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은 어떻게 생활했을까…동궁과 월지 정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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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은 어떻게 생활했을까…동궁과 월지 정밀조사
  • 김현민
  • 승인 2018.03.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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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왕궁의 정체 규명 나서

 

경주 월성에서 길하나 건너면 월지와 동궁터가 나온다.

연못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고, 건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4년(674년)조에 “2월, 궁궐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고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경주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는 신라 왕궁의 별궁이다. 왕자가 거처하는 곳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로 되었고,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 곳을 기러기 '안'자와 오리'압'자를 써서 '안압지‘(雁鴨池)라 불렀다. 일제시대에는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다.

1980년대 발굴과정에서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면서 이 곳이 본래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안압지라는 이름이 '동궁과 월지'로 바뀌었다. 사적 1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월지와 동궁터에서 발굴된 변기형 석조물 /문화재청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15일부터 경주 동궁과 월지 인근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다시 시작한다. 아울러 1970년대에 한 차례 조사가 이루어졌던 연못 서편 건물지와 인근의 미조사 구역에 대한 보완조사를 병행해 동궁 건물지의 재·개축과 배치양상 등을 밝히기 위한 조사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경주 동궁과 월지에 대한 발굴 조서는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처음으로 조사했다. 첫 조사 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3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07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동궁과 월지 동쪽 인접 지역을 포함하는 동궁과 월지 일대에 대한 중장기 발굴조사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그 결과 동궁과 월지의 영역과 동궁 내 대형 건물지군, 담장, 배수로 등 동궁 관련 시설을 확인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발굴조사에서는 변기 시설을 갖춘 수세식 화장실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 화장실은 건물뿐 아니라 암거(暗渠)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과 오물 배수시설 등 신라 왕실의 화장실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외에, 창고시설, 우물 등 신라 왕궁의 일상생활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자료도 확보되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올해 학술 발굴조사에서 신라 왕궁의 정체성을 규명할 예정이다.

 

▲ 2017년 발굴한 수세식 화장실 유구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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