걸이(456호)에 일련의 번호가 매겨졌다. 일제에 의해 이산가족이 되었던 보물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그 가치가 인정된 듯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화재 당국의 실수가 발생했다. 보물을 저정한후 출간한 각종 자료에 경주 노서동에서 발굴된 금귀걸이가 아닌 경주 황오동에서 발굴된 금귀걸이 사진을 실은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노서동 금귀걸이와 황오동 금귀걸이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밀하게 보면 황오동 금귀걸이는 보다 세련되게 가공되었다. 노서동의 것은 수수한 반면에 황오동의 것은 예쁘고 단정한 모양이다. 노서동 귀걸이는 보다 예쁜 황오동 귀걸이에 밀려난 것이다.

이 뒤바뀐 운명을 바로잡은 사람이 일본인이다. 2000년 어느날 일본학자 후지이 가즈오(藤井和夫)가 이한상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 무렵 국립중앙박물관은 신라 황금전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후지이는 “1998년 발표한 이한상 학예사의 논문에 언급된 보물 455호는 ‘노서리 금귀고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학예사는 깜짝 놀라 과거 발굴 당시의 자료를 들여다 보니, 보물 455호로 지정된 금귀걸이가 황오동 금귀걸이고, 노서리의 것은 아님을 발견했다.

32년간 헤어진 금귀걸이 한쌍은 보물지정후 다시 33년간 다른 귀걸이에게 보물자리를 내준채 박물관 수장고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왼쪽)과 황오동 금귀걸이 /문화재청 제공

 

③ 잘못을 알고도 시정하지 않은 정부

 

보물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도 9년이 걸렸다. 2009년 10월 20일 문화재위원회가 열려 뒤바뀐 운명의 주인공을 바로잡자는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노서리 귀걸이의 명예는 되찾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황오동에서 발굴된 금귀걸이를 보물 455호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황오동의 것을 그대로 보물 455호로 하자고 했다.

결국은 문화재위원회가 노서리 귀걸이의 보물지위를 박탈하고, 황오동 귀걸이를 보물 455호로 변경, 지정한 것이다.

 

④ 50년만에 명예회복할까

 

지난해 보물 지정 당시와 현재의 대상 유물이 다르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었다. 그러자 문화재청은 올해 3월 자문회의와 문화재위원회 논의를 거쳐 보물 지정 경과를 다시 확인하고, 두 금귀걸이에 대한 문화재 가치를 재평가하기로 했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보물 제455호는 지정할 때 환수문화재라고 적시했고, 보물 454호와 보물 제456호가 노서동 출토품이라는 사실을 보면 황오동보다는 노서동 유물이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노서동 금귀걸이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보물 비지정이라는 꼬리표를 단채….

문화재청은 "노서동 유물이 보물 제455호로 확인되면 명칭을 변경하고, 황오동 금귀걸이는 다시 보물 지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위해 1967년 당시 지정과 그 이후 경과 등을 재확인하고 두 지역에서 출토된 귀걸이에 대한 관계전문가의 현지조사, 문화재위원회 검토‧심의 등의 절차를 밟아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올 하반기에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노서동 귀걸이와 황오동 귀걸이의 운명을 결정할 예정이다.

노서동 금귀걸이가 별거 32년, 보물 지위박탈 51년의 긴 세월을 이겨내고, 마침내 빛을 보게 될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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