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사측의 벼랑끝 전술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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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사측의 벼랑끝 전술 통했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4.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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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사보타지에 강성 노조와 한국 정부가 고집 꺾어

 

파업이라고 하면 우리는 노동자, 즉 노조의 전유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자본가도 파업을 한다. 노동자들은 붉은 깃발에 전열을 갖추고 목청을 높여 집단의 힘을 과시하지만, 가진자들은 조용하게 움직인다. 노조의 파업은 때론 감성으로 흘러 비합리적 주장도 제기하지만, 자본가는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움직인다.

파업(strike)은 노조 운동에 한정하는 용어인만큼, 경영자 또는 자본가에는 파업이란 단어 대신에 사보타지란 말이 적당하다. 물론 둘다 파괴적이다. 강성 노조의 과격한 파업, 장기 파업은 회사에 치명상을 준다. 마찬가지로 사업주의 사보타지도 회사를 무너뜨린다.

 

한국지엠 노사가 데드라인인 23일 오후 5시에 임박해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 타결했다.

한국지엠 노사가 올들어 2월 7일부터 무려 14차례나 지리한 임단협 교섭을 한 끝에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면서 “극적으로”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과연 “극적으로” 타결한 것일까. 이날 데드라인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한국지엠 사측은 법정권리 신청서를 들고 법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나마 지난 20일이었던 법정관리 신청 시기를 회사측이 3일(휴일 포함) 연장시켜 준 것이다. “더는 없다”는 사측의 배수진에 노조가 서둘러 합의를 선택한 것이다.

만일 노조가 합의에 응하지 않고 버텼으면 어떻게 될까. 한국지엠 사측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회사는 법원의 관리로 들어간다. 임금은 동결되고 퇴직금은 법에 따라 결정되고 희망퇴직 같은 건 있을수 없다.

노조는 두달 이상 협상을 벌여 얻은게 별로 없다. 군산공장 폐쇄도 저지하지 못했다. 다만 군산공장 근로자중 희망퇴직을 제외한 잔류자의 전환배치에 합의했을 뿐이다. 그나마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얻지 못할 것을 얻었으니, 다행이라 할수 있다.

 

▲ 한국지엠 군산공장 모습 /한국지엠 자료

 

한국지엠은 외국기업이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가 77%의 지분을 보유, 경영권을 갖고 한국산업은행이 17%, 중국국영자동차 회사로 GM의 파트너회사인 SAIC(上汽集團)가 6%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회사다. 외국기업이었기에 한국지엠은 노조에 강하게 버틴 것이다. 마지막 카드는 “회사를 처분(법정관리 신청)하고 떠나버리겠다”는 것이다. 회사가 사보타지한 것이다.

국내 기업들도 한국지엠처럼 강하게 사보타지할수 있을까. 정부가 가만 놓아두지 않을 것이고 사회 여론, 특히 인터넷 댓글이 마녀사냥하듯 공격해 댈 것이다.

한국지엠의 강한 사보타지에 친노동 색채가 강한 정부도 방향을 돌렸다. 정부가 일자리에 발목잡힌 것이다. 산업은행 수장 자리에 오른 진보적 인사가 뉴머니라는 카드를 먼저 제시했다. 김동연 부총리도 뉴머니를 줄수 있다며 한국지엠 사측을 달래고, 노조를 압박했다. 한마디로 뉴머니는 산업은행이 채권을 발행하든, 정부 돈을 가져오든 5,000억원을 한국지엠 증자자금으로 대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지엠 사측의 완승이다. 노조를 꺾었으니, 이젠 한국정부와 협상이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배짱을 부린다. 법정관리를 피하게 했으니, 주겠다는 돈 5,000억원을 빨리 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GM이 나머지 2조5,000억원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배짱을 부릴 것이 눈에 보인다.

산업은행측은 GM측이 이미 대출한 3조원을 20분의 1로 감자해 출자전환하라고 압박한다. 그래야 GM의 특별의결권 85%를 피할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의결권이란 게 그리 중요한 사안인가. 산업은행이 신규자금을 주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일이다. 특별의결권이 없어도 자회사 한국지엠에 대한 미국 GM의 경영권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이미 주기로 정부와 산업은행 고위층이 내뱉은 말이다. 테이블에서의 형식적인 논쟁이 남아있을 뿐이다.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에 대해 실사를 벌인 결과,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크며, 극적 회생이 가능하며 2020년이면 흑자 전환을 할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한국지엠이나 미국GM은 산업은행보다 먼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증자를 하면 회사를 회생시킬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기회에 노조를 꺾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울러 한국 정부의 콧대도 꺾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사보타지라는 마지막 수단을 조용하게 꺼내들면서….

국내 기업과 기업인은 한국지엠처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답을 내리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점에서 국내기업이 외국기업에 비해 역차별당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기업을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 국내기업인들의 묵언의 사보타지에 정부와 노동운동세력들이 귀를 열고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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