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캐논 못 쓰나"… 日 반도체 제재에 中 당황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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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캐논 못 쓰나"… 日 반도체 제재에 中 당황하는 까닭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5.24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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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7월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나서
中 "국제 경제·무역 규칙 위반…결연히 반대"
여전한 기술 격차 속 中 장비 국산화 '안갯속'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일본이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한다.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가 미국 제재보다 더 치명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중국의 첨단반도체뿐 아니라 성숙공정 반도체까지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로써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을 장악한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3개국이 모두 중국을 상대로 수출 빗장을 거는 상황이 됐다. 

23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즈(TF)는 중국 반도체 업체가 일본의 광범위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시행으로 차량용 반도체,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범융반도체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일본이 오는 7월23일 기점으로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日, 7월 23개 품목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일본 정부는 오는 7월23일부터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제한하기 위해 미국, 네덜란드와 함께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규제에 나선다. 첨단반도체 제조장비 등 23개 품목에 대해 미국, 한국 등 우호 42개국가와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수출 대 경제산업성의 개별 허가를 얻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중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를 우려하는 이유는 규제 계획에 첨단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기술이 포함됐다. 여기에 더해 45nm(1nm·10억분의 1m)와 같은 범용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니콘과 캐논의 노광장비를 비롯해 도쿄일렉트론(TEL)의 반도체 장비와 반도체 테스트 장비를 생산하는 어드밴테스트 등 규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반도체산업협회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제한받을 반도체 장비 범위가 너무 넓으며 성숙반도체 기술을 위한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이어 일본 첨단 반도체 장비 수입 규제가 시작되면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정부도 격하게 반응했다. 중국 상무부는 일본이 23종의 수출 규제를 발표하자 "수출 규제 조치의 남용이자 자유무역과 국제 경제·무역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중국은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철저하게 분업화된 국제 반도체 산업 시장을 감안할 때 중국이 자국을 향한 반도체 규제의 파도를 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일본의 '칼날',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일본이 빼든 반도체 관련 수출 통제 '칼날'이 한국을 피해 갔다고 해서 마냥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진단이다. 일본이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의 중국 수출 감소라는 경제적 피해를 무릅쓰면서까지 미국 편에 섰다. 향후 미·중간 반도체 전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선 선택의 기로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공장(낸드플래시)에서 자사의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를 제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D램)에서 자사 D램 생산량의 50%를,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33%가량을 생산한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사의 메모리칩은 중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양이 가장 많다.

중국은 가장 중요한 시장이자 핵심 생산 거점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KLA, 램리서치, 일본의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 ASML 등 세계 5대 장비 회사에서 만든 장비를 중국으로 반입하려 할 때 각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이들 3개국은 모두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나서고 있다. 

다행히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는 10월 중국 장비 반입 만료 시점을 앞두고 1년 재연장에 성공했다. 하지만 커져만 가는 불확실성은 양사 메모리반도체 생산에 있어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부문은 기술 향상 뿐만 아니라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공장이 유지될 수 있다"며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피해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중국 공장에 장비 반입이 지연되거나 막힌다면 피해는 불가피한 셈이다.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은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 22일 일본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삼성전자의 일본 거점 신설 검토 발표를 환영한다"며 "한일 기업이 서로 투자를 확대해 '윈윈'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는 300억엔(2850억원)을 투자해 일본 요코하마에 반도체 후공정 R&D 거점을 조성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100억엔(95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의 다른 반도체 기업 보조금 지원에도 호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아직 구체적인 제안을 받지는 못했지만, 일본과 관계를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지 전체적인 맥락에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ASML의 EUV 노광장비. 사진=ASML 홈페이지

中 반도체 장비 국산화 성공할 수 있을까

중국 더방증권이 펴낸 '반도체장비 산업리포트 2022'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국 반도체 기업 20곳의 반도체 장비 공개 입찰에서 낙찰된 중국산 장비 비중은 32%였다. 2021년 중국산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 21%와 비교하면 11%포인트 상승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반기 중국 국산화율이 30%를 넘은 반도체장비는 애셔, 세정, 식각, 화학기계연마(CMP) 등 장비였으며 국산화율이 10~30% 사이에 이르는 반도체장비는 열처리, 박막증착, 테스트 등 장비였다. 애셔 장비의 중국 국산화율은 88%로 가장 높았고 노광 장비의 국산화율은 아직 0%에 가까워 캐논, 니콘, ASML 등 해외기업 제품으로 채워졌다. 중국이 기술 진입 장벽이 낮은 반도체장비 분야에서 자체 공급망 구축에 성과를 냈으나 연구개발이 쉽지 않은 노광 장비, 이온주입 장비 등에서는 아직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기술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해 자급률을 높인다는 목표 아래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 있다. 2015년부터 중국 국무원과 공업정보화부(공신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기 위해 모두 3428억5000만 위안(약 67조 원) 규모의 국영펀드인 ‘국가 반도체산업 투자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설계, 제조, 장, 재료 등 분야에 투자했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실제 자급률은 20% 수준이다. 이 마저도 삼성전자 등 외국 기업을 제외하면 10% 미만으로 급락한다.

중국 정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전한 기술 격차와 대중국 제재 속에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글로벌 기업과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연구개발을 거듭하고 있으나, 기술 수준은 장비마다 대략 많게는 10년, 적게는 3년 이상 뒤처지는 것으로 보인다. 평균 5년을 잡는다고 해도 메모리반도체 세대로 따지면 적어도 2~3세대는 뒤처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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