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상에 '좋은 관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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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상에 '좋은 관치'는 없다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7.03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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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월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 은행업의 '실질적 경쟁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2월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 中 윤석열 대통령 발언)".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바라보는 은행산업은 소수 은행이 과점(寡占)적 지위를 남용해 지나친 이자장사와 성과급 잔치를 일삼는 '악당'이기라도 한 걸까.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금융당국은 지난 2월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TF를 출범하고 본격적으로 은행산업 과점 체계 부수기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나 증권사 등에 추가 인가를 내줘 경쟁을 촉발하는 '메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선 지나친 정부의 개입이 '관치금융'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 혜택 확대와 공공성 강화 등을 외치며 물러설 기미가 없다. 

그런데 규제를 풀어 시장 경쟁으로 공공성을 강화해 현행 과점산업을 경쟁산업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이상하다. 이런 논리라면 산업자본도 은행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 금융시장의 지형을 완전히 바꿀 금산분리법 완화 내지는 폐지에 대해선 말이 없다. 

'공공재'에 대한 정의도 일반적이지 않다. 통상 공공재라고 하면 소비에 있어 비경합성, 배제 불가능성이 수반돼야 한다. 단지 어떤 상품이 공공성을 갖는다고 해서 공공재가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은행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지 공공재가 아니다. 

결국 경쟁 강화로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건 모순일 수 밖에 없다. 은행의 공공성 강화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거래, 금융소비자 보호 등 금융감독 강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의 영역이다.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행보도 '완전 경쟁'과 거리가 멀다. 2021년 연말 정부는 가계대출 규모를 줄이라고 지시했다.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크게 올렸다. 이후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을 위해 신용대출을 늘리라고 말을 바꿨다. 자연스럽게 은행의 대출금리 평균치도 올라갔다. 지난해 연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의 자금난이 심해지자 은행도 은행채와 예금으로 시중 자금을 끌어들어야 했지만 정부는 예금금리를 너무 높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다시 예금금리가 낮아지자 예대마진이 높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자유로운 경쟁을 도모하려면 정부 역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은행업 특성상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된다면 그 결과 역시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와 다르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현재 은행의 영업 관행에 전혀 손 볼 곳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걸 이루려는 정부의 행보 역시 투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재의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 NH농협) 체제로 재편된 이유에 대해서도 현 정부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박대웅 기자.

가장 큰 이유는 외환위기로 촉발된 IMF 사태다. IMF 사태로 부실은행이 늘어나자 정부는 대규모 금융사 도산 사태를 막기 위해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단행했다. 1997년 말 26곳이었던 은행이 IMF 후 절반 이상 사라졌다. 이후 살아남은 곳 중 몸집이 큰 일부 은행이 지금의 시중은행으로 자리잡았다. 정리하자면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에 대응해 은행의 대형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DJ 정부가 이를 실행하면서 3~4곳의 대형은행 체제로 재편됐다.

과점의 또 다른 이유로는 금융당국의 '관치'와 '규제'다. 금융당국의 이런 행태는 외국계 은행의 한국 진출을 막아 경쟁을 저해하고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한국에서 온전한 형태로 영업을 하는 외국계 은행은 SC제일은행이 유일하다. 미국계 씨티은행은 기업금융만 남기고 소비자금융(가계 대출 등)은 한국에서 철수를 선택했다. 수익성 악화가 주된 요인으로 꼽히지만, 금융권에서는 규제 중심의 금융당국 정책 스탠스와 관치도 철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에서 철수하는 외국계 은행은 늘어나는데, 새로 진출하는 은행은 없고, 결과적으로 국내 시중은행 간 경쟁만 이뤄지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과점이라고 보는 건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가 아닐까. 현재의 과점 체제는 과거 정부의 정책 결과물이자 관치와 규제의 산물이다.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고 금융 소비자의 혜택을 강화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관치는 지양돼야 한다. 세상에 '좋은 관치'와 '나쁜 관치'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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