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5월 광주'를 기억하게 하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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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5월 광주'를 기억하게 하는 작품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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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5월 즈음이면 광주 곳곳에는 이팝나무가 무성합니다. 하얀 꽃이 무성하게 핀 모습이 마치 하얀 쌀밥처럼 보이는 나무입니다. 광주의 이팝나무는 1980년 5월의 뜨거웠던 날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가족과 이웃, 그리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싸웠던 5월입니다.

영화 속 광주의 5월

광주민주화운동 혹은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여럿 있습니다. 5월 광주를 시계열처럼 따라가는 이야기이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이름 없는 이들의 사연이든 후세 사람들에게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하게 합니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 <스카우트>의 포스터는 야구영화처럼 보이게 합니다. 물론 이야기의 큰 축이 광주일고 야구선수인 선동열을 영입하려는 대학 야구팀 관계자의 고군분투를 다루니까요. 그런데 시기적으로는 1980년 5월을 다룹니다. 정확히는 5월 18일 전 열흘간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임창정이 연기했던 '호창'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잘 보여 줍니다. 5.18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에 맞선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잘 표현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와 진압군의 투입 과정은 이 영화를 단순히 야구 소재의 코미디 영화로 생각한 관객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가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폭력의 공포 속에 몰아넣는지, 그런 시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받는지 여실히 보여 주기도 합니다. 

김현석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스카우트>가 “장르적으로 코미디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영화는 가볍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 시대에 산다는 것만으로 폭력적인 영향을 받고 비굴해지도록 강요받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드라마”이고 “광주항쟁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동시대인들 모두의 딜레마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세상에 알린 외신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에 데려다준 택시 기사 김사복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개봉했고 5·18을 앞둔 요즘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도 자주 나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카우트>가 광주항쟁 전 열흘을 다뤘다면 <택시운전사>는 5·18 이후를 다뤘습니다. 외부와 고립된 광주와 시민들의 사투를 자세히 그렸지요. 영화 속 광주 시민들이 자기 가족과 이웃을 위해 나선 이들이었음을, 그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폭압을 잘 표현한 영화입니다. 

만약 1980년 5월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이 없었다면 어쩌면 외부 세상은 한국의 군사 정권이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사실 1980년대를 살던 한국인들도 광주 이야기를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몰래 구한 자료로 광주의 실상을 알아가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런 현실을 영화 <1987>이 잘 보여 줍니다. 이 영화에는 애니메이션 상영회로 위장하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광주 영상을 틀어주는 한 대학 동아리가 나옵니다. 그 장면에 이한열 열사로 분한 강동원 배우가 주인공의 선배로 등장합니다.

필자 또한 대학에 다녔던 1980년대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광주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 있습니다. 물론 대학 측으로부터 금지된 행사였습니다.

책임자에게 마땅한 처벌을

한동안 5·18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과거에 벌어진 불행한 일 정도로 취급받았습니다. 가해자가 분명해도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이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해자 측에 유리한 법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처결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들이 나온 게 아닐까요.

영화 <26년>은 같은 이름의 웹툰을 영화화했습니다. 5·18 피해자의 가족들이 1980년 5월 당시 최고 명령권자에게 직접 복수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제작되던 2010년대 초반 투자사가 투자를 철회해 결국 시민 펀드를 기반으로 영화가 완성되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일명 ‘좌파 영화’를 지원에서 배제하라는 위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고, 이런 분위기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배우 이정재가 직접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헌트>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이면서 5·18 책임자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특히 영화 속 정우성이 7공수여단 소속 군인으로 광주에 있었던 회상 장면은 5·18 당시 무력으로 시민들을 진압했던 공수부대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진압군 김정도 소령으로 분한 정우성은 다른 군인들과 달리 민간인 주검들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 안기부 차장이 된 정우성은 동조자들과 함께 광주 학살의 책임자에 대한 암살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실패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학살의 책임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천수를 누리게 됩니다.

이창성 사진 <시민군-1>. 사진제공=눈빛출판사

잊히지 않을 광주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마치 죄인처럼 주눅 들어 하고 가해자가 오히려 떳떳하게 얼굴 들고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힘을 가진 이가 역사를 왜곡하고 책임 소재를 다퉈야 하는 사안의 핵심을 흐려 놓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사실 지금도 5·18 당시 북한군이 투입됐다거나 광주 시민들이 불온 세력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진실을 마주하는 게 두려운 건지도, 그래서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 1980년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의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는 전 중앙일보 이창성 기자의 <나는 시민군이다>라는 사진전입니다. 

이창성 기자는 1980년 5월 광주를 직접 목격한 사진기자입니다. 그는 “5·18 시민군이 무장한 계엄군에 맞서 시민을 보호하려 한 분노와 항의의 시민 조직이었다는 걸 사진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고 감회를 밝혔습니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해 영원 속에 담는 기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민군이다> 전시회의 사진들에는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들의 여러 순간이, 가족과 이웃을 지키려 나섰던 그 순간들이 영원한 기록으로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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