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모시는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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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 모시는 해인사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3.26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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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사찰 중 법보종찰…몽골 물리치기 위해 만든 팔만대장경 모셔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해인사(海印寺)는 법보종찰이라고 한다.

법보종찰(法寶宗刹).

법보, 즉 불법의 보물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자한자 활자로 새긴 고려 팔만대장경을 말한다.

불교에는 삼보(三寶)가 있다. 삼보는 곧 불(佛)·법(法)·승(僧)이다.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그 가르침을 전하는 스님(僧)을 말한다.

한국에는 삼보 사찰이 있는데,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에다 법보사찰인 해인사를 이르는 말이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고(삼국유사), 송광사에는 국사(國師)를 지낸 16명의 고승들을 배출했으며,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속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총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해인사는 한국 불교의 정신적인 귀의처요, 이 땅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되어 왔다고 해인사측은 자랑한다.

 

▲ 해인사 종각 /사진=김인영

 

해인사라는 이름은 화엄종의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해,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즉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라고 해인사측은 설명한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세워진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다. 신라 화엄종의 시조격인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제자의 제자(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에 의해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지금의 자리에 창건되었다.

해인사에서는 신라말에 희랑(希朗)대사를 비롯해 고려조에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이 배출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다.

 

▲ 팔만대장경 /해인사 사이트

 

해인사는 뭐니뭐니 해도 팔만대장경로 유명하다. 법보종찰이라는 이름도 팔만대장경으로 인해 생겼다.

고려대장경을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하는 까닭은 대장경의 장경판수가 팔만여장에 이르기 때문이다. 특히 불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가리킬 때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를 쓰는데, 끝없이 많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 법문이라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대장경은 고려시대에 두 차례에 걸쳐 국가사업으로 간행되었다.

먼저 간행된 구판대장경은 1011년에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공을 물리치려는 염원에서 1087년까지 무려 77년에 걸쳐 추진되었다. 그 무렵 중국의 장경에 견주어 내용이 완벽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된 이 옛 대장경은 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고군의 방화로 불타 버리고 말았다. 소실 5년뒤인 1236년에 다시 본격적으로 대장경 간행을 추진해 1251년에 완성하니, 16년에 걸친 이 큰 불사의 결실이 바로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이다. 몽골을 물리치려는 염원에서 만든 것이다.

대장경의 경판에 쓰인 나무는 산벚나무 등으로, 통째로 바닷물에 3년 동안 담그었다가 꺼내 조각을 내고, 다시 대패로 곱게 다듬은 다음, 경문을 새겼다. 먼저 붓으로 경문을 쓰고 나서 그 글자들을 다시 하나하나 판각하는 순서를 거쳤다.

대장경을 만드는 데에 들인 정성과 한치의 어긋남과 틀림도 허용하지 않은 그 엄정한 자세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것이었다. 곧 글자를 한자씩 쓸 때마다 절을 한번 하였다고 하니, 제작자들의 정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이 글자를 새겼는데, 무려 52,382,960개에 이르는 구양순체의 글자들이 한결같이 꼴이 아름답고, 마치 한 사람이 쓴 듯이 일정하다. 한 글자도 잘못 쓰거나 빠뜨린 자가 없이 완벽한 장경을 이루고 있다.

이 대장경은 어진 거란장경의 일부를 비롯해 중국 대장경에는 없는 경전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최고의 대장경이라는 만력판이나 또 후세에 만들어진 어떤 대장경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빼어남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근대에 만들어진 일본의 신수대장경을 비롯한 현대의 불교 대장경들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한다.

 

▲ 팔만대장경 보관소 /사진=김인영

 

해인사는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중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이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다.

 

▲ 해인사 삼층석탑 /사진=김인영

 

삼층석탑은 본래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던 곳이었으나, 이후 사리, 경전, 불상등을 모시는 곳으로 발전했다.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다. 석등과 석탑 사이의 바닥돌은 부처님을 향해 이마를 땅에 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정례석이다.

해인사는 사적 제504호,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날 행사 /해인사 사이트
▲ 팔만대장경 보관소 /사진=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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